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16:11:54

턴스피트

<colbgcolor=#292929><colcolor=#fff> 턴스피트
Turnspit
파일:Turnspit.jpg
탄생년도 불명, 최소한 1576년 이전으로 추정
멸종년도 불명, 19세기 추정
멸종 원인 자동화된 조리도구와의 경쟁에서의 패배로 인한 도태
역할 요리사를 대신해서 바베큐를 굽는 역할

1. 개요2. 기원과 특징3. 동물학대 논란4. 인위선택으로 인한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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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에서 주방일을 돕기 위해 사용된 개의 품종. 주로 뜨거운 불 옆에서 바베큐를 구울 때, 꼬챙이를 돌리는 일을 맡았다. 16세기 경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하며, 따라서 그 이전에 개량된 품종이다. 이후 유럽의 주방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자동화된 조리도구의 등장으로 인해 겨 점차 그 수가 줄어서, 19세기 즈음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영국 웨일즈 "에버게이브니 박물관"에 마지막 턴스피트로 알려진 개의 박제가 전시되어있다. 물론 턴피스트가 개(Canis Lupus Familiaris)에서 별개로 분리된 종은 아니기 때문에 생물학적 의미로서 멸종한 것은 아니지만, 품종 자체가 도태되었으므로 일상적 의미로는 충분히 "멸종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턴스피트의 탄생과 멸종사는 동물학대, 인위선택, 산업화로 인한 가축들의 도태와 해방이라는 여러 흥미로운 화두를 던져준다.

2. 기원과 특징

턴스피트는 꼬챙이에 꽂은 고기를 자동으로 굽는데 필요한 쳇바퀴를 돌리기 위해 짧은 다리와 체구를 가지도록 인위적으로 교배를 시켜서 만든 개의 일종이다. 1576년에 만들어진 Of English Dogs(영국의 개들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Turnespete"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한 품종으로 추측된다. 턴스피트가 원래 어느 품종으로부터 개량되었는지는 불명확하나, 애견모임인 미국 케넬 클럽에서 추측한 바로는 글렌 오브 이멀테리어(Glen of Imaalterrior)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이 추측이 맞다면 작은 체구나 쳐진 귀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형질이었으나 개량 과정에서 귀는 더 쳐진 것으로 보인다.

턴스피트는 뜨거운 불가 옆에서 오랫동안 달려야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지구력이 뛰어났고, 땀샘이 적은 개의 특성상 열 배출을 원할하게 위해, 그리고 비좁은 주방에서 일하기 위해 작은 체구를 가졌다. 고기를 굽는 역할을 맡으면서 절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었으므로 충성심이 뛰어났고, 좁고 시끄럽고 뜨거운 곳에서 오래 일해야했으므로 인내심도 뛰어났다. 턴스피트는 16~18세기 주방에서 흔한 존재여서 그들의 습성이나 특징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기에, 멸종한 품종 치고는 많은 게 알려져있다.

마치 당나귀나 노새처럼, 턴스피트는 주방뿐 아니라 물 펌프, 작은 제분기에도 사용되었다.

3. 동물학대 논란


턴스피트의 고난사를 얘기하기 앞서, 많은 동물들이 실용적인 목적 하에 인위적인 교배를 거쳐 "가축화"되었으며, 개 또한 그 중 하나임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개 뿐만 아니라 소, 말, 닭, 양, 심지어 누에나방 같은 동물들이, 고기나 가죽, 털, 노동력을 얻기 위해 품종개량되었고, 그 일부는 인간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야생 기준으로는) 기괴한 모습으로 인위선택되었다. 개들 역시 사냥, 쥐잡이, 경비, 투견, 애완용 등 다양한 목적에 맞추어 인위적으로 품종개량되었고, 자동화된 기계들이 없던 시절에는 이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었다. 이 당시 가축들은 애완동물처럼 사용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호품이 아니라, 현대의 석유나 전기 같은 중요한 자원이었으며, 심지어는 인간조차 인간에게 착취되었다.

동물들에게 인간의 노동이 전가되고, 그들이 적절한 보상을 얻지 못한 채 착취되었으며, 인간 없이 생존과 번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괴한 신체를 갖게되었다는 것은 비단 턴스피트 뿐 아니라 모든 가축화된 동물들이 갖는 공통사항이다.

따라서 우리는 좁고 뜨거운 주방에서 혹사당한 턴스피트에게 느끼는 연민을, 하루에 수 시간씩 설원에서 무거운 썰매를 끄는 썰매견이나, 도축되기 위해 태어나는 육용 가축들에게 확대하여, 가축화가 본질적으로 가지는 학대성을 인식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가축들이 결국에는 도구로서 태어나고 사용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턴스피트에게 내려진 운명이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이를 합리화할 수도 있다.

최소한 문인들의 기록에 남은 바로는, 당시 영국인들은 턴스피트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여겼다. 턴스피트는 영국 주방에서 흔한 존재였기에 많은 문학작품과 그림 속에 남겨졌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그들의 뛰어난 인내심과 충성심을 칭찬하는 내용이 많다. 요리사들은 턴스피트를 두고 "요리사들의 작은 도우미"라고 애칭했다. 턴스피트들에게도 체력적인 한계가 있으므로 보통 한 쌍으로 짝지어 교대근무를 했음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휴식이 주어졌음을 시사하기도 하고, (목장에 자유롭게 방목되어 도축을 기다리는 소들처럼) 기만적인 복지로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턴스피트들은 필요이상으로 학대되기도 했다. 요리사들은 턴스피트가 쳇바퀴를 더 빨리 돌리게 하기 위해 화로에 있는 숯불을 쳇바퀴에 넣어서 화상을 입히기도 했으며,[1] 19세기 사람들은 턴스피트의 쳐진 귀와 땅딸막한 체형이 우스꽝스럽다고 여겼다. 결국 주방일을 돕기 위해 인위 선택된 '우스꽝스러운' 외모는 산업화 이후에 이들이 애완동물 품종이나 야생견 어느쪽으로도 인위/자연선택되지 못하고 멸종된 원인이 되었다.

이는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자기가 아끼는 말에 채찍질하는 기수나 마부들처럼, 옛날에는 가축들이 친구와 도구 사이에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고, 산업화 이전에는 주방에서 필수적인 존재였던 턴스피트가 긍정적으로 인식된 반면, 더 이상 주방에서 쓸모가 없어진 뒤에는 애물단지가 되어 우스꽝스러운 외모로만 놀림받았다고 생각하면 당시 사람들의 모순적인 인식을 이해할 수 있다.

4. 인위선택으로 인한 멸종


선술했듯 턴스피트를 주방노동에서 해방시킨 것은 동물인권 신장 따위가 아니라 산업화로 인한 자동화된 주방기기들의 발명이었다. 19세기 후반 무렵에는 턴스피트들이 완전히 주방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자동차와 기차의 발명으로 이동수단에서 해방된 말들의 역사와 일견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턴스피트는 우스꽝스러운 외모로 인해 애완동물로 선택받는 데에 실패했으며, 야생견이 되기에는 생존에 부적합한 체형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멸종해버리고 만다.

마치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종들이 자연선택으로 도태되듯, 인위적 환경 변화(산업화)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턴스피트는 주방일에 적합한 형질을 가져 인간에 의해 생물학적으로 대번성했지만(이 번성이 각 개체들의 행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반대로 주방일에 너무 적합하게 진화하는 바람에 바뀐 환경에서는 멸종해버린 것. 자연에서도 너무 특이한 생존전략을 갖거나 지나치게 좁은 서식지를 가지고 있는 동물들이 환경변화로 인한 멸종에 취약하다는 점을 비추어보면 인위선택과 자연선택 사이에서의 유사점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동물권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고려했을 때, 아마도 많은 턴스피트들은 그대로 길거리에 유기되거나, 근대까지도 (대중적이진 않아도) 서유럽에서 개고기가 유통, 소비되었으니 마구잡이로 도축되었을 것이다.



[1] 고기를 굽는다는 노동 특성상 사실 그다지 빨리 쳇바퀴를 돌릴 필요는 없을텐데, 지쳐서 느려진 턴스피트들에게 사용되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