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23:28:17

채영(독립운동가)

<colbgcolor=#0047a0> 성명 채영 (蔡永)
이명 채영 (蔡英)
출생 1881년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사망 1926년 (향년 45세)
소련 포그라니치나야역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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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채영은 1881년생이며 경성부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13 용정 독립만세시위 후 결성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총부(總部)에 배속되어 무관학교(武官學校) 설비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9월 만주 훈춘(琿春)에서 홍범도(洪範圖)·이용(李鏞) 등과 함께 대한국민회 산하에 결사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구입하여 국내 진공 계획을 세웠다. 또한 1920년 초 러시아 니콜리스크에서 강국모(姜國模)·한희진(韓熙鎭) 등과 함께 대한국민혈성단(大韓國民血誠團)을 조직하고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3월 연길현 하마탕에서 북간도 동부와 훈춘, 러시아의 각 독립단 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자 홍범도, 구춘선, 이범윤, 황병길 등과 함께 참석하여 각 독립단의 통일 문제를 논의했다.

1921년, 채영은 러시아의 원조하에 한인 연합 부대인 고려혁명군단(高麗革命軍團)에 참여하여 고려혁명군사관학교(高麗革命軍士官學校)의 교관으로 활동했다. 그해 6월 자유시 참변이 발생할 당시에는 혈성단을 이끌고 대한의용군(大韓義勇軍)에 참여하여 참모부원으로 러시아 군대와 전투를 벌였고, 이후 만주로 피신했다.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고 1924년 상하이에서 국민위원회(國民委員會)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러시아 우수리스크 연변의 이만으로 돌아와 활동하다가 1926년 러시아와 중국 국경인 포그라니치나야 역에서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채영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