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가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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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구 | }}}}}}}}} |
이름 | 춘심[1] |
출생 | 1930년 4월 27일 (작중 39세) |
직업 | 주부 |
가족 |
배우자
이말룡, 슬하 3남[2] 1녀[3] 며느리 박경주, 손자 이민기, 손녀 이지현 |
좋아하는 것 | 가족, 재산 |
싫어하는 것 | 기영이와 기철이가 사고치고 속 썩이는 것, 똥퍼 아저씨와 그의 자식들이 자신의 집에서 민폐를 끼치는 것 |
성우 | 유명숙[4] (1~3기) |
오수경 (4기) |
1. 개요
검정 고무신의 등장인물.2. 상세
이기영, 이기철, 이오덕 3남매의 어머니. 이름은 춘심.[5][6] 원작 45권에서는 박경자라고 나오며, 형제로 언니 둘이 있는 막내이다. 나이는 만 39세. 키는 165cm정도.[7] 그 시대 여성들 기준으로 상당한 장신이며, 아이들을 엄하게 가르치지만,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이 자식 사랑에도 매사 지극하며 엄청나게 헌신적이다.전형적인 어머니 타입이지만 사실 작중 최고 보살. 일례로 보릿고개 시련기 에피소드에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여러모로 고생하며 생활비를 아끼다가 기영이 할머니가 이를 오해하여 구박을 받지만 오히려 말대답 한번 않고 연신 죄송하다며 예의 깍듯한 태도를 보인다.[8]
아빠의 행복 편에서는 굉장히 순수한 면이 강조되는데, 국산품 장수로 위장한 사기꾼 때문에 남편에게 줄 선물을 기다리다 밖에서 하루종일 떨기도 하였다.[9] 기영이네 방에 세들어 사는 근석의 아버지가 자신네 집 연탄을 몰래 훔쳐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도 남편과 의논하여 근석의 아버지가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흰 천을 뒤집어쓰고 유령으로 변장하여 연탄 뒤에 숨어 있다가 놀래켜 더 이상 연탄을 훔쳐쓰지 못하게 하는 선으로 해결했으며, 근석과 삼례가 고무신을 훔쳐 엿 바꿔 먹는 일에 화가 무척 나있었으나 나중에 고무신 값을 물어주느라 밥도 못 먹는 처지에 이른 그들에게 정성스레 밥까지 따로 차려 준다.
기영이의 실수로 한복치마를 태워먹었을 때도 "애미야, 네 심정 안다. 저 녀석 혼내 줘라, 그냥."이라는 시모에게 오히려 혼낸다고 치마가 돌아오진 않는다며 오래된 다른 치마를 꺼낸다.
다만 이런 춘심에게도 문제가 있는데, 3기 땡구땡구 에피소드에선 오덕이를 집에 방치한 채 장을 보러가 오덕이가 나가버린 원인을 제공했고, 도둑의 아들 편에선 공팔이가 기영이에게 선물한 장난감을 돌려주라 하고, 공팔이가 집에 돌아갈때 뒤에서 기영이에게 도둑질한 물건을 좋다고 받냐며 혼을 내서 이 말을 들은 공팔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4기에선 3기까지 유지되었던 '과묵하고 대인적이면서도 엄할 때는 엄한 참된 어머니' 설정이 붕괴되면서 극심한 피해를 봤으며 기철이 다음으로 최악의 피해자가 되었다.[10] 아빠의 돼지꿈 편에서 이말룡이 복권 10개 전부 꽝이 나올때 "아니, 빈 월급 봉투잖아요. 이제 우리 어떻게 살라구~. 어이구, 어쩌면 그렇게 기철이랑 똑같아요!"라며 은근슬쩍 기철이를 디스했고 견물생심 편에서는 이 분의 얼굴 모습이 동일인물 맞냐 할 정도로 작화가 너무 안 좋았던 데다가 기철이는 못말려 편에서는 혼낼 때 눈이 뒤집어지는 연출을 냄으로써 정점을 달렸다. 위험한 여행(1) 편에서는 매달리는 땡구에게 귀찮아킥(뒷발차기)을 날렸다. 4기 최종화에서는 기영의 딸인 이지현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할머니로 나온다[11].
2.1. 과거
위는 국민학교(초등학교) 학생 시절[12][13] |
결혼 전 기영이 아버지와 찍은 모습 |
기철이가 10살이 되고 기영이가 6살 되던 때[14] |
젊었을 때의 모습들. 주변인들의 언급으로 보아 상당한 미인에 몸매까지 좋은 설정. 애니에서도 기철이가 친구삼촌에게 레코드판을 빌리기위해 누나사진인척 엄마의 학생사진을 보여주자 삼촌이 보고 반해서 레코드판을 빌려주는 편이 나온다.[15]
성씨인 춘씨는 인구가 77명밖에 안 되는 희귀 성씨이다. 하지만 이름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성을 제외한 이름이 춘심이라면 춘씨가 아니게 된다.[16][17]
다만 춘심은 춘씨 가문의 심일 수도 있지만 성이 생략된 것일 수도 있다. 3자매 중 셋째인데 바로 위 언니인 '또남'의 존재 때문이다. 또남은 원작에만 나오는 인물로, 4살 때 사망했기 때문에 검정고무신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살아있었으면 기철,기영,오덕의 이모 중 1명이었다. #
1950년에 실종된 기만의 존재를 보면 초기 설정을 보면 결혼을 상당히 이른 나이에 했던가[18], 아니면 나이 설정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던 모양이었는데, 위의 설정상 24살때인 1953년 사진을 보면 기만의 존재 자체가 날라간 모양.
3. 어록
잉크에 독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기철이는 못말려' 편에서 기영이에 의해 잉크 마셨다는 걸 알게 되자 소리쳤던 말. 덤으로 소리치기 전에 눈이 이상하게 변했다(...).
'기철이는 못말려' 편에서 기영이에 의해 잉크 마셨다는 걸 알게 되자 소리쳤던 말. 덤으로 소리치기 전에 눈이 이상하게 변했다(...).
[1]
후기에서는 박경자라고 나온다.
[2]
장남 이기철, 차남 이기영. 다만, 원작에서는
이기만이라는 진짜 장남이 한명 더 있는데
6.25 전쟁 때 초콜릿을 얻으러 미군들의 차를 따라가다가 실종되었다고 한다. 다만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어두운 분위기가 주 위주인 원작에 비해 밝은 분위기로 나가는 편이기에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등장 자체가 아예 증발되어 원작을 안 본 팬들은 이기만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3]
딸 이오덕
[4]
1~2기 엔딩에서는 유명진이라고 나오는데 다행히 3기 엔딩에서는 수정되었다. 그 유명한 희선이의 성우이기도 하다. 캐스팅뱅크에서는 초반에
김정신이 맡았다고 되어있으나 잘못된 정보다. 현재는 수정되었다.
[5]
검정고무신 코믹스 9권 기준.
[6]
애니메이션에선 이름 관련 언급이 없고, 사실 원작에선 나올 때마다 이름이 경자를 비롯해 바뀐다. 아예 개명하는 에피소드까지 있을 정도.
[7]
작중 웬만한 남자들과 키가 비슷하다.
[8]
아내가 계속 구박받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했었는지 이후 아버지가 모든 사정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전하고, 다시 할머니와 화해한다. 사실 평소에도 사이가 좋은 편이다. 보릿고개 에피소드에선 할머니가 춘심을 오해해서 나쁜 말을 하자 할아버지가 "아,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착한데 모함이야 모함은!" 라고 호통치며 춘심을 쉴드쳐줬다. 에피소드 상중하 통틀어서도 언짢아하는 기색을 내긴 했지만, 그래도 며느리에 대한 믿음은 있었는지 끝까지 할머니처럼 구박하거나 화를 내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래서 기영이 할머니 언년이 기영이 아빠한테 다 고백하고 기영이 엄마한테 가서 마음을 위로해준다.
[10]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거진 준
막장 부모 급으로 묘사해놨다. 3기까지만 해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하는 헌신적인 마인드에서 기영이와 기철이를 성적 가지고 무시하는 건 기본이고, 견물생심 에피소드에선 돈을 몰래 가져간 걸 서로 자기라며 감싸는 형제들 앞에서 우리 집안이 도둑놈들을 키웠구나라고 눈물흘리며 울화통 정도로 말할 정도인데다 땡구가 옆에서 계속 붙자
귀찮다며 발로 차버린다. 기영이나 기철이가 빙의했나 보다.
[11]
이 에피소드는 원작에도 나오는데 제사 준비 때문에 가족들이 모인 것으로 마지막에 늙은 모습의 기영이 아버지 영정 사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황상 기영이 아버지의 제사로 보인다.
[12]
이 사진으로는 감이 잘 안 오겠지만, 저 당시 춘심의 나이는 11~12세, 6학년으로 추정된다. 왜냐면 국민학교라는 말이 한반도에서 처음 쓰인 때는 일제 말기인 1941년이기 때문. 춘심이 다니던 일제 말기의 초등교육기관은 만 6세에 입학해 6년 동안 수학하고 졸업하는 구조였으며, 그녀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936년에는 초등교육기관을 보통학교로 불렀다가 1938년에 심상소학교로 바뀌었다가 1941년 4월 1일에 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즉, 춘심은 초등교육기관에 재학하던 시절에 자신이 다녔던 학교 명칭이 바뀌는 과정을 두 번이나 겪은 셈. 그리고 춘심이 학교를 다니던 당시를 생각하면 그녀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이들은 물론이고 자기보다 훨씬 넘게 더 어린 사람들보다 학력이 높은 편에 속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은 경제적 궁핍과 일제의 차별 대우 등으로 인해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무학자들이 넘쳐났던 데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시대상 때문에 여자가 학교에 가는 것은 남자보다 훨씬 어려웠다.(실제로
안녕 자두야의 작가인 이빈의 어머니이자 춘심보다 한참 뒤인 1941년에 태어난
김난향은 어린 시절에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한 아버지가 책보따리를 내다버린 일을 겪었다. 다만 이 사람은 어찌어찌 공부해서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이외에도 1946년생 여성 유튜버
박막례도 무학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국민학교 고학년까지 다녔던 춘심이 얼마나 운이 좋았나 보여주는 동시에 춘심의 친정(특히 아버지)이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 거기다 일제는 1922년부터 조선인이 다니는 초등교육기관도 일본 본토처럼 종래의 4년제에서 6년제로 똑같게 만들었으나, 실제로는 모든 초등교육기관의 학제를 6년으로 만들도록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방 시점에도 4년제밖에 안 되는 국민학교가 넘쳐났다. 즉 춘심의 출생 시점과 당시 학제를 감안한다면 6년제 국민학교를 다녔을 확률이 매우 높다. 거기에 일제 치하에서는 초등교육이 의무교육도 아니었던지라 모든 교육비는 학생과 학부모가 온전히 떠맡아야 했다는 사실을 생각했을 때 춘심의 부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춘심이 얼마나 복받은 사람인 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
[13]
다만 중등교육은 받지 못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민학교보다 비싼 학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조선인 입장에서는 매우 드물게 주어지는 입학 기회 때문. 만약 국민학교 졸업 이후 중등학교에 진학했다면
구제고등여학교에 진학했거나 학비가 아예 안 드는 데다
졸업 즉시 직업까지 주는 5년제 여자
사범학교로 진학했을 것이다.(참고로 일제 강점기 당시 중등교육기관은 지금과 달리 중고등학교를 통합한 5년제 과정이었으며, 사범학교는 일제강점기 내내 초등교육기관이었다가 1944년에 대구사범학교와 경성사범학교가 전문학교로 승격되어 중등교육기관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중등교육기관의 교사인 교유는 일본이나 조선에 설치된 대학이나 전문학교 졸업자들이 했다.) 참고로 춘심이 제 나이에 맞게 중등교욱기관에 진학했다면 총독부의 교육기간 단축으로 인해 1941년 12월에 국민학교를 졸업(원래는 1942년 3월 졸업)하여 1942년 1월에 입학해서(원래는 1942년 4월 입학)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구제고등여학교/여자사범학교 4학년이 된 1945년에 해방을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패망이 이루어진 1945년 8월 15일 이후 총독부의 명령으로 소속 학교가 휴교된 것을 보았다가 미군정 성립 이후인 1945년 10월(관공립이라면 1일부터, 사립이라면 동월 21일 이후에 당국의 허가를 받은 시점)에 재개교한 시점부터 다시 다니다가 졸업 시기인 1946년 6~8월에(원래는 1947년 3월 졸업이었으나 1943년에 일제가 발표한 제4차 조선교육령 때문에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는 모두 수업연한이 1년 단축되었다. 또한, 광복 후 미군정의 정책에 따라 1946년 9월 1일에 미국식 학제를 적용하는 것에 맞추기 위해서 당시의 학교들은 6~8월에 졸업했다.) 구제고등여학교나 여자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여기서 춘심이 구제고등여학교를 졸업했다면 해방 이후 6년제 중학교 혹은 3년제 고급중학교(미군정 당시에 중등교육은 6년제 단일 중학교 내지 혹은 3년제 초급중학교+3년제 고급중학교 과정이었다. 춘심은 이미 일제 강점기 당시 구제여고에서 3년 이상 수료했기 때문에 초급중학교가 아닌 고급중학교 편입이 맞다. 그러다 1951년에 6년제 중학교의 상위 3개 학년과 3년제 고급중학교가 고등학교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에 편입해서 학교를 다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졸업했을 것이며, 여자사범학교를 졸업했다면 미군정의 정책에 따라 미국식으로 재교육을 받은 이후 일선 학교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14]
기철이와 기영이는 4살 터울이며 위 이미지에서도 업힌 기영이의 위로 6살이라고 적혀있다. 기철이가 10살일 무렵에 기영이가 1~3살이라면 둘은 7~9살 터울인데 그러면 기영이가 국민학교 3학년에 재학할 때 기철이는 고등학생이라는 소리가 되므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아무래도 6살인데도 불구하고 포대기에 업혀있어 0살이 6살로 오타가 난것인줄 오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애니판 기준으로는 기영이가 4살이다.
[15]
실제로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소싯적엔 상당한 미모를 보여줬다.
[16]
외조카의 이름이 춘식인 걸 보면 춘씨가 맞을 수도 있지만 성씨인지에 대해서는 작중에서도 알려진 게 없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다.
[17]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그린 만화에서는 이상원이라는 외조카가 나와 춘씨가 아닌 이씨라는 걸 보여준다.(그러나 상무대에서 시신 여부 확인 당시 기영이의 외삼촌 본명이 오도석으로 나온 걸 보면 오씨일 가능성도 있다.)하지만 검정고무신의 캐릭터를 재활용한 교육만화에서의 설정을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게 배경부터가 원작과는 달리 21세기다.
[18]
원작 기준으로 기만이 태어났던 1948년 당시 춘심의 나이는 19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