최근 수정 시각 : 2023-10-28 23:06:55

프리덤 7호

FREEDOM 7
파일:Freedom_7_insignia.jpg
프리덤 7호 미션 패치
이름 프리덤 7호
호출부호 프리덤 7호
발사일 1961년 5월 5일
14시 34분 13초 UTC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 LC-5
귀환일 1961년 5월 5일
14시 49분 35초 UTC
미션 기간 15분 22초
우주선 사령선 - 프리덤 7호
승무원 앨런 셰퍼드

1. 개요2. 미션 경과
2.1. 발사2.2. 결과
3. 기타

1. 개요

NASA의 유인 우주 비행 계획의 하나인 머큐리 계획의 첫 유인 로켓 발사 임무이다.

1961년 5월 5일에 발사되어 우주 공간까지의 탄도 비행에 성공했다. 이것은 미국의 첫 유인 우주선 발사가 되었다.

2. 미션 경과

2.1. 발사

파일:external/www.nasa.gov/284663main_Shepard_Launch_full.jpg
파일럿이었던 엘런 셰퍼드는 발사 직전 혼잣말로 "Don't fuck up, Shepard ..."라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2.2. 결과

파일럿이었던 엘런 셰퍼드는 15분 22초 동안 우주에서 탄도비행을 했다.
미국의 첫 우주인이 탄생하였다!

3. 기타

앨런 셰퍼드의 프리덤 7호는 원래 최초로 우주에 인간을 보낼 우주선이 될 계획이었으나, 발사하기 불과 한 달 전에 소련의 보스토크 유리 가가린을 먼저 우주로 보내는데 성공하면서[1] 우주에 두 번째로 인간을 보낸 안타까운 기록을 가진 우주선이 되었다.

프리덤 7호가 무사귀환하자 미국 언론들은 Real Astronaut라면서 정신승리(...)를 했다. 유리 가가린은 Cosmonaut 였으니까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가 지구 궤도에까지 올라 지구를 선회 비행했던 반면 앨런 셰퍼드의 비행은 탄도비행에 불과했기 때문에 아직 가가린의 비행과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비행이라기 보다 지구에서 쏜 미사일에 실려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진 것이었다.

이후 앨런 셰퍼드는 토머스 스태퍼드와 함께 제미니 3호의 승무원으로 선발되었으나 메니에르병에 걸려 귀의 평행기관에 이상이 생겨서 모든 종류의 비행을 금지 당한다. 수년간 NASA의 언론홍보책임자로 일하다가 시험적인 수술을 받고, 10년 만에 우주비행 임무로 복귀하여 아폴로 14호의 사령관으로 달에 가게 된다.

발사성공후 20일이 지난 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미국 의회에서 60년대 안으로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연설을 하면서 본격적인 우주 경쟁이 시작된다.[2] 그리고 저 말은 사실이 되었다.


[1] 이렇게 미국이 중요한 우주선을 발사시킬 때 소련이 직전에 기습적으로 선수치는 수법은 이미 스푸트니크 때부터 시작되었고 나중에도 계속된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우주 개발 계획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 여론의 지지가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모든 과정과 계획을 상세히 언론에 공개해왔다. 반면 소련의 우주 개발 계획은 철저히 비밀주위였고 완전히 베일에 쌓여 있었다. 미국이 발사하기 수개월 전부터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달리 소련은 쥐도새도 모르게 조용히 발사시킨 뒤 사후에 성공했다고 짧게 발표하는 식이었다. [2] 나사의 국장이었던 제임스 웹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이 충격에 빠진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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