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테오게네스 Θεογένης | Theogen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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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기원전 5세기 |
고대 그리스 에게 해 타소스 섬 | |
직업 | 복싱, 팡크라티온 선수 |
신체 | 194cm[1] |
전적 | 1425승 0패[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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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그리스의 복싱 선수이자 팡크라티온 선수.2. 경력
근대 올림픽의 시초가 되는 올림피아 제전에서 복싱 2연패,[3] 올림피아 팡크라티온 2연패[4]를 거두고, 이스트미아 복싱 9연패,[5] 그리고 네메아 복싱 경기에서 9연패를 차지했다.[6] 다른 모든 경기를 합하면 약 1425승 가량이 되는 어마어마한 전적을 갖고 있다. 게다가 당시에 치러진 고대 격투기 경기는 한쪽이 불구나 죽음에 이르러야만 끝을 볼 수 있는 잔인한 싸움이었다.[7]테오게네스가 상당한 강자였음은 틀림없으나, 1000승이 넘는 전적은 단순히 강함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약한 상대만 골라 경기하여 이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피아 전적만 가져와도 그의 강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위에 서술된 이스트미아, 네메아 등의 경기도 절대 만만하게 볼 경기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는 현대 격투기와는 비교도 할 수가 없을 만큼 잔인하고도 비열했다. 경기 자체가 제우스에게 바치는 의식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생과 사의 갈림길과 같았다. 그렇기에 기권을 하거나, 지고 나서 살아남으면 죽는 것보다 더한 수치를 겪었다. 그런 만큼 선수들은 어떻게든 이겨야 했고, 처절하게 싸웠다. 찌르기, 깨물기, 할퀴기 등 온갖 행위가 이뤄지고 이보다 더한 반칙이 만연했다.
하지만 승자는 만인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고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을 얻었기 때문에 그리스 전역에서 참여가 활발했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남자들의 목숨을 건 사투와 다름없는 경기에서 테오게네스는 복수의 투기 종목으로 연패를 거두었기에 사후에도 자신의 출생 지역인 타소스 섬에서 신처럼 숭배되었다고 한다.
격투기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은 현대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격투 문화일 수 있지만, 당시 시대는 전쟁이 잦았고 올림피아는 선수부터 관객까지 전부 남자였다. 남자는 직업이 군인인 사람들이 다수였고, 목숨이 오가는 전쟁을 몸소 겪는 입장에선 생과 사를 정하는 현실적인 경기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테오게네스가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3. 여담
-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열 살쯤 되던 시절, 길 한복판의 헤라클레스 동상을 직접 뽑아버렸다가 신성 모독으로 벌을 받을 위기에 놓인다. 테오게네스의 괴력을 본 신관들은 그가 격투기 선수가 되는 조건으로 그의 죄를 용서해주었다.
- 그의 기술은 잘 알려진 바가 없으나, 하나 살펴보자면 " 스파르타 전사의 손 공격을 빠르게 피하며 곧장 전사의 두 다리를 들고 넘어뜨려 한 방에 전사의 얼굴을 뭉개버렸다. 이 절묘한 움직임이 다른 레슬링 선수들이나 타 종목의 선수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냈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기술 면에서도 상당히 노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1]
오늘날에도 엄청난 장신에 속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평균 신장을 생각해보면 거인이나 마찬가지였다.
[2]
후술하겠지만 이 당시 격투기는 둘 중 하나가 불구 혹은 사망해야 끝났다.
[3]
기원전 480, 476년
[4]
기원전 480, 476년
[5]
기원전 490, 488, 486, 484, 482, 480, 478, 476, 474년
[6]
기원전 489, 487, 485, 483, 481, 479, 477, 475, 473년
[7]
경기 중 기권을 하면 사회적 비난과 공격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반면 기절하거나 불구가 되어도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경우엔 패배했더라도 존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