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2:09:36

쿠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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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사준(四駿)
무칼리 보로클 보오르추 티라운
사구(四狗)
젤메 수부타이 제베 쿠빌라이

Сорган-Шира / 忽必來(홀필내), 虎必來(호필내), 庫必來(고필내)
(? ~ 1211)

1. 소개2. 생애3. 여담4. 대중매체에서

1. 소개

몽골 제국의 장수.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는 장수인 사준사구 맹장형인 4구의 한 명으로 보르지긴 오복 바를라스부 출신이었다.[1]

2. 생애

바를라스 부족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본업은 케레이트의 전령대장이다. 케레이트의 에르케 카라[2]가 토그릴의 왕좌를 찬탈했을때 이 사실을 칭기스 칸에게 알려 도움을 청하였다.

칭기즈 칸 자무카의 세력에서 벗어나 독립할 때 귀순했으며 타타르 토벌, 쿠이텐 전투, 나이만족과의 전투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나이만족과의 전투에서는 수부타이, 제베, 젤메 등과 함께 선봉에 서서 활약했다고 한다.

1206년 몽골이 통일되자 천호장과 군정 책임자의 직위가 하사되었으며, 서하 정벌에도 참전했고, 북부의 카를루크족을 추격하여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들을 복속시켰다.

3. 여담

《원사》에서는 원 세조 쿠빌라이 칸과 동명이인이기 때문에 중국식 발음인 홀필내(忽必來)로 차용하거나 아예 호필내(虎必來)라고 적는 경우도 있으며, 몽골 제5대 대칸이자 원나라 제국의 시조는 쿠빌라이 칸 항목을 참조하면 된다.

그의 동생인 카라차르 노얀(Qarachar Noyan)의 현손자가 바로 티무르였다.

칭기즈 칸의 고조부(툼비나이 세첸 - 장남 카불 칸 - 차남 바르탄 바아투르 - 3남 예수게이 - 적장남 테무진)인 툼비나이 세첸의 장남 카불 칸의 증손이 바로 칭기즈 칸이었고, 툼비나이 세첸의 3남 카출리(Qachuli)의 증손(툼비나이 세첸 - 3남 카출리 - 에르뎀추 바를라스 - 소쿠 세첸 - 쿠빌라이, 카라차르 노얀 형제)이 티무르의 고조부인 카라차르(Qarachar)로, 칭기즈 칸의  사준사구 중의 한 명이었던 바를라스 쿠빌라이의 동생이었다고 전해진다. 카라차르가 속한 보르지긴 오복 바를라스(Barlas) 씨족은 칭기즈 칸과 혈통이 꽤나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칭기즈 칸의 보르지긴(Borjigin) 오복 키야트 씨족과 떨어져 살다가 칭기즈 칸이 세력을 키우자 쿠빌라이와 카라차르의 아버지이자 바를라스 씨족의 수장인 소쿠 세첸이 부족을 이끌고 칭기즈 칸에게 귀순했다.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이 세워지자 카라차르는 영토를 받고 '노얀'(Noyan)의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카라차르 노얀은 칭기즈 칸의 차남 차가타이의 신임을 받고, 그의 영지(領地)인 차가타이 칸국(汗國)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로 카라차르 노얀의 후손들은 대대로 차가타이 칸국에서 살았으며, 카라차르가 아들 이린기르를 낳고, 이린기르는 부르기르를 낳았으며, 부르기르는 티무르의 아버지인 타라가이를 낳았다. 타라가이 또한 조상의 작위를 이었기 때문에 차가타이 칸국의 노얀이었으나 그의 대에 들어서는 바를라스 가문의 세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군사적으로 재능을 발휘하여 중앙아시아에 대제국을 세운 티무르가 등장했다.

4. 대중매체에서

파일:attachment/쿠빌라이/쿠빌라이.png
징기스칸 4 일러스트

징기스칸3 에서는 정치C 전투A 지도D 매력B의 능력치로 나온다.
전투는 무시무시하나 지도력이 딸린 게 흠이다. 몽고기병을 이끌어도 지도력이 D급부터는 이동력이 심히 낮아서 잔병들 막타용으로 자주 쓰인다.

징기스칸 4에서는 역시 사준사구답게 전투력이 83이다. 정치 22, 지모 54.

우주형사 샤이다에서는 후마의 지배자 대제왕 쿠빌라이가 이 인물의 이름을 따온 걸로 추정된다.
[1] 칭기즈칸과 매우 가까운 혈통이다. 정확히는 고조부가 동일한 8촌 형제였다. [2] 토그릴 옹 칸의 동생중 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