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8 15:19:13

찬다를르 카라 할릴 하이렛딘 파샤

파일:Seal_of_the_Ottoman_Grand_Vizier_Flag.png
오스만 제국 대재상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알라엣딘 파샤 니자뮛딘 아흐메트 파샤 하즈 파샤 시나뉫딘 파키흐 유수프 파샤 찬다를르 카라 할릴 하이렛딘 파샤
찬다를르 알리 파샤 오스만즈클르 이맘자데 할릴 파샤 바예지트 파샤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 코자 메흐메트 니자뮛딘 파샤
찬다를르 할릴 파샤 자아노스 파샤 벨리 마흐무트 파샤 룸 메흐메트 파샤 이스학 파샤
벨리 마흐무트 파샤 게디크 아흐메트 파샤 호자 시난 파샤 카나마를르 메흐메트 파샤 이스학 파샤
코자 다부트 파샤 헤르세클리 아흐메트 파샤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 메시흐 파샤 하듬 알리 파샤
헤르세클리 아흐메트 파샤 하듬 알리 파샤 헤르세클리 아흐메트 파샤 코자 무스타파 파샤 헤르세클리 아흐메트 파샤
두카키놀루 아흐메트 파샤 하듬 시난 파샤 헤르세클리 아흐메트 파샤 하듬 시난 파샤 유누스 파샤
피리 메흐메트 파샤 이브라힘 파샤 아야스 메흐메트 파샤 뤼트피 파샤 하듬 쉴레이만 파샤
다마트 뤼스템 파샤 카라 아흐메트 파샤 다마트 뤼스템 파샤 세미즈 알리 파샤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
솀시 아흐메트 파샤 랄라 무스타파 파샤 코자 시난 파샤 카니젤리 시야부쉬 파샤 외즈데미롤루 오스만 파샤
하딤 메시흐 메흐메트 파샤 카니젤리 시야부쉬 파샤 코자 시난 파샤 세르다르 페르하트 파샤 카니젤리 시야부쉬 파샤
코자 시난 파샤 세르다르 페르하트 파샤 코자 시난 파샤 테켈리 랄라 메흐메트 파샤 코자 시난 파샤
다마트 이브라힘 파샤 유수프 시난 파샤 다마트 이브라힘 파샤 하듬 하산 파샤 제라흐 메흐메트 파샤
다마트 이브라힘 파샤 예미슈치 하산 파샤 말코치 야부즈 알리 파샤 소콜루자데 랄라 메흐메트 파샤 보슈나크 데르비쉬 메흐메트 파샤
쿠유주 무라트 파샤 나수흐 파샤 외퀴즈 메흐메트 파샤 다마트 할릴 파샤 외퀴즈 메흐메트 파샤
이스탄쾨일뤼 첼레비 알리 파샤 오흐릴리 휘세인 파샤 딜라베르 파샤 오흐릴리 휘세인 파샤 카라 다부트 파샤
메레 휘세인 파샤 레프켈리 무스타파 파샤 귀르쥐 하딤 메흐메트 파샤 메레 휘세인 파샤 케만케쉬 카라 알리 파샤
체르케스 메흐메트 알리 파샤 하프즈 아흐메트 파샤 다마트 할릴 파샤 휘스레브 파샤 하프즈 아흐메트 파샤
토팔 레세프 파샤 타바느나스 메흐메트 파샤 바이람 파샤 타야르 메흐메트 파샤 케만케쉬 카라 무스타파 파샤
술탄자데 메흐메트 파샤 네베시늘리 살리흐 파샤 카라 무사 파샤 헤자르파레 아흐메트 파샤 소푸 메흐메트 파샤
카라 무라트 파샤 멜레크 아흐메트 파샤 시야부쉬 파샤 귀르쥐 메흐메트 파샤 타르훈주 아흐메트 파샤
브클르 코자 데르비쉬 메흐메트 파샤 이브쉬르 무스타파 파샤 카라 무라트 파샤 에르메니 쉴레이만 파샤 델리 휘세인 파샤
주르나젠 무스타파 파샤 시야부쉬 파샤 보이누야랄르 메흐메트 파샤 쾨르륄뤼 메흐메트 파샤 쾨르륄뤼 파즐 아흐메트 파샤
메르지폰루 카라 무스타파 파샤 바이부르틀루 카라 이브라힘 파샤 사르 쉴레이만 파샤 쾨르륄뤼 다마드 아바자 시야부쉬 파샤 니샨즈 이스말리 파샤
테키르달리 베크리 무스타파 파샤 쾨르륄뤼 파즐 무스타파 파샤 바하드르자데 아라바즈 알리 파샤 메르지폰루 찰륵 하즈 알리 파샤 보조클루 무스타파 파샤
쉬르멜리 알리 파샤 엘마스 에흐메트 파샤 쾨르륄뤼 암자자데 하즈 휘세인 파샤 달타반 무스타파 파샤 라미 메흐메트 파샤
카바노즈 아흐메트 파샤 다마트 하산 파샤 칼라일르코즈 하즈 아흐메트 파샤 발타즈 메흐메트 파샤 다마트 초를루루 알리 파샤
쾨프륄뤼자데 다마트 누만 파샤 발타즈 메흐메트 파샤 귀르쥐 아 유수프 파샤 실라흐다르 쉴레이만 파샤 호자 이브라힘 파샤
실라흐다르 다마트 알리 파샤 하즈 할릴 파샤 니샨즈 메흐메트 파샤 네브셰히를리 다마트 이브라힘 파샤 실라흐다르 다마트 메흐메트 파샤
카바쿨라크 이브라힘 파샤 토팔 오스만 파샤 헤키몰루 알리 파샤 귀르쥐 이스말리 파샤 실라흐다르 다마트 디메토칼르 메흐메트 파샤
무신자데 압둘라 파샤 옌 메흐메트 파샤 하즈 이바자데 메흐메트 파샤 니샨즈 셰흘라 하즈 아흐메트 파샤 헤키몰루 알리 파샤
세이드 하산 파샤 티르야키 하즈 메흐메트 파샤 세이드 압둘라 파샤 디비트다르 메흐메트 에민 파샤 초를루루 쾨세 바히르 무스타파 파샤
헤키몰루 알리 파샤 나일리 압둘라 파샤 실라흐다르 브클르 알리 파샤 이르미세키자데 메흐메트 사이드 파샤 초를루루 쾨세 바히르 무스타파 파샤
코자 메흐메트 라그프 파샤 테브키 함자 하미트 파샤 초를루루 쾨세 바히르 무스타파 파샤 무신자데 메흐메트 파샤 실라흐다르 마히르 함자 파샤
얄르크츠자데 메흐메트 에민 파샤 몰도반즈 알리 파샤 이바자데 할릴 파샤 실라흐다르 메흐메트 파샤 무신자데 메흐메트 파샤
이제트 메흐메트 파샤 얄르크츠자데 데르비쉬 메흐메트 파샤 다렌델리 제베지자데 메흐메트 파샤 칼라파트 메흐메트 파샤 실라흐다르 카라베지르 세이드 메흐메트 파샤
이제트 메흐메트 파샤 옌 세이드 메흐메트 파샤 할릴 하미트 파샤 하지네다르 샤신 알리 파샤 코자 유수프 파샤
케튀다 하산 파샤 제자이를리 가지 하산 파샤 루스추클루 첼레비자데 셰리프 하산 파샤 코자 유수프 파샤 다마트 멜레크 메흐메트 파샤
사프란볼루루 이제트 메흐메트 파샤 쾨르 유수프 지야위딘 파샤 보스탄즈바쉬 하프즈 이스말리 파샤 이브라힘 힐니 파샤 첼레비 무스타파 파샤
알렘다르 무스타파 파샤 차부슈바쉬 메미쉬 파샤 차르하즈 알리 파샤 쾨르 유수프 지야위딘 파샤 라즈 아지즈 아흐메트 파샤
후르쉬트 아흐메트 파샤 메흐메트 에민 라우프 파샤 부르두를루 데르비쉬 메흐메트 파샤 이스파르탈르 세이드 알리 파샤 벤데를리 알리 파샤
하즈 살리흐 파샤 델리 압둘라 파샤 실라흐다르 알리 파샤 메흐메트 사이드 갈리프 파샤 벤데를리 메흐메트 셀림 스르 파샤
토팔 이제트 메흐메트 파샤 레시트 메흐메트 파샤 메흐메트 에민 라우프 파샤 코자 휘스레브 메흐메트 파샤 메흐메트 에민 라우프 파샤
토팔 이제트 메흐메트 파샤 메흐메트 에민 라우프 파샤 코자 무스타파 레쉬드 파샤 이브라힘 사림 파샤 코자 무스타파 레쉬드 파샤
메흐메트 에민 라우프 파샤 코자 무스타파 레쉬드 파샤 메흐메트 에민 알리 파샤 다마트 메흐메트 알리 파샤 무스타파 나일리 파샤
크브르슬르 메흐메트 에민 파샤 코자 무스타파 레쉬드 파샤 메흐메트 에민 알리 파샤 코자 무스타파 레쉬드 파샤 무스타파 나일리 파샤
코자 무스타파 레쉬드 파샤 메흐메트 에민 알리 파샤 크브르슬르 메흐메트 에민 파샤 뮈테르짐 메흐메트 뤼쉬디 파샤 크브르슬르 메흐메트 에민 파샤
메흐메트 에민 알리 파샤 케체지자데 푸아트 파샤 유수프 카밀 파샤 케체지자데 푸아트 파샤 뮈테르짐 메흐메트 뤼쉬디 파샤
메흐메트 에민 알리 파샤 마흐무트 네딤 파샤 미타트 파샤 뮈테르짐 메흐메트 뤼쉬디 파샤 아흐메트 에사트 파샤
쉬르바니자데 메흐메트 뤼쉬디 파샤 휘세인 아브니 파샤 아흐메트 에사트 파샤 마흐무트 네딤 파샤 뮈테르짐 메흐메트 뤼쉬디 파샤
미타트 파샤 이브라힘 에드헴 파샤 아흐메트 함디 파샤 에흐메트 베피크 파샤 메흐메트 사드크 파샤
찬다를르 알리 파샤 오스만즈클르 이맘자데 할릴 파샤 바예지트 파샤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 코자 메흐메트 니자뮛딘 파샤
뮈테르짐 메흐메트 뤼쉬디 파샤 메흐메트 에사트 사프베트 파샤 투누슬루 하이레딘 파샤 아흐메트 아리피 파샤 메흐메트 사이트 파샤
제나니자데 메흐메트 카드리 파샤 메흐메트 사이트 파샤 압둘라흐만 누레딘 파샤 메흐메트 사이트 파샤 아흐메트 베피크 파샤
메흐메트 사이트 파샤 카밀 파샤 아흐메트 케바트 파샤 메흐메트 사이트 파샤 카밀 파샤
할릴 리파트 파샤 메흐메트 사이트 파샤 아블로냘르 메흐메트 페리트 파샤 메흐메트 사이트 파샤 카밀 파샤
휘세인 힐미 파샤 아흐미트 테브피크 파샤 휘세인 힐미 파샤 이브라힘 하크 파샤 메흐메트 사이트 파샤
아흐메트 무흐타르 파샤 카밀 파샤 마흐무트 셰브케트 파샤 사이트 할림 파샤 탈라트 파샤
아흐메트 이제트 파샤 아흐메트 테브피크 파샤 다마트 페리트 파샤 알리 르자 파샤 살리흐 훌루시 파샤
다마트 페리트 파샤 아흐메트 테브피크 파샤
오스만 재상 튀르키예 총리 튀르키예 부통령 }}}}}}}}}}}}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1330? ~ 1387.01.22.
Çandarlı Kara Halil Hayreddin Paşa. 1364년부터 1387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재상을 지낸 인물. 역대 재상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재임했다.

2. 생애

카라만 베이국 출신으로, 이즈니크에 있는 마드라사에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 동안 마드라사의 교사 가운데 한 명인 타제딘 쿠르디(Tâceddin Kurdî)의 사위가 되었으며, 그로써 셰이크 에데바리(Sheikh Edebali)의 처남이 되었다. 그리고 에데바리는 오스만 1세의 장인이기도 했으므로, 이 결혼으로 오스만 황실의 인척이 되었다.

이후 오르한 재위 기간에 이즈니크의 재판관을 거쳐 부르사의 재판관이 되었는데, 이즈니크는 몇 년 동안 잠시 오스만의 수도였던 곳이고 부르사는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기 이전까지 에디르네와 함께 오스만의 공동 수도였던 곳이니 지위는 높지 않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자리를 역임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1362년에 무라드 1세가 즉위한 이후에는 무라드가 새로 창설한 카자스케르(Kazasker) 직에 올랐는데, 이 자리는 직역하면 "군사 재판관" 이지만 실제로는 현대의 대법원장 겸 법무장관 쯤 되는 자리였다[1].

재상이 된 이후로는 동남부 유럽에서 오스만의 영토를 넓히는 정복 활동에 직접 참여하여 군을 이끌었는데, 무라드 1세는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주로 머물렀으므로[2] 사실상 총사령관 역할을 한 것이다.

1387년에 향년 56세나 57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재상직은 아들인 찬다를르 알리 파샤가 이었다.

3. 기타

지명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오스만 제국 역사상 꽤나 중요한 인물이다.

먼저, 그를 계기로 재상직의 성격 자체가 변화했다. 이전까지 재상은 군사를 직접 이끈 적이 없고 행정 업무만 담당했으며, 그 때문에 재상 자체가 최고 행정관 이상은 아니었다. 반면 찬다를르 카라 할릴 하이렛딘 파샤는 역대 재상들 가운데 처음으로 군을 지휘했으며, 이로 인해 재상은 최고 행정관인 동시에 황제 바로 다음 가는 군사령관으로도 여겨지게 되었다. 실제로 이후 재상들은 황제가 친정을 할 경우 부사령관을 맡고 황제가 황궁에 머물 때는 총사령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이는 수백 년 뒤인 19세기에 탄지마트 개혁이 이루어져 다른 유럽 국가의 수상 비슷한 것으로 변화할 때까지 유지된다.

또한 예니체리 군단을 창설하는 아이디어를 입안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예니체리 자체는 선제 오르한 때부터 있었다고도 전해지지만, 전쟁 포로가 아니라 기독교도 소년들을 징집하도록 제안함으로써 데브시르메 제도를 완성한 것이 그의 업적이라고 전해진다. 데브시르메는 이후 무라드 2세 때 예니체리 뿐 아니라 관료들도 선발하도록 하는 등 확장되면서 3백여년 이상 유지되었다가 18세기 초에 폐지된다.

세 번째로, 찬다를르 카라 할릴 하이렛딘 파샤를 시작으로 찬다를르 가문의 시대가 시작된다. 찬다를르 가문은 이 이후로도 찬다를르 알리 파샤(재임: 1387~1406), 대(大)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 (1421~1429), 찬다를르 할릴 파샤 (1439~1453), 소(小)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 (1498~1499) 등 네 명의 재상을 더 배출했으며, 특히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기 이전까지는 황제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권세를 자랑했다[3].

끝으로, 대(大)재상이라고 불린 최초의 재상이다. 오스만 제국은 한국사의 고려가 왕씨 가문 혼자서 이룩한 것이 아니라 여러 지방 세력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가문 혼자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집단과 대략 성직자들과 학자들인 일미예 집단들의 도움을 받아 발전할 수 있었던 나라였다. 이 때문에 유력한 가지들과 일미예들에게 재상직을 주어야 했고, 그로 인해 재상이 여러 명이었다. 대재상이라고 함은 여러 재상들 중에서도 우두머리라는 것. 이후 대재상 직은 1922년에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1] 1480년에는 제국의 영토가 계속 넓어짐에 따라 담당 구역을 나누어서 정원이 두 명이 되었지만, 이건 아직 백 년 뒤의 일이다. [2] 당시 오스만령 아나톨리아 반도와 오스만령 유럽 사이에 비잔틴 제국 영토가 끼어 있는 형국이어서 사실상 영토가 둘로 나뉘어 있는 격이었으며, 이래서 부르사와 함께 에디르네를 공동 수도로 삼아야 했다. 현대 대한민국의 도에 해당하는 최상위 지방행정구역인 에야레트(Eyalet)도 국토가 사실상 둘로 쪼개져 있는 상태에서 술탄이 아나톨리아를 맡고 유럽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따로 관리하려 한 데에서 출발했다. [3] 실제로 가지들과 일미예들의 대표자에서 벗어나 전제군주가 되고 싶었던 메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이후 찬다를르 할릴 파샤를 처형하여 찬다를르 가문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해야 했다. 이로써 찬다를르 할릴 파샤는 처형을 당한 최초의 재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