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5 11:50:33

카타오카 텟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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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도 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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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43A69> 신(新) 1학년 오쿠무라 코우슈, 세토 타쿠마, 유우키 마사시, 유이 카오루, 아사다 히로후미, 모가미 타케시, 쿠키 요헤이, 이토 타이가, 카가미 코타, 아사히 히카루
1학년 → 2학년 사와무라 에이준, 후루야 사토루, 코미나토 하루이치, 카네마루 신지, 토죠 히데아키, 카리바 와타루, 카네다 타다히로, 타카츠 히로오미, 오카 켄이치
2학년 → 3학년 미유키 카즈야, 쿠라모치 요이치, 카와카미 노리후미, 시라스 켄지로, 마에조노 켄타, 히가사 쇼지, 오노 히로시, 와타나베 히사시, 아소 타케루, 세키 나오미치, 야마구치 켄, 키지마 레이, 쿠도 야스시, 히가시오 슈지, 카와시마 켄고, 이시카와 마코토, 미무라 료타, 코우다 하키히로, 나카타 아타루
3학년 → 졸업 유우키 테츠야,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이사시키 준, 코미나토 료스케, 탄바 코이치로, 마스코 토오루, 미야우치 케이스케, 쿠스노키 후미야, 사카이 이치로, 카도타 마사아키, 타나카 신, 엔도 나오키, 야마자키 쿠니오
코칭 스태프 및 매니저 카타오카 텟신, 오치아이 히로미츠, 타카시마 레이, 오오타 카즈요시, 요시카와 하루노, 후지와라 타카코, 우메모토 사치코, 나츠카와 유이
기타 졸업생 아즈마 키요쿠니 }}}}}}}}}
<colbgcolor=#343a69><colcolor=#e6bd25> 카타오카 텟신
片岡鉄心 | Kataoka Tesshin
파일:다이아몬드 에이스 actⅡ 한국어판 16권.jpg
이름 카타오카 텟신[1] ([ruby(片, ruby=かた)][ruby(岡, ruby=おか)] [ruby(鉄, ruby=てっ)][ruby(心, ruby=しん)])
생일 12월 25일
소속 세이도 고교
신체 184cm / 77kg / O형
성우 토치 히로키

1. 개요2. 작중 행적
2.1. 과거
3. 감독으로서의 지도 실력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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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www.animeranking.net/item_8490.jpg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등장인물. 빅 보스, 보스, 두목님, 선글라스, 쇼군(장군)[2]

세이도 야구부의 감독. 본인도 세이도 야구부의 에이스 출신 OB이다. 현역 시절 별명은 '영혼의 에이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이도 고교 교사이기도 하며 교과 담당은 현대국어. 2학년부터 수업에 들어간다.[3]

항상 엄격한 호랑이 감독이지만 선수들을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심지어 후보 선수들마저도 팀의 일원으로서 이끌고 '팀'이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중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엄격한 한편 인간미 또한 잘 보인다. 예를 들어, 건방지고 나대는 에이준을 엄하게 제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에이준의 솔직한 모습에 재평가하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만큼 야구부원들의 신뢰도 전폭적이라 에이준이나 사토루도 이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며 열의를 불태우고 상급생들도 졸업한 후 찾아왔을 때 감독님이 없으면 싫다고 했다.

작화상 상당한 노안 같지만 다른 등장인물로부터는 늘 젊다고 묘사되는 젊은 감독.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로 와서 코치로 8년간 있다가 전대 감독이 은퇴하면서 감독으로 부임한 후 6년(1부 기준)이 지났으니 1부 기준 35~36세.

2. 작중 행적

야구부 첫날에 첫등장. 에이준이 지각하고 몰래 숨어서 대열에 합류하려는 모습을 보고 연습이 끝날 때까지 뛰라고 지시한다. 이후 신입 1학년의 희망 포지션 능력 테스트에도 에이준을 끼워주지 않으며 지각을 하고서도 사죄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 팀의 일원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언급. 늦잠 잔 것에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에이스가 되려고 여기에 왔으며 그 마음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에이준의 말을 듣고 원투로 100m 거리의 펜스를 맞춘다면 연습에 참가시켜 준다고 말하며 시범을 보인다.[4]

이후 우연히 목욕탕에서 마주친 에이준에게 왜 춘계 도쿄 대회 시합 응원을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가 '자신 아닌 사람이 마운드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며, 자신은 고향 친구들까지 배신하며 세이도에 들어왔는데 다른 사람이 활약하는 것을 응원할 수 있을 리가 없고 진심으로 응원하지 못한다면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는 대답을 듣고는 '마음만은 훌륭한 에이스'라고 감명을 받았다. 아울러 '바보같이 솔직한 대답을 봐서 용서해 주겠다'며 1학년 VS 2, 3학년 경기에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5] 이후 경기 중 에이준이 실제로 실력은 둘째치고 경기를 이끄는 투수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이자 2군으로 승격시켜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와 배터리를 짜도록 지시했다.

탄바가 다쳤을 때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나가기도 하고, 여름대회 엔트리를 발표하면서 탈락한 3학년들에게 "앞으로도 나의 자랑이 되어다오." 라고 고개를 숙이는 등 선수들을 아끼는 면이 종종 눈에 띈다. 특히 후자의 장면은 다이아몬드 에이스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 이는 2부에서도 반복된다.

여름대회 결승전 패배 후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사퇴하려고 한다.[6] 후임 감독이 되기 위해 우선 코치로 들어온 오치아이 히로미츠와는 방침도 생각도 너무도 다른 모습이 종종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는 오치아이 코치는 인코스를 못 던지는 입스를 겪는 에이준이 쓸모없다고 판단해 사이드스로로 전환시켜 배팅볼 투수로나 써먹으려 했으나, 카타오카 감독은 사이드스로로 던지려는 에이준에게 지금까지의 노력을 포기하지 말라는 요지의 따끔한 말을 하며 동시에 팀의 중요전력이라고 인정해 준 에피소드를 들 수 있다.

도중에 카타오카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 교장→ 유우키 테츠야→은퇴한 3학년들→ 쿠라모치의 경로를 통해 다른 현역 선수들에게도 알려졌는데, 당시 새 팀에서 이래저래 삐걱거리던 부원들은 "가을대회 우승하고 센바츠(봄 고시엔)에 진출해서 감독님이 떠나지 못하게 하자!"고 일치단결했으며 이것이 팀이 되살아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와무라 역시 텟신 감독과의 면담에서 '떠나게 두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다만 본인은 한번 낸 사퇴서는 철회할 수 없다고 했고, 그나마 감독직 외에 학교 교원도 맡고 있기에 학교는 떠나지 않고 뒷면에서 서포트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마침내 세이도 야구부의 가을대회 우승으로 봄 고시엔(센바츠) 진출이 확정되자 오치아이 코치가 교장과 교감에게 카타오카 감독의 사직을 막아야 한다고 하기도 했고 타카시마 레이가 꾸준히 마음을 돌리려고 했던 덕도 있는지 사임은 철회해서 2부에서도 건재하게 감독직을 맡는다.

2.1. 과거

1부 후반에 은퇴한 3학년과 현역 간의 경기 중 세이도의 전 감독인 사카키 감독이 등장하며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본래는 존댓말도 안 쓰고 기타 눈빛도 나쁜 꼴통이었다고 한다. 사카키 감독에게도 현 시대라면 문제가 될 만큼 꿀밤을 얻어먹고 그때마다 사카키 감독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으며[7], 선배들에게도 찍혀 말썽만 일으켰다는 모양.

그러나 승부욕만은 누구보다 강했기에 자진해서 트럭용 타이어까지 끌고 달리며[8] 투지를 보여주었고, 사카키 감독은 이에 홀딱 반하여 1학년 가을대회부터 에이스 넘버를 달아주었다.

위 내용과 같이 문제가 있는 데다 실력도 부족했기에 주변의 반발이 심했으나 이를 모두 받아들이며 심기일전, 태도와 말투도 고치고 실력도 쌓은 결과 해당 연도 가을대회에서는 4강까지 올라갔고, 2학년 여름에는 코시엔 결승까지 진출했다. 다만 우승하지는 못하고 준우승으로 그쳤다. 이듬해 선발에서는 8강, 3학년 여름에는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는 서술되지 않으나 코시엔 출전에는 실패했지만 끝까지 에이스로서 팀을 견인했다고 한다.[9]

코시엔 준우승 투수라는 이력도 있고 졸업 후 프로 제안도 받았으나 '구제불능이었던 자신을 바꿔준 고교 야구에 보은하고 싶다'고 거절하며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세이도 고교 교사 겸 야구부 코치로 돌아왔다. 그만큼 세이도 야구부에 쏟는 애정은 상상 이상.[10]

3. 감독으로서의 지도 실력

오치아이 코치는 사와무라에게 체인지업을, 후루야에게 종슬라이더를 가르쳐 주거나 선수들에게 괜찮은 웨이트 메뉴를 짜주는 등 기술적 성장 면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데 비해 카타오카 감독은 연재 초기의 포스는 사라지고 말 없이 장승처럼(…) 서서 야구경기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 일부 독자들에게서는 무능하다고 까이기도 했다. 사실 초기에 사와무라의 투구폼을 교정한 것 빼면[11] 기술적으로 뭘 가르치는 게 별로 나오지 않고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는 모습이 주로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덕장에 가까운 감독.

세이도 고교의 중심투수인 탄바 카와카미 모두 멘탈이 아주 강하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기 때문에 카타오카 감독이 정신적 멘탈 성장을 이끄는 면에서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작중 묘사를 보면 탄바는 1학년때 극심한 유리멘탈에 소심해서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고 조금이라도 실투하면 죄송하다고 굽신대는 성격이었던 터라, 3학년인 현재 시점에서는 에이스라는 것을 자각하고 노력하는 등 카타오카 감독의 지도 아래 크게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카와카미도 과거 중요한 시합에서 데드볼을 무려 세 번이나 던져서 시합에 졌던 터라 멘탈이 약할 수밖에 없었고[12], 그래서 당시에 이미 은퇴했었던 아즈마도 와서 카와카미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작중 중반에서 카와카미 또한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인지하고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여러차례 나오는지라 이 또한 카타오카 감독의 지도 덕분이라 봄이 옳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다 잘 했다고 볼 수는 없으며 또한 절대적인 에이스에 대한 갈망에 너무 굶주린 나머지 상태가 이상해진 후루야에게 신경을 쓰느라 구원투수인 사와무라에게는 패배한 시합의 호투수라는 악수[13][14]를 두기도 하는 등의 실수는 범하기는 하지만 이건 카타오카가 무능하다기보다는 단순히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다른 강호교의 감독들보다도 압도적으로 부족한 탓이라고 보면 된다. 애초에 작중에 나오는 다른 전국구급 강호교의 거의 대부분의 감독들은 (추정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40대 중반 이상으로 보여지는 반면 카타오카의 경우 나이가 35~36세로 프로에서도 아직 현역 수준으로 뛸 수 있는 수준이다.[15] 이정도면 아무리 카타오카가 감독의 재능이 어마무시하다고는 해도 전국 대회인 고시엔에 자주 등장하는 강호교의 감독들과 비교하면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 밖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경험을 계속 쌓을 수 밖에는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타격 부문에서는 흉년이라는 혹평까지 받던 선수진[16]을 전국에서도 통할 만한[17] 최강급 타선으로 만들어 내었기에 독자들 사이에서는 투수 출신이면서도 투수보다는 오히려 타자 키우는 데 재능이 있는 거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만화 1부 시점에서 세이도 고교는 '타격의 세이도'라 불리는 반면 오히려 투수진이 약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다만 카타오카가 오히려 투수출신이기 때문에 투수들에게 크게 터치를 안 하는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카타오카의 교육 스타일을 생각해봤을 때 스스로 답을 찾길 바라고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밸런스가 무너지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도 유망주였으나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하며 잘못된 가르침으로 오히려 폼이 무너지는 선수들도 많다.[18] 실제로 오치아이의 조언대로 사와무라가 사이드 스로로 전향했다간 이도저도 아닌 선수가 돼서 그대로 야구생활이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세이도 前 2, 3학년 멤버들을 보면 타격 능력뿐만 아니라 작전 수행과 수비면에서도 작중 최상급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수비에서 크게 발전했는데, 흉작 소리 듣던 돌글러브들이 심심찮게 호수비를 연출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수비 지도능력은 확실히 뛰어나다고 볼 수 있을 듯.[19] 작중에서는 감독의 지도능력보다 선수들의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가르치는 사람이 모자라다면 그만큼 성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정작 투수들에게는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장면보다 멘탈 케어, 마음가짐 등을 강조하는 장면이 더 많은 편이다. 작중에서 투수들이 조금이라도 부족한 피칭을 보이거나 하면 바로 강판시켜버리고 현재의 마음가짐에 대해 엄하게 질책한다. 그리고 1부 중반부터 오치아이 코치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멘탈 코칭은 카타오카 감독, 기술적 어드바이스는 오치아이 코치로 역할이 정립된 듯 하다.

여하튼 작중에서 꾸준히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강한 팀을 만들어낸다"는 평이 나오는걸 보면 절대 실력적으로 무능한 감독은 아니다. 시합에서 만나는 상대 감독들이 모두 카타오카 감독을 잘 알고 평가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미 전국구 레벨의 명성을 쌓은 듯. 사실 30살에 고시엔도 자주 출전했던 명문인 세이도 고교에 이렇게 젊은 나이에 감독이 된 것부터 대단하다 볼 수 있다.

작중 30대 중반의 나이라 아직도 선수시절 실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펑고훈련을 직접 진행하는 것은 물론 타자들을 상대로 피칭까지 하고 있다.[20] 연습배팅을 진행하면서 직접 공을 던져주는 경우도 있는데, 유우키 테츠야가 "쳐도 됩니까?"라고 물어보자 피식 웃으면서 "칠 수 있다면"이라고 대꾸하는 장면은 간지 폭풍.

4. 기타

작중 묘사를 보면 이 사람이 처리하는 업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세이도 고교의 정식 교원으로서 야구부 감독으로서의 활동 외에 국어 교과도 정식으로 맡고 있고 2학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야구부에서도 그냥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일기 형식의 야구노트를 작성하게 하고 늦은 저녁까지 정성스럽게 의견과 격려의 말을 써서 선수들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특성이나 훈련상황에 맞춰 세심하게 하나하나 의견을 쓰는 것을 보면 이 사람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는것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오치아이 코치가 "이 사람 잠은 언제자지?" 라고 놀라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족이지만 목욕탕에서 그것을 정면으로 목격한 에이준의 반응을 볼 때 상당한 대물인 듯.
[1] 정발 번역 초기에는 카타오카 테츠신, 카타오카 신 등으로 오역되기도 했다. [2] 전부 사와무라가 부른 적이 있는 호칭인데, 이 중에서 결국 보스로 안착한 듯. 다만 이건 본인이 그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기 보다는 처음에는 호칭들을 들었을 때 잠깐이지만 발끈하거나 부정했지만 에이준이 장소나 상황에 상관없이 하도 그렇게 불러대다 보니 텟신 스스로 그냥 포기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3] 이 때문에 2부의 에이준 사토루는 아무리 피곤해도 국어 시간만큼은 졸지 못한다. 여담으로 이 양반 수업 때도 선글라스는 벗지 않는다! [4] 이를 보고 야구부원들이 지금도 기운 넘치는 현역 선수라고 말한다. [5] 대답만 듣고 마음을 돌린 것은 아니며 에이준이 펜스 맞추기를 실패한 이후 마음을 다잡아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러닝을 시작하고 3주간 타이어를 끌고 뛴 것도 알았기에 이 노력도 인정한 것이다. [6] 사실 세이도가 여름대회 결승 때 이나시로를 상대로 4인 계투 작전을 했던 것처럼, 여름 고시엔 결승 때 코마다이 후지마키도 이나시로를 상대로 4인 계투 작전을 써서 우승했기 때문에 안 잘린 거지, 코마다이가 평상시대로(에이스가 끝까지 완투) 투수 운용을 했었으면 잘렸을 가능성이 높다. [7] 선수가 감독을 대놓고 노려본다는 것 자체가 체육계에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이다... [8] 이는 1부 초반에 에이준이 타이어도 끌고 달린다고 자랑하자 카타오카 본인이 현역 시절 트럭 타이어를 끌고 다녔었다고 말하며 버로우시킬 때 언급되었던 부분이다. 물론 처음에는 에이준도 카타오카처럼 트럭 타이어를 끌려고 투지를 불태운 것 같지만 여전히 일반 타이어를 끌고 있는데 이건 카타오카 본인이 자신과 에이준의 체격 등의 차이가 있으니 엄하게 금지시킨 것 같다. 과거 회상을 보면 카타오카 본인이 에이준과 같은 고등학교 1학년때와 현재 에이준과의 체격 차이가 상당히 심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카타오카가 트럭 타이어 끌기를 금지 시켰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9] 사카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사와무라가 에이스 번호를 달고 뛴 첫 시합에서 우왕좌왕하던 모습이 카타오카 감독과 닮았다고 하는 걸로 봐선 이 사람도 처음부터 코시엔 준우승 투수다웠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10] 당시에는 규정이 빡세서 프로 생활을 하면 고교 야구 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11] 교정 내용은 디셉션을 가르쳐준 것. [12] 이 때문에 주력 구종이었던 싱커를 한동안 봉인했었다. [13] 당연하지만 야구 명문으로 불리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까지 야구를 하면서 구원투수라는 자리에 있는 선수들도 거의 대부분은 중학교 때까지 각 팀에서 에이스를 도맡아 온 경력과 자존심이 있다. 그렇기에 다른 건 몰라도 에이스가 망쳐 놓은 시합에 구원투수라는 이름에 가려진 패전처리 투수로 등판하는 것에는 설사 개인으로서는 화가 나도 넘어갈 수 있겠으나, 에이스에게만 신경이 가 있다가 등판하는 타이밍을 완전히 놓친 다음에 등판하는 것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더욱이 그 시합이 승리한 시합도 아니고 패배한 시합인데다가 특히나 그 패배도 상대방과의 압도적인 실력과 강함에 의한 패배가 아닌 종이 한 장 차이의 패배라면 더더욱 화가 나는 상황으로서 이 경우는 악수 중에 최악수라고 봐야하는 상황이다. [14] 그나마 에이준의 경우는 강호교의 에이스가 아닌 것이 다행인 일이다. 만약 명문팀 에이스 출신이면 감독과의 마찰 등이 더욱 커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5] 하물며 프로 감독도 이 정도 나이의 감독이 거의 없는데, 한정된 선수층으로 결과를 내야 하는 고교야구라면 저 나이대 감독은 더 없다고 보는게 맞다. 사카키 감독 시절 밑에서 코치로 8년 간 재직했고 감독 생활도 적어도 5년 이상 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타팀의 베테랑 감독들에 비하면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 [16] 작중 1부 시점에서 유우키 테츠야 등 3학년 선수진. [17] 타선만 보자면 전국 레벨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실제로 코시엔 준우승까지 한 이나시로 실업에게서, 그 나루미야에게서 그만큼 점수를 뽑아낸 팀은 세이도 고교뿐이었다. [18] 한국 선수 중 대표적인 예로 심수창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90마일을 넘나드는 좋은 구위의 패스트볼을 앞세워 보스턴 레드삭스 입단 제의를 받을 정도였으나 스리쿼터에서 오버핸드로 무리하게 교정받다가 캐치볼도 못할 정도로 일시적으로 심각하게 폼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후에도 아시아 선수권대회, 전국대회 우승 등 실적이 좋았으나 또다시 폼 변화, 변화구 주입때문에 정통파로서도 기교파로서도 실력이 많이 오락가락했다. 프로에서도 풀타임 선발 10승을 거둔게 한 시즌밖에 없었을 정도로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19] 후술하겠지만 선수들에게 펑고를 직접 쳐주는 데다가 투수 출신이라 여차하면 타격 훈련 상대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야수들의 공격력과 수비력이 강해지는 게 딱히 이상하진 않다. [20] 감독의 투구를 받아본 선수들이 "140km는 나오는것 같다"고 감탄하는 장면이 있다. 이정도 구속이면 일본 사회인야구나 프로에서도 통할 수준이다. 더 미친건 그런볼을 200개 가까이 던졌다. 아무리 연습투구라지만 텟신 감독 성격상 단 한구라도 대충 던졌을리는 없고, 그 나이에 140을 웃도는 공을 200개 가까이 거의 쉬지 않고 던졌다면 프로에서 통할 수준이 아니라 당장 현역 복귀가 시급하다. 이를 보면 프로 입단 제의도 받았다던 현역 시절이라면 150km 정도까지는 무리없이 던졌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