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뉴욕 자이언츠 | |
찰리 파우스트 Charlie Faust |
본명 |
찰스 빅터 "빅토리" 파우스트 Charles Victor "Victory" Faust |
출생 | 1880년 10월 9일 |
사망 | 1915년 6월 18일 (향년 34세)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구원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11년 |
소속팀 | 뉴욕 자이언츠 (1911~1912) |
[clearfix]
1. 개요
뉴욕 시절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 구원 투수. 에디 개델, 허브 워싱턴과 같이 아마추어 및 타 리그 야구 경력이 전혀 없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뛴 3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진짜 승리 토템으로 볼 수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2. 선수 경력
평범한 미국인이었던 파우스트는 만 30세이던 1911년 7월, 뜬금없이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이던 존 맥그로를 찾아가 점쟁이가 파우스트가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고 하며 팀에 받아들여달라고 한다. 맥그로는 재미로 그를 팀과 같이 다니도록 허락해 줬으며, 우연히 자이언츠는 파우스트가 합류하자마자 연승을 달리기 시작한다. 파우스트가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자이언츠는 무려 36승 2패를 기록했다고 한다. 파우스트는 곧 야구장의 명물이 되었고, 호너스 와그너같은 대선수들도 경기 전 연습에서는 기꺼이 파우스트에게 삼진을 당해주었다.파우스트는 진짜 경기에 등판하고 싶어했지만, 운동 능력이 일반인과 다름없었던 수준이었기에 기회를 받지 못했다. 자이언츠의 페넌트 레이스 우승이 확정되고 나서, 파우스트는 두 게임에서 9회에 등판할 기회를 얻었다.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한 첫 게임에서는 1실점을 했고, 타석에 나가기 직전 경기가 끝나버렸다. 하지만 레드삭스 선수들은 수비를 계속해 파우스트가 타석에 설 수 있게 해주었고, 1루, 2루, 3루에서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되도록 공을 빙빙 돌린 끝에 홈에서 파우스트를 아웃시켰다. 브루클린 다저스를 상대한 두 번째 게임에서는 무실점으로 막고 9회말에 타석에 설 기회를 얻었으며, 그 타석에서는 의도된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고 상대팀의 묵인 아래 2루 및 3루 도루를 성공한 뒤, 스퀴즈 번트로 득점했다.
파우스트는 1912년에도 자이언츠와 함께했고 자이언츠는 다시 54승 11패로 미쳐 날뛰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여전히 경기에 등판하고 싶어했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맥그로 감독은 파우스트를 방출했다. 한편, 자이언츠는 파우스트의 방출 후 49승 37패로 비교적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또다시 페넌트 레이스를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