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2 22:21:08

태아의 권리능력

1. 개요2. 대한민국 법제상 태아의 권리 능력3. 학설4. 의미5. 함께보기

1. 개요

대한민국 민법 제3조: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법적으로 사람이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이유는 권리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리능력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지위로 자연인과 법인에 부여된다. 단체나 기관인 법인은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권리 능력을 획득하는 데 반해 사람인 자연인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권리 능력을 가진다.

민법 제3조에 따르면 자연인의 권리 능력은 출생 시점부터 발생한다. 문제는 이 '출생'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 시점을 논하느냐라는 것이다. 여성의 자궁안에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착상하는 순간인가? 또 모체에서 분만을 위한 진통이 시작되는 때인가? 태아의 신체 일부가 모체 바깥으로 나온 시점부터인가? 태아가 전부 모체 바깥으로 나온 그 시점인가? 아니면 전부 나와서 자신의 폐로 독립적인 호흡이 가능하게 된 때인가? 이 설들은 각기 수태설, 진통설, 일부 노출설, 전부 노출설, 독립 호흡설로 구분지을 수 있다.

먼저 수태설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면 생명체로 볼 수 있다는 학설이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은 아니다. 진통설은 출산에 앞서서 주기적인 진통이 시작될 때를 사람의 시작으로 본다. 일부 노출설은 태아의 신체 중 일부가 모체 밖으로 노출됐을 때를 출생 시점으로 간주하고, 전부 노출설은 태아의 몸이 모체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 때 출생 시점으로 본다. 독립 호흡설은 아기가 모체에서 완전 분리되어 자신의 폐로 호흡하기 시작한 때부터 출산으로 인정한다.

2. 대한민국 법제상 태아의 권리 능력

그렇다면 출생 시점은 대한민국에서 언제로 보고 있는가? 대한민국 법원에선 민사상으로는 전부 노출설[1], 형사상으로는 진통설을 채택하고 있다.[2] 이에 따라 전부 노출설을 따르는 민사 사건에서는 기형아와 조산아들도 권리 능력을 가지게 되고 진통설을 채택하는 형사 사건에서는 진통과 분만이 개시된 후의 태아도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만약 이때 태아를 죽이게 된다면 이는 형법상 살인죄로 의율된다. 그리고 진통 개시 전의 태아를 죽인 경우에는 형법상 낙태죄로 의율된다(현재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은 낙태죄 부분은 임신부의 자기낙태 및 이에 응한 의사 등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비범죄화한 것이므로, 타인이 진통 전 태아를 고의적으로 죽인 경우에는 여전히 비동의낙태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출생 전 태아는 어떠할까?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출생 전의 태아에 대하여 국내 법은 태아에 대한 권리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태아를 모체의 일부로 보지만 민법상 예외는 있다.

첫째, 인지를 받을 권리로 태아가 부모에게 자식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이야기한다.

둘째,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 배상의 청구에 있어 태아를 이미 출생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예컨대 어머니가 임신 중에 각종 사고를 당해 태아가 손상을 입을 채로 태어난 경우 이 아이의 입장에서 상대편 가해자에게 가해 행위로 인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 상속 순위에 있어서도 태아를 출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만약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라면 태아에게도 상속이 개시된다는 것이다.

넷째, 유증을 받을 권리. 유증은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이므로 계약인 사인증여와는 구별된다. 태아는 권리능력이 없으므로 법률행위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계약에서의 승낙이 불가능하므로 태아에 대한 사인증여는 불가능. 참고로 이는 판례인 정지조건부설을 따른 것이다.

이 같은 태아의 권리능력은 각각 민법 제858조, 태아는 부(아버지)로부터 인지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민법 제762조(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민법 1000조 3항(태아는 상속 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에 기인한다.

이처럼 민법에서 예외적으로 태아를 출생한 것으로 보는 이유는 '향후 태어날' 태아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며 만약 태아가 중간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권리 능력 자체가 없으므로 상속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즉 위의 권리는 태아가 무사히 태어났다는 전제 아래 성립하는 것이다.

3. 학설

학설상으로는 해제조건부설과 정지조건부설로 나뉘는데 해제조건설은 태아의 권리를 인정받지만 사산되거나 유산되었을 시 그 권리가 상실된다는 설이고 정지조건부설은 태어난 이후 처음부터 권리가 있었던 것처럼 여긴다는 설이다.

예를 들어 어느 임산부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임산부도 그리고 태아도 문제가 생겼다면, 그리고 태아가 사산되어서 태어났다면 이런 경우에는 이 학설들이 어떻게 적용될까?

정지조건설에 따르면 태아가 태어날 것을 정지조건으로 하여 손배청구권이 발생하고 해제조건설에 의하면 태아가 사산하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하여 손배청구권이 발생하는 것이다. 민법에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서 해석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 학설은 해제조건부설을 따르고 판례는 정지조건부설을 따른다. 하지만 태아가 사산했다면 학설에 상관없이 손배청구권은 아예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되는 것이다.뭔가 굉장히 불합리해 보이지만 넘어가자

또 해제조건부설에 따르면 채권계약의 일종으로써 법정대리인이 필요한 사인증여나 태아의 인지청구에 관하여 태아는 어머니를 법정대리인으로 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법정대리인의 대리권 범위는 민법 제118조에 따라 이용, 보존, 개량 행위에 한정되므로 처분 행위를 할 수는 없다.

정지조건부설은 아직 태아인 상태에서는 권리능력 자체가 없고 태아는 그에 따라 법정대리인을 가질 수 없으므로 사인증여나 인지청구를 부정한다.

4. 의미

...(전략)... 특히 실제로 법적 처리에 별다른 차이를 낳지 않는, 또는 차이가 있다고 해도 매우 예외적으로밖에 문제되지 않는, 극히 미세한 법률논의에 말려 들어갈 필요가 없다.(그러한 의미에서 민법총칙의 초입에 태아의 권리능력을 둘러싼 이른바 정지조건설과 해제조건설의 대립이 제시되어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과격한 충고를 하자면, 이 부분의 서술은 아예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양창수, <민법입문> 中

결론적으로 앞에서 본 두 견해는 태아가 사산한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논쟁이 되고, 반대로 태아가 정상적으로 출생한 경우에도 출생한 태아가 결국 위 권리들을 행사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해제조건설은 태중에 있을 때에도 권리능력을 이 부분에 한하여 인정하는 견해이므로, '태아인 중에 임신부가 태아를 대리해 유효하게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정도 차이가 있다.

법학도들에게 이 정지조건설, 해제조건설 논의는 몇가지 상징성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법학 커리큘럼에서 민법총칙은 맨 처음 펼쳐 보는 과목이 되고, 사람의 권리능력 부분은 법학을 맨 처음 공부할 때 민법총칙에서 거의 맨 처음 나오는 부분이 된다.여기서 법 해석에 대한 견해 대립이 명확히 나오는 사실상 첫 국면이 이 '태아의 권리능력' 부분인 것이다. 성경에 비유하자면 빛이 있으라가 나오는 대목쯤 위치에서 위 논의들을 보는 것. 곽윤직을 비롯해 민법학자들은 학자들의 다수설과 판례가 서로 다르다는 점 때문에, 교과서에서 쓸데없이 고퀄리티로 위 논의를 장황하게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법학도들은 민법교과서 첫 장에서부터 한참 뒤에야 다루는 법률행위의 조건 (정지조건, 해제조건), 상속, 손해배상 등의 법리를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장황한 논의들을 공부해야 했으나, 마치 걸음마도 떼기 전에 마라톤을 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작 나중 가서 보면 위 논의가 일상생활에서 별반 실익도 없는 논의였다는 점에서 강력한 현타를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정리하자면, 민법을 처음 배울 때, 다수설과 판례가 달라서 잘 외워야 되고 각자가 여러 근거를 들어 갑론을박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별 실익이 없는 첫 대목의 시험공부 내용(...)이라는 것. 이 때문에 양창수는 법학 초학자를 위한 입문서인 '민법입문'에서 위 인용문과 같은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위 논의의 실익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법학 전공생들은 위 논의들을 아주 잘 숙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5. 함께보기




[1] 서울고등법원 2006나56833 판결 [2] 대법원 2005도383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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