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키루스의 머리를 피에 담그는 토미리스 여왕[1]
그리스어: Τόμυρίς
영어: Tomyris
기원전 6세기 스키타이[2]계 마사게타이족의 여왕.
2. 상세
페르시아의 대왕 키루스 2세가 구혼 요청을 빙자해서 사신을 보내자 마사게타이의 왕위를 노리는 것을 알아채고 거절했다. 이에 키루스 2세가 마사게타이를 여러차례 공격하면서 약사르테스 강을 건널 다리, 뗏목, 탑 등을 만들었다.토미리스는 키루스 2세에게 마사게타이를 시험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강에서 3일 거리만큼 물러날 것이니 건너오라고 하면서 그대의 나라에서 맞이할 것이라면 그대가 3일 거리만큼 물러나라고 제안했다. 이에 키루스 2세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크로이소스의 제안대로 마사게타이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키루스 2세가 강을 건너기로 하자 토미리스는 약속대로 군대를 3일 거리만큼 퇴각시켰다.
크로이소스는 또 넘어가서 하루 거리에 부대의 일부만 주둔시키고, 그곳에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쌓아두도록 하며 강으로 물러나 있으라고 키루스 2세에게 조언했다. 그가 이 조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물러나자 토미리스의 아들이 이끄는 부대가 공격하여 키루스 2세의 남겨진 부대를 도륙하고 남겨진 포도주에 취해 잠자던 중 포로가 되었다.
키루스 2세에게 아들인 스파르가피세스가 사로잡히자 토미리스는 아들을 돌려준다면 아무런 대가없이 나라를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아들을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태양신의 이름으로 그대가 좋아하는 피를 실컷 맛보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키루스 2세에게 포로가 된 스파르가피세스는 묶여진 몸을 풀어줄 것을 애원했고, 이에 키루스 2세는 스파르가피세스를 풀어주었지만, 그는 포박을 풀어주자마자 자살해버렸다. 이에 광분한 토미리스는 페르시아군을 공격했고 다수의 공방을 거치며[3] 전투를 이어나가던 와중에 결국 토미리스가 승리하게 되었다.
토미리스는 온 사방을 뒤져 키루스 2세의 시신을 찾아냈고 가죽 부대에 사람의 피를 가득 담은 뒤 키루스 2세의 머리를 거기에 담가 조롱하면서
"그대는 계략으로 내 아들을 사로잡으면서 나를 망쳤지만, 나는 위협했던 대로 그대가 피에 물리게 해줄 것이오."
라고 말했다.실제 이름은 불분명하고,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그리스식으로 변형시킨 이름이며, 이때의 키루스 2세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헤로도토스는 이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역사, 1권 214장
현대 카자흐스탄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3. 미디어에서
문명 6에서 스키타이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문명 6 스키타이 참조. 마침 문명 6 페르시아에서 키루스도 나온다. 둘의 문명 특성은 완전히 극과 극. 서로의 문명에 관련된 도전 과제도 있다.2019년에 개봉한 카자흐스탄 영화 <토미리스: 전쟁의 여신>은 제목처럼 그녀를 주인공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