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97년 3월 26일 |
경기도
인천군 용유면 남북리 (現 인천광역시 중구 남북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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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5년 3월 22일 (57세) |
경기도 부천군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최봉학은 1897년 3월 26일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명교(崔明敎)이다. 그는 1919년 3월 23일~24일 조명원(趙明元)·조종서(趙鍾瑞)· 문무현 등과 함께 3월 28일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관청리 광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그 준비기관으로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조선독립운동을 벌일 것이니 28일 관청리 광장에 모이라’는 취지의 선전문 80매를 만들어 용유면의 동리에 배부하였다. 거사 당일인 28일에는 관청리 광장에 모인 150여 명의 군중 및 이난의(李蘭儀)가 인솔하는 시위대와 합류하여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2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고, 동년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기각, 동년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기각 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부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3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최봉학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