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차경현(車敬炫) |
이명 | 차만택(車萬澤) |
생몰 | 1882년 5월 15일 ~ 1939년 3월 18일 |
출생지 |
경기도 남양도호부 수산면 사강동 (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
사망지 | 경기도 수원군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차경현은 1882년 5월 15일 경기도 남양도호부 수산면 사강동(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6일 오후 5시경 홍면(洪冕)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송산면사무소 인근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3월 28일 오후 2시경 송산면사무소 뒷산에서 홍면 등 1,000명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으며, 면사무소로 가서 면장과 면서기 등에게 만세를 부를 것을 강요했다.이때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코오조오(野口廣三)가 홍면 등 2~3명을 체포하려 했다. 이에 홍면이 저항하자, 노구치는 권총을 꺼내 홍면을 쏴죽였다. 이에 분노한 군중이 일본 경찰을 쳐죽이자고 외치자, 노구치는 자전거를 타고 사강주재소 방면으로 달아났다. 차경현은 여러 군중과 함께 뒤쫓아가 돌을 던졌고, 노구치가 돌에 맞아 자전거에서 떨어지자 돌과 몽둥이로 쳐 죽였다.
이 일로 체포된 차경현은 경성지방법원에서 살인, 소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그는 "수비대 및 순사가 갑자기 와서 집을 불태우고 또 마을에서 죄 없는 사람을 붙잡고 수원경찰서에서 악형을 견디지 못하고 2번이나 정신을 잃어서 어떻게 답했는지 모른다."며 상고했지만, 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징역 7년을 확정지었다. 이후 출소한 그는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39년 3월 18일에 자택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차경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