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4 14:17:58

크누트

1. 중세 스칸디나비아와 잉글랜드의 대왕
1.1. 일생
1.1.1. 즉위전1.1.2. 덴마크의 왕1.1.3. 1028년, 스칸디나비아 대제국1.1.4. 사망
1.2. 가족1.3. 기타1.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4.1. 빈란드 사가에서의 모습
1.4.1.1.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그에 따른 각성
2. 북극곰
2.1. 탄생2.2. 일반에 공개2.3. 사망

1. 중세 스칸디나비아와 잉글랜드의 대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9px-Coa_King_Edmund_Ironside.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0px-Royal_Coat_of_Arms_of_England_%281399-1603%29.sv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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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암체어 제너럴 매거진 선정 위대한 장군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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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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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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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돌
흉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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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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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연방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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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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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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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nut_der_Gro%C3%9Fe_cropped.jpg
왕명 Cnut[1] the great, 혹은 Canute
생몰년도 995년? ~ 1035년 11월 12일
재위기간 덴마크 1018년~1035년
노르웨이 1028년~1035년
잉글랜드 1016년~1035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nute.png
북해 제국이라 불리기도한 그의 영토. 붉은색이 직할영토이며 주황색은 조공국, 노란색은 동맹국이다.

고대 노르드어: Knútr inn ríki (크누트 대왕)
고대 영어: Cnut se Micela (크누트 대왕)
덴마크어: Knud den Store (크누드 대왕)
노르웨이어: Knut den mektige (크누트 대왕)
영어: Cnut the Great (크뉴트 대왕)

1.1. 일생

1.1.1. 즉위전

덴마크의 왕 스벤 포크발드의 차남으로서 아버지와 함께 잉글랜드 정복전에서 맹렬히 활약하였다. 101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1015년에 옛 덴마크 바이킹이 상당부분을 지배했던 것을 명분으로 잉글랜드를 다시 공격하여 에드먼드 2세를 몰아내고 왕위를 손에 넣는다.

1.1.2. 덴마크의 왕

뒤를 이어 형 하랄 2세가 사망하자 덴마크의 왕위도 겸직하게 된다.

1.1.3. 1028년, 스칸디나비아 대제국

그 뒤에, 1028년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일부, 스코틀랜드의 일부도 정복한다. 이로서 당대에 영국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걸쳐있고 북해마레 노스트룸[2]으로 삼다시피 한 스칸디나비아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1.1.4. 사망

하지만 1035년 크누트가 41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제국은 분열되어 당대에 그치고 만다. 아들이 셋 있었으나 세 아들 모두 20대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는데, 막내 아들인 하레크누드는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왕위를 물려받는데 성공한다.

1.2. 가족

아직 북유럽의 기독교화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시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일부다처제의 전통에 따라 왕비가 두 명이 있었다. 첫 번째 아내는 잉글랜드 귀족인 Aelfgifu로 장남 잉글랜드의 해럴드 1세와 차남 노르웨이의 스벤[3]을 낳았고, 두 번째 아내는 노르망디의 엠마로 삼남인 하레크누드의 어머니였다.

1.3. 기타

그의 영어 이름 Canute에서 온 단어인 Canutism은 변화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려는 완고한 태도를 뜻하는데, 유래가 된 일화가 있다. 크누트가 신하들을 데리고 어느 바닷가에 갔는데, 파도가 밀려오는 데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파도에게 자신의 땅을 깎아내는 것을 꾸짖었고, 내 발과 옷을 적시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파도는 계속 밀려왔고, 크누트는 파도조차 멈출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1.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4.1. 빈란드 사가에서의 모습

성우는 오노 켄쇼. 실존인물로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스벤왕의 차남이자 덴마크 제 2왕자. 래그널이 양육을 전담했으며 바이킹들의 왕인 덴마크왕의 자식답지 않게 여리고 소심하게 자랐다. 적어도 왕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덴마크 제 2왕위계승권을 가진 그의 존재자체가 덴마크의 국론을 분열시켰으며 이 때문에 부왕인 스벤왕은 크누트보다 더 왕위에 어울리는 장남 해럴드의 후계구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차남인 크누트를 제거하려 한다. 이때문에 승부가 나지 않는 런던공략의 지휘관으로 임명,

4천의 군세를 맡겼으나 이 군대는 토르켈 부대에 의해 괴멸되었고 크누트는 후견인인 래그널과 가정교사인 빌바르도 신부와 함께 포로가 된다. 이후 그의 신병을 둘러싸고 각자 목적을 가진 세력들의 다툼에 휘말려 들지만 이와중에 각성, 진정한 왕족으로 거듭나 오히려 자신을 서로 갖기 위해 다투는 두 세력[4]을 모두 자신의 휘하에 거두고는 부왕을 찾아가 옥좌를 원하고 있음을 대놓고 도발한다.

아셰라드의 계책[5]에 의해 부왕 사후 잉글랜드 통치대행을 선언하며 군권을 장악, 3년만에 잉글랜드 정복을 완료한다.

덤으로 아셰라드의 죽음에 이성을 잃고 자신에게 칼을 휘둘러 뺨에 상처를 남긴 토르핀 카를세프니를 노예로 파는 것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원래는 왕자 살해미수죄[6]로 바로 죽일 수도 있고 갖은 고문 끝에 공개처형을 당할만한 상황에서.

이후의 행보는, 반대 세력에 대한 잔혹한 숙청과 원정을 다니면서, 이전의 유약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는 냉혹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왕권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자신에게 반대하지 않거나 항복하는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지만, 반항하는 자에게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득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도 가차없이 제거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형(!)까지도 제거해 자식없는 형으로부터 영토를 물려받고 형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자신에게 충성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케틸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고 어거지 누명을 씌워 제거하려던 걸 봐도 알 수 있다.

참고로 크누트를 죽은 척하려는 작전을 짤 때 그의 외모가 여성스러워서 그를 닮은 여자 노예를 이용했다.하지만 3년이 지났을 때 모습은 짧은 머리에 수염을 길러서 여성스러운 면이 확 사라졌다 .그래도 우락부락한 다른 노르드 남성과 비교하면 충분히 여성적이다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갈고 닦아서 케틸의 아들인 토르길같은 강력한 전사의 기습공격도 막아낼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토르길이 왕의 친위대인 종사단 10여명을 홀로 베어버릴 정도의 강자인 점을 고려하면 크누트의 실력도 만만치 않으나, 어디까지나 운빨이 컸다. 곁에 있던 종사 2명은 한칼에 목이 날아갔고 엉겁결에 칼로 막았다. 왕이니 칼도 좋은 것임에도 토르길의 공격에 칼이 휘어질 정도였다. 이러니, 크누트도 내 힘으로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고 종사들이 올때까지 버티는 정도였다. 즉 싸움이 조금만 길었더라면 크누트도 토르길에게 죽을 뻔했다. 다행히 종사장 울프와 수십여명 종사들이 달려와 토르길은 팔에 부상을 입고 달아나야 했지만 종사장 울프는 그에게 한쪽 눈을 잃었다.
1.4.1.1.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그에 따른 각성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왕다운 모습의 인격을 각성하는 부분이 좀 난해한데, 사실 깊이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일단 기독교적 관점에서 사랑이란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입장을 내 입장과 같은 가치를 갖고 대하는 것'이다. 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잘 드러난다. 이것이 어째서 가치있는 가르침인가 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어서, 자기 입장만을 생각하여 입장이 다른 상대를 만났을 때 힘과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들게 마련이다. 희소한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싸움은 비효율과 비극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매우 불행하게 만든다. 크누트가 보는 세상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 그 자체로써, 끝없이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모든 상황에서 힘을 통한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으며, 모두가 각자의 이득을 추구한다.
'사랑'은 이러한 싸움을 피하기 위한 매우 효율적인 대안이다. 상대가 나의 득실을 존중해주고 또한 내가 상대의 득실을 존중한다는 상호 신뢰가 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싸우기보단 협력하여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죄수의 딜레마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사회 전체 규모에서 실현된다면 사회는 끝없는 파괴 대신 끝없는 번영을 이루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작중에서 크누트 왕자와 빌바르도 신부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차별없이 싸우거나 빼앗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를 사랑하여 그를 위해 다른 것을 짓밟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이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며, 무생물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다시말해, 인간은 차별은 가능하지만 사랑은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래서 끝없이 서로 싸우고 빼앗는다. 그래서 그가 본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크나큰 비극이므로, 크누트 왕자는 모든 싸움에서 이겨 절대자로써의 힘을 갖춤으로써 무의미한 싸움의 종결을 강제하고자 마음먹는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지상 낙원의 실현이다.

하지만 만화내에서 너무 간략하게 설명하였고 무엇보다 그 후 크누트가 자신의 지상낙원을 이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략과 권모술수들에 의해서 그 자신도 점점 피곤하고 힘들어지는 상태. 자신의 형을 독살하였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흔들림없는 모습을 겉으로는 보였지만 내면으로서는 점점 썩어가고 있었다. 그라다가 자신과는 다른 형식으로 떠나는 토르핀을 보며 다시 한 번 시원하게 웃는다. 이후 잉글랜드에 주둔 중인 덴마크 군을 일부만 남기고 해산, 올바른 통치를 하면서 잉글랜드 인으로부터도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아 충성을 받게 된다. [7]

2. 북극곰

파일:attachment/크누트/knut1.jpg
파일:attachment/크누트/knut2.jpg

탄생 : 2006년 12월 5일
사망 : 2011년 3월 19일

2.1. 탄생

독일 베를린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사망한 북극곰. 어미곰 토스카가 베를린 동물원에서 낳은 2마리의 새끼 가운데 한 마리로, 둘 모두 미숙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어미곰이 돌보지 않아 하나는 생을 마감하고 크누트만이 사육사 토마스 되르플라인의 노력 끝에 겨우 살아남게 되었다.

2007년 3월 초, 독일의 동물 권익 보호 운동가 프랑크 알브레히트는 크누트를 인간이 길러서는 안 되고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헨 동물원의 책임자 볼프람 그라프 루돌프(Wolfram Graf-Rudolf)도 ‘어미가 버린 새끼는 죽도록 두는 것이 옳고, 베를린 동물원 측도 강단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고 동의를 표했는데, 2006년에 알브레히트는 라이프치히 동물원이 부모가 버린 어미 느림보곰이 안락사당하는 것을 막으려고 재판을 걸었으나 법원에서 기각된 적이 있었다며 자신의 주장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을 뿐 크누트를 정말로 죽이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 놀란 여러 아이들이 몰려들어서 동물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그 소식이 전해져 크누트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편지와 e메일이 베를린 동물원에 몰려들었으며, 마침내 베를린 동물원은 계속 보호하겠다고 선언하였다.

2.2. 일반에 공개



2007년 3월 23일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그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400명의 기자가 취재하려고 몰려들었고, 그를 소재로 하여 무수히 많은 장난감과 영상, 책이 발매되었다. 베를린 동물원은 2007에 500만 유로의 입장 수익을 얻었는데 이는 전년에 비해 30%나 증가한 액수였으며, 동물원 역사상 가장 많은 것이었다.

크누트는 무럭무럭 자라서 생후 7개월이 된 2007년 7월에는 몸무게가 50kg이 되었다. 11월에는 90kg이 되었고, 대중에 공개된 지 1년이 지나자 130kg까지 성장하였다.

2008년에는 사육을 담당했던 토마스 되르플라인이 크누트의 장난으로 부상을 입고 안전상의 이유로 격리되자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가 심장발작으로 생을 마감했다. 부모처럼 따르던 토마스가 죽자 크누트는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어른이 되자 아무래도 어릴 때만큼 귀엽지 않다 보니 인기도 서서히 떨어졌다. 다소 우울증에 시달리는 듯 하다는 견해도 있었으며, 어릴 때부터 인간의 손길을 탔기 때문인지 같은 동물원에 있는 다른 북극곰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2.3. 사망



생후 4년이 된 2011년 3월 19일, 왼쪽 다리를 떨다가 힘없이 동물원의 물 속으로 떨어졌으며 그 뒤 시체가 연못 위에 떠오른 모습이 600~700명 가량의 관람객들에 의해 목격되었다.

4월 1일, 병리학 전문가에게 검사를 의뢰한 결과 이전부터 바이러스 성 뇌염을 앓고 있었으며, 뇌염으로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긴 상태에서 물에 빠져서 익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이 내려졌다. 설령 익사하지 않았더라도 뇌염 때문에 오래 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돌연사를 슬퍼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베를린 동물원에 몰려들어 꽃다발을 남겼다.

[1] 덴마크어로는 Knud,노르웨이어/스웨덴어로는 Knut [2] '우리들의 바다'라는 뜻의 라틴어. 원래는 지중해를 의미하는 단어로 로마 제국이 존재하던 시절엔 지중해에 맞닿은 모든 영토가 로마의 땅이었기에 지중해를 이렇게 불렀다. [3] 1030년에 아버지에 의해 노르웨이 국왕으로 임명되었으나 폭정을 펼쳐 금방 쫓겨났고 마그누스 1세가 노르웨이의 왕위를 차지했다. [4] 이래봤자 아셰라드쪽은 내분으로 자멸. [5] 처음부터 스벤왕의 암살을 계획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때를 기다리다가 스벤왕이 자신을 궁지로 몰자 미친척하고 직접 스벤왕을 죽인뒤 크누트에게 죽임을 당해 크누트의 왕위계승에 더욱 명분을 실어준다. [6] 그것도 직전에 국왕이 살해당한 바로 그 현장에서다. [7] 원래 크누트 왕이 많은 군대를 데려온 것은 잉글랜드 인들을 찍어누르기 위해서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이로 인해 오히려 잉글랜드 인들은 크누트 왕을 침략자로 보고 있었다. 거기다 크누트 왕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케틸같은 유력한 부자들을 꼬투리를 잡아 턴 다음 그 재산을 몰수하는 식의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었다. 즉, 부자들을 털어서 군사비를 충당하고 거기에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일석이조(?)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토르핀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는지 군대를 해산하고 그만큼 세금을 낮추게 되자 오히려 잉글랜드 인들에게 환영을 받게 된 것. 그대신 그간 군사력을 줄여 바이킹을 본격적으로 토사구팽할 계획을 세우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