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9 01:31:34

축담마라찰

1. 소개2. 관련 사료

1. 소개

竺曇摩羅刹
Dharmarakṣa
(229 ~ 306)

중국말로는 법호(法護)로 성은 봌디 지(支)씨이나 추후 축(竺)씨로 고쳤다. 기록에서는 축법호, 지법호 이외에 천축보살(天竺菩薩)로도 기록되었다.

선조는 월지국 사람으로 대대로 돈황군에 살았고 237년에 출가해 축고좌[1]를 스승으로 섬겨 성씨를 축씨로 사용했다. 식견과 도량이 넓었으며, 천성이 순박하고 아름다웠다. 계행을 잘 지키고 부지런히 정진했으며, 돈독한 마음으로 학문을 좋아해 만 리 먼 곳이라 해도 스승을 찾아갔다.

육경을 열람하고 칠적에 관심을 두었으며, 하루에 만 단어를 외우고 눈으로 한 번 보면 모두 기억했다. 세상에서 비방하거나 칭송하는 것에 힘쓰더라도 마음에 꺼린 적이 없었다.

이 때는 무제의 치세로 낙양에서 절, 불화, 불상이 존숭되면서도 심오한 대승의 경전은 파미르 고원 밖에 모여 있는 것에 한탄해 불도를 널리 펴는 일에 뜻을 두었다. 스승을 따라 서역에 가서 여러 나라를 차례 돌아다녔으며, 외국의 언어 36종을 이해했으며, 훈고학을 익히고 음과 뜻, 글자의 체까지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범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오고 돈황에서 장안으로 가서 한문으로 번역해 현겁경, 정법화경, 광찬경 등 165부를 번역했으며, 부지런히 애쓰면서 세상에 크게 유통시키는 것에 힘썼다. 평생토록 베끼고 번역하느라 힘이 들어도 싫증내지 않았으며, 경법이 중국에 퍼진 것은 이 사람의 힘이었다.

무제 말년에는 깊은 산에 숨어살았고 산에 맑은 시내가 있어서 항상 깨끗이 목욕하면서 양치를 했다. 나무꾼들이 물가를 더럽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마르자 사람이 덕이 없어서 맑은 샘이 그쳤다면서 물이 영원히 마른다면 참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당장 옮겨야 한다고 탄식했다. 그러자 샘물이 솟아났고 그의 깊은 정성에 감응하는 바가 이와 같았다고 한다.

이후 장안 청문 밖에 절을 세우고 도를 행했으며, 교화가 멀리 퍼지고 명성이 사방 멀리까지 뒤덮었고, 승려 수천 명이 모두 그를 종사로 삼겼다.

306년에 혜제가 서쪽의 장안을 방문했을 때 관중은 혼란해 사람들은 떠났는데, 그는 제자들과 함께 동쪽으로 피신했다가 78세에 민지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2. 관련 사료

  • 고승전
  • 한글대장경 목록부 개원석교록


[1] 고좌는 이름이 아니라 존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