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2:18:26

쿵 리

Strikeforce 미들급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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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쿵 리
(Cung Le)[1]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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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사이공, 베트남 공화국
거주지 산호세, 캘리포니아
생년월일 1972년 5월 25일 ([age(1972-05-25)]세)
입식 전적 17전 17승 (12KO)
종합격투기 전적 12전 9승 3패
8KO, 1판정
3KO
체격 178cm / 84kg / 180cm
주요 타이틀 1995 IWUF 세계 우슈 선수권 대회 (산타) -80kg 동메달
1996 IWUF 세계 우슈 선수권 대회 (산타) -80kg 동메달
1997 IWUF 세계 우슈 선수권 대회 (산타) -80kg 동메달
Strikeforce 2대 미들급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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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베트남계 미국인 산타, 킥복싱, 종합격투기 선수.

2. 전적

3. 커리어

3.1. Strikeforce

종합격투기 데뷔 이전에 이미 각종 산타, 킥복싱 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던 쿵 리는 2006년 3월 Strikeforce를 통해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했다. 사실 젊었을 때의 산타 경력이 이미 넘사벽으로, 북미에서는 레전드급 선수중 하나였다. 그가 출연한 교본과 기술 강좌도 꽤 유명하다. 상대인 마이크 알트만을 화려한 킥으로 난타하며 KO승을 거둔 후, Strikeforce에서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달렸다.

이렇듯 만나는 상대마다 난타를 하며 죄다 KO로 끝내버렸는데, 그중에는 전 UFC 선수인 브라이언 워렌, 제이슨 본 플루, 새미 모건 등도 끼어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죄다 피하거나 흘리면서 귀신같은 타이밍에 날카로운 킥을 내지르는 쿵 리의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중국권법의 고수와도 같았다. 결국 5연승 5KO라는 전적을 찍은 뒤 Strikeforce 미들급 챔피언인 프랭크 샴락의 타이틀에 도전할 권리를 얻었다.

2008년 3월 드디어 프랭크 샴락과의 대결이 열렸다. 과거 완벽한 타격과 그래플링의 조화로 컴플릿 파이터의 프로토 타입이라고까지 일컬어졌던 샴락이었으나, 쿵 리의 테크닉에 완패를 당하고 만다. 샴락의 타격은 레그킥을 제외하고는 거의 먹히지 않았고, 테이크 다운 시도도 모두 실패로 끝났으며, 결국 3라운드 내내 타격에서 일방적인 우세를 보인 끝에 3라운드 종료 후 샴락의 오른팔 부상으로 경기 속행 불가가 선언되며 쿵 리의 챔피언 등극이 선언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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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로부터 1년 반 가량을 경기를 갖지 않고 보내더니, 2009년 9월에 영화에 출연한다며 돌연 타이틀을 포기해버렸다. 그렇게 종합격투기에서 멀어진 듯한 보습을 보이더니, 영화 촬영이 연기되면서 11월에 다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쨌든 2009년 12월 Strikeforce 에볼루션에서 복귀전을 가졌다. 상대는 EliteXC 등 2위권 단체를 돌며 괜찮은 활약을 보였던 스캇 스미스로, 타격 베이스이기에 쿵 리에게 딱 좋은 재활 떡밥인 듯 보였고, 경기에서도 예상대로 쿵 리가 샌드백 치듯 스미스를 농락하기 시작했으나, 공백 탓인지 후반 체력이 떨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스미스의 왼손에 제대로 걸리며 파운딩으로 KO패하며 충격의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2010년 6월 영화를 다 찍었는지 다시 Strikeforce에 출전했다. 상대는 첫 패배를 안겨준 스캇 스미스였는데,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고 KO로 잡아냈다. 밋진 백스핀 킥으로 스미스의 복부를 강타하며 다운을 빼앗은 후 파운딩과 니킥으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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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UFC

2011년 11월 UFC 139에서 반달레이 실바를 상대로 UFC 데뷔전을 가졌다. 타격전의 양상으로 이루어진 시합에서 초반 다운을 뺏는 등 선전했고 경기 흐름도 좋았으며 정타 수에서도 넘사벽이였으나, 2라운드 중반부터 페이스가 떨어지더니 실바의 빰 클린치 니킥에 걸리며 TKO패를 당하고 말았다.

2012년 UFC 148에서는 패트릭 코테를 상대로 경기를 가졌다. 킥의 움직임이 갈수록 둔화되었고 체력의 문제도 약간 보였지만, 실바 때보다 경기를 침착하게 이끌어가며 만장일치 판정승을 기록했다.

2012년 11월 10일 UFC on FUEL TV 6에서 리치 프랭클린을 상대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객관적 전력 및 현재 위치에서 쿵 리가 압도적으로 열세인 경기였다. 게다가 패트릭 코테와의 경기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어 회복도 덜 되었지만, 아시아권인 마카오에서 경기를 꼭 하고 싶어 출전을 강행한다는 보도가 나오며 승리 가능성은 더욱 낮아 보였고, 역시나 시합에서도 킥 타이밍을 빼앗기며 밀리는 듯 보였다. 그런데 1회 중반 치고 들어오던 프랭클린에게 오른손 카운터를 적중시키며 실신 KO승을 거두며 도박으로 유명한 마카오에서 대박을 터뜨렸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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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UFN에서 마이클 비스핑과의 경기에서 4라운드 4분 KO로 패배. 이후 경기를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

결국 2015년 1월 42세의 나이로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은퇴했다.

4. 파이팅 스타일

리얼 이소룡, 쿵후 마스터 등의 칭호가 따라다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산타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가장 먼저 배운 격투기는 태권도인데, 10살 때 또래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그를 보고 부모님이 권했다고 한다. 14세부터는 레슬링도 배웠고 이후 산타, 킥복싱 등 다양한 격투기를 배웠다. 이후 프로 산타 무대에서 16전 전승을 거두었고, 아마추어 무대에서도 18승 3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US National Championships 대회에서 4차례 우승했고, 산타 월드컵에서 3회 동메달을 수상했으며, 2001년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IKF 산타 라이트급 토너먼트에서 쇼니 카터를 만장일치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고, K-1에도 출전해 3전 전승을 거두었다.

종합격투기 무대에서도 사우스포 스탠스에서 던지는 화려하고 다양한 킥 위주의 공격을 선보인다. 마치 여느 선수들이 펀치를 뻗는 것처럼 킥의 활용도가 높다. 빠르고 날카로운 데다가 무엇보다 움직임이 변칙적이고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다. 주로 활용하는 테크닉은 상대의 펀치 거리에서 사이드킥을 던진 후 스피닝 백 피스트로 데미지를 주는 패턴과 잽으로 거리를 좁힌 후 스피닝 백 킥으로 상대를 밀어내거나 데미지를 주는 패턴을 활용했다.

펀치 회피력이 좋아 상대의 공격은 한 대도 안맞고 이 쪽은 무슨 샌드백 치듯 두들겨 패기 때문에 거의 상대를 농락하는 듯이 보인다. 실제로도 간 좀 보고 되겠다 싶으면 능욕 모드에 들어간다.

레슬링도 꽤 오랫동안 수련했고 산타 자체도 레슬링 스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프랭크 샴락이 클린치에서 넘기지 못했을 정도로 클린치에서의 대응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주로 상대가 들어오면 더블렉으로 메치는 능력과 사이드킥을 던지고 가위치기로 상대를 테이크다운시킬 수 있는 패턴을 잘 활용했다. 클린치에서도 목감아던지기나 업어치기로 상대를 테이크다운시켰으며 킥캐치에도 상당히 능해 스윕으로 상대를 넘기는 것도 잘 했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작은 체격, 그리고 그에 따른 파괴력의 부재와 약한 맷집을 들 수 있다. 미들급에서는 상당히 작은 체격인데 그 때문인지 일격에 상대를 보내버리는 파괴력은 부족한 편이다. 스캇 스미스와의 1차전이나 반달레이 실바와의 경기에서는 잘 압도하다가도 한 방에 걸려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라운드 테크닉에 대해서는 미지수이지만 레슬링이 워낙 좋아서 넘어뜨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강자와의 대전이 적은 것도 있다. 프랭크 샴락에게 승리하긴 했으나 당시 샴락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고, 1승 1패를 주고받은 스캇 스미스도 1류급 선수로 평가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것이 사실이며, 게다가 제이크 쉴즈와의 대전을 피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만만한 놈들만 골라 싸우려 든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순수 동양인이 어려움을 느낄만한 체급의 시작점이라는 미들급에서 메이저 단체 챔피언까지 지내는 등 이 정도의 전적을 올리는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다. 더군다나 2012년 만 40세로, 40대에 이 정도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인 셈이다. 약점이 있는 건 어느 선수나 마찬가지고 다 되면 아무나 다 챔피언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깔 건 못되며, 맷집이나 파워 부족도 어찌보면 체격의 한계일 수 있다.

5. 기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태어나 사이공이 함락되기 3일 전에 부모와 함께 헬리콥터로 탈출했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으며 또래 아이들은 그가 동양인이라는 것을 빌미로 그를 따돌리고 괴롭혔다. 이때부터 격투기를 시작했는데, 산타를 배운 후에는 아이들이 더이상 그를 놀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레슬링까지 배우면서 주니어 대회에 출전해 입상도 하는 등, 학교에서 거의 짱을 먹었던 모양이다.

격투계에서는 쿵후 컨셉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이런 호칭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을 쿵후 마스터가 아닌 종합격투기 선수로 봐달라고 한다.[5]

영화 철권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맡은 역은 마샬 로우였다. 제작 초기에는 나름 괜찮은 캐스팅으로 평가받기도 했으나 결과물이 워낙 괴작이었기에 결국 까였다. 게다가 여기서 로우는 별 비중도 예선급 대회에서 카자마 진에게 패했고. 그래도 미겔 까바예로 로호로 분했던 로저 후에르타보다는 낫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DVD로 직행한 물건이니 철권 팬이건 종합격투기 팬이건 뭔가 기대할 생각은 버리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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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튬을 입고 찍은 사진

철권 이후에도 영화계 활동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09년 SF 영화인 팬도럼에도 출연했는데, 거의 주연에 가까운 조연으로 뛰어난 무술 실력을 선보이며 영화의 액션씬 대부분을 커버했다. 게다가 산타를 배울 때 중국어를 틈틈히 배워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홍콩 액션 영화 촬영 당시 배우 및 스태프들과 의사소통에도 문제 없을 수준은 된다.[6] 그 이후로 격투기 활동은 크게 줄어들어서 항간에선 종합격투기는 유명세 때문에 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배우로써는 아직 메이저 영화로는 팬도럼 외에는 죄다 저예산 B급 액션물의 주연 및 조연으로 활약 중이다. 그 중 장 클로드 반담과 ‘드래곤 아이즈’에 출연을 했다. 탄탄한 무술실력과 함께 액션 코디네이터로써의 감각이 좋아서 액션 영화에 러브콜을 꽤 많이 받고 있어 나름 배우로써의 커리어를 욕심을 내지 않고 충실히 쌓고 있다. 본인 역시 배우로써 대성공을 누리기보다는 본인이 잘 할수 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다니엘 코미어, 케인 벨라스케즈 등의 강자들이 소속된 체육관으로 유명한 AKA 소속이다.

6. 관련 문서



[1] 베트남식 본명은 레꿍(Lê Cung) [2] 본 플루 초크의 유래가 된 그 사람이다. MMA에서 최초로 이 기술로 승리했다. [3] 이 경기는 2008년 Strikeforce 올해의 경기에 선정되었다. [4] 이 경기는 KO 오브 더 나이트를 수상했으며, 보너스로 4만 달러를 받았다. [5] 다만 이 발언은 북미 팬들을 위한 립서비스일 가능성도 있다. [6] 하지만 대부분 대사가 없거나 대사가 있어도 전문 성우가 더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