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티란니우스 루피누스 Tyrannius Rufi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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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아퀼레이아의 루피누스 |
약 344/ 5년 | |
로마 제국 율리아 콘코르디아 | |
사망 | 411년 (향년 66/7세?) |
로마 제국 시칠리아 | |
국적 | 로마 제국 |
종교 | 기독교 |
영향받은 인물 | 오리게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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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기 4세기경에 활동한 로마 제국의 수도자, 역사가, 번역가.2. 생애
340년에서 345년 사이에 이탈리아 아퀼레이아 근교의 콩코르디아에서 출생했다. 그는 예비 신자로서 기독교 회랑에 들어갔고 370년경에 세례를 받았다. 이 시기에 예로니모와 친구가 되었고, 372년 또는 373년 예로니모와 함께 동방으로 가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계열 신학 교장인 디디모스의 강의를 듣고, 장로 마카리우스 및 여러 오리게네스파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는 이 시기에 오리게네스의 글을 연구했으며, 로마의 부유하고 기독교 신앙이 독실한 과부인 멜라니아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378년경 멜라니아가 발렌스의 박해를 받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데리고 팔레스타인으로 떠날 때 그도 함께 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멜라니아의 지원에 힘입어 수도원을 세우고 많은 수도자들을 가르쳤으며, 이와 동시에 신학 연구에 전념했다. 386년 예로니모가 베들레햄에 찾아온 뒤 자주 교류했지만, 390년대 초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뒤 오리게네스의 교리를 맹렬히 공격할 때 이에 대한 대응을 놓고 심각하게 대립했다. 예로니모는 정통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인 에피파니우스를 따라 오리게네스의 교리를 거부하기로 했지만, 루피누스는 오리게네스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갔다. 그들은 3년 만에 공식적으로 화해했지만, 균열은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397년 가을 로마에 방문한 그는 동방의 신학적 논쟁이 로마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리게네스를 옹호하는 신학서를 출판했다. 이때 그는 예로니모를 오리게네스의 추종자로 언급했다. 예로니모는 정통교회에서 저명한 신학자로 존경받고 있었는데, 이단으로 낙인찍힌 오리게네스의 추종자로 거론되자 몹시 분노했다. 예로니모는 루피누스를 맹렬히 비난하는 소책자를 연이어 출간했고, 예로니모 지지자들은 루피누스의 신앙의 진실성이 의심된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루피누스는 이에 맞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글을 연이어 기고했지만 여론을 바꾸지 못했다. 급기야 알렉산드리아 주교 테오필로스가 교황 아나스타시오 1세에게 루피누스를 고발했다. 교황은 아퀼레이아에 머물고 있는 루피누스에게 로마로 출두하라고 명령했지만, 루피누스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로마로 갈 수 없다며, 오리게네스를 옹호했던 자신을 참회하는 반성문을 보냈다. 아나스타시오 1세는 오리게네스를 공식적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루피누스가 이단인지의 문제는 그의 양심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후 루피누스는 정통교회 신자들로부터 이단으로 의심받았다.
그 후 로마와 아퀼레이아를 왕래하면서 교회에 관련한 여러 편의 그리스어 신학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던 그는 408년 알라리크가 로마를 포위하자 시칠리아로 피신했고 411년경 그곳에서 사망했다.
3. 저서
- 사도의 상징에 대한 해설(Commentarius in symbolum apostolorum): 사도신경의 사용과 해석에 대한 주석서.
- 교회의 역사: 원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소크라테스, 소조멘 등 후대 역사가들이 인용한 기록으로나마 파편적으로 전해진다.
- 오리게네스 저서의 변질(De Adulteratione Librorum Origenis): 오리게네스의 가르침 중 정통교회의 비난을 받는 부분들은 원본의 위조 및 변조에 기인한다며, 오리게네스를 옹호하려는 목적으로 집필된 변론서이다.
- 12사도의 축복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12명의 생애와 활약상에 대해 다룬 저서. 총 2권으로 구성된다.
- 아나스타시오 교황에게 보내는 신앙에 대한 사과문: 자신이 과거에 이단인 오리게네스를 옹호한 것에 대해 참회하는 글.
루피누스는 번역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그리스어로 작성된 오리게네스의 설교와 서신들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오늘날 오리게네스의 신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전적으로 루피누스가 번역한 글에서만 확인된다. 그외에도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 성경의 시편 및 잠언,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의 설교 등 여러 저서를 번역하였다. 그러나 해당 작품이 비정통 신학자들에 의해 변형된 게 아닌가 의심될 때마다 원문을 줄이거나 바꿔쓰는 걸 주저하지 않아서, 그의 번역본이 원본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