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30 14:55:41

토니 할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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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colbgcolor=#fff,#191919>토니 크리스티안 할메
(Tony Christian Halme)
출생 1963년 1월 6일
핀란드 헬싱키
사망 2010년 1월 8일 (향년 47세)
핀란드 헬싱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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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전적 19전 13승 6패 (10KO)
종합격투기 전적 5전 1승 4패
1KO
2KO, 1SUB, 1판정
체격 193cm / 136kg
링네임 The Viking
Ludvig Borga
Finland Hellraiser Thor
주요 타이틀 C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GP 태그팀 챔피언 1회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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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핀란드의 전 종합격투기 선수, 가수, 정치인.

2. 전적

  • 주요 승: 텡기즈 비차제

3. 커리어

어린시절 알콜중독자인 어머니에게서 성장했다. 16세에 어머니를 떠나 삼촌에게서 성장했다. 이후 핸드볼, 축구,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성장했고 17세엔 자국내 보디빌딩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생선장수, 기도, 정원사, 가수, 스턴트맨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며 육군에 입대해 복싱을 접했다.

군을 떠난후 복싱대회를 참가하며 바운서로 일하기도 했으며 키스의 베이시스트인 진 시몬스와 음악작업을 하기도 했다. 복싱 선수로 활동하다가 번 가니에에게서 훈련을 받고 프로레슬러로 데뷔하였다.

1990년 10월 29일 UWF에서 바이킹이라는 링네임으로 데뷔하였다. 패트리어트를 첫 상대로 하여 승을 거두었다.

1993년 여름을 기점으로 Hellraiser from Helsinki라는 핀란드 출신 브롤러 기믹으로 등장했다. 오염되어 썩어빠진 미국의 환경을 보고있자니 순백의 국토가 그립다, 이는 핀란드인의 우월함과 미국의 열등함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등의 메세지를 프로모에서 전달했는데 당시 Lex Express라는 기믹으로 전국적인 애국몰이를 하던 렉스 루거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광경이었다. 그 후 볼가는 버질을 비롯한 중견급 선수 및 무명선수들을 한두명씩 꺾고 8월 PPV 섬머슬램에서 마티 자네티를 만나서 승리한다.[1] 그리고 메인 이벤트경기에서 요코주나에게 승리한 렉스루거와 백스테이지에서 설전을 벌인다.

섬머슬램을 전후로 애국자 렉스루거와 친분이 있던 스타이너 브라더스, 타탕카(All Americans)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일본인 월드챔피언 요코주나, 캐나다 퀘벡주의 태그팀 퀘베커즈(Foreign Fanatics)의 국가 간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는데 핀란드인 볼가는 이 흐름을 타서 자연스럽게 외국인 연합 선수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11월 PPV 서바이버시리즈에서 두 팀의 대진표가 형성되었다. 그 와중에 볼가는 올 아메리칸즈의 멤버였던 타탕카와 1대1 매치를 펼쳤는데, 요코주나의 매니저였던 미스터 푸지의 도움을 받아서 체어샷으로 승리한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요코주나와 함께 타탕카를 협공하여 부상을 입힌다. 이 경기로 인해 타탕카는 올 아메리칸즈에서 빠지게 되고 그 공백에는 언더테이커가 투입된다.[2]

11월 PPV 서바이버시리즈 당일 볼가는 상대팀의 릭 스타이너를 핀폴로 제거하는 활약을 펼치며 팀의 마지막까지 남았으나 결국 렉스 루거를 당해내지 못하고 패배한다. 그 이후로 레이저 라몬과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 매치에서 승리하지만, 숀 마이클스의 개입으로 이긴 정황이 들통나서 즉석에서 재경기가 펼쳐지는데 이때는 레이저라몬의 피니시 기술인 Razor's Edge를 맞고 싱겁게 패배한다. 그 후 다음년도 PPV인 로얄럼블에서 예전에 자신이 부상으로 아웃시켰던 타탕카와 재경기를 갖게 되지만 갑작스러운 실제 부상으로 인해[3] 뱀 뱀 비글로우가 대신 경기를 치르게 된다. 그 후 레슬매니아10에서 어스퀘이크와의 경기가 잡혔으나 역시 부상재발로 인해서 애덤 밤(Adam Bomb)으로 교체되는 등 출연 빈도가 줄어들다가 결국 소리소문없이 방출된다.[4]

1994년엔 종합격투기에도 참전해 1승 3패를 기록했다. 1997년 UFC 13에 참가해 랜디 커투어와 맞붙었으나 1라운드 56초만에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서브미션패했다.

1997년 현역 운동선수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기존에 하는 음악과 정치쪽에 관심을 가졌다. 2003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고 음반을 계속발매했다.

하지만 보디빌더시절부터 복용하던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인해 2003년 총기난사를 벌였고[5] 이로인해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해 방송사에서 출입금지조치를 당했고 알콜중독으로 인해 간경화와 쓸개에 담이 생기기도 했다. 2009년엔 단기기억상실증까지 왔다.

2010년 1월 8일 자신의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시신은 그로부터 이틀 뒤 발견되었다. 자살한 원인은 생활고였다.

4. 파이팅 스타일

경기 스타일은 동구권 스타일에 맞게 딱딱하면서도 절도있는 기본기를 사용하면서도, 링벨이 울리기전에 상대 선수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하여 쓰러뜨리는 브롤러식 경기방식을 혼합한 유형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다양한 격투기를 배운 경력을 이용하여 복싱 펀치 및 어퍼컷으로 경기를 리드하다가, 마지막에는 피지컬에서 나오는 특유의 괴력을 이용한 아르젠틴 백브레이커[6]라는 서브미션 기술이나 플라잉 클로스라인으로 승리를 거두는 복합형 경기스타일이다. 이러한 기믹과 경기스타일은 후배 선수들인 핀레이, 블라디미르 코즐로프 등이 이어받는다.[7]

5. 여담

부인인 카트야 탈루스와 1998년 결혼했으나 2005년 이혼했다.

[1] 원래 마티 자네티의 상대 선수는 릭 마텔(Rick Martel)이었는데 볼가로 교체되었다. 1대1 매치에서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이긴 경기로 심심찮게 언급되는 경기 중 하나다. [2] 그 후 상대팀 Foreign Fanatics의 멤버 피에르 역시 렉스루거의 플라잉 스틸 포암을 여러차례 맞아서 부상으로 아웃된다. 그리고 그 공백은 당시 마초맨과 대립하던 크러시(Crush)가 대신한다. [3] 94년 1월 릭 스타이너와의 경기에서 입은 발목부상 [4] 후에 다시 WWF와 계약을 맺고 돌아왔으나, 당시에 대립하던 렉스루거 타탕카가 모두 없고 자신이 활동하던 환경과도 크게 달라서 컴백경기 없이 계약을 파기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5] 인명피해는 없었다. [6] Argentine Backbreaker : 일명 토쳐 랙, 중세 유럽의 고문기구 중 하나로 사람을 눕힌채로 팔다리를 잡아당겨 고통을 가하는 기구에서 착안한 기술. 특이한 점이라면, 루드빅은 앵글 슬램 자세로 들어서 옆구리 쪽을 꺾었다. 그래서 그런지 왼쪽 옆구리를 공격하곤 했다(백 브레이커를 걸 때는 왼손에 다리, 오른손에 머리가 가게 들었다). [7] 주로 유럽 선수들, 특히 동구권 출신 선수들이 자주 수행하는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