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日綱
병음: Qínrìgāng, 친리강
(1821~1856)
1. 개요
태평천국의 군사 지도자로 연왕(燕王)에 봉해졌다.2. 유년기
광서성 구이핑에서 태어난 진일강은 본래 광부였으나 군사학을 배웠다. 그는 배상제회 초기부터 홍수전을 따랐으며 홍수전의 가장 믿을 만한 친구 중 하나로 꼽혔다.3. 태평천국 운동에서의 역할
진일강은 홍수전에게 군사적 권한을 받았고 태평천국의 승상이 되어 석달개 다음의 서열에 올랐다. 1854년 홍수전은 그를 연왕(燕王)에 봉했으나, 양수청에 의해 취소되었다.[1]1853년 양수청과 함께 천경을 점령했며, 1855년에는 우한을 점령했고, 1856년 청의 총독 지르한가(길이항아)를 죽였다. 이후 1856년 강남대영을 붕괴시키고 청의 흠차대신 향영을 자살하게 만든다.
4. 천경사변과 죽음
천경 내부의 권력투쟁 와중에 양수청은 다른 모두에게 그랬듯이 진일강이 그의 임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투옥하고 강제노역을 시켰다. 나중에 양수청은 진일강, 석달개, 위창휘를 각각 다른 지역으로 보내 버린다. 만세 사건으로 홍수전은 양수청에게 위협을 느끼고 떠났던 세 장군을 모두 천경으로 불러들였다. 진일강은 제일 먼저 천경에 도착했고 1856년 9월 1일 위창휘가 3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합세했다. 홍수전과의 의논 끝에 석달개의 도착은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들은 양수청의 궁을 급습해 그가 탈출하기 전에 살해한다. 그리고 진일강과 위창휘가 체포된 척 하며 양수청의 잔존 세력을 유인해 모조리 살해하고 그의 일가 친척과 지지자까지 3개월 동안 체계적으로 학살을 자행한다.10월에 석달개가 천경에 도착해 이러한 학살극에 대해 위창휘를 비판했다. 위창휘는 석달개를 배신자로 몰아 천경에 도착한 그 날로 쫓아내고 그날 밤 위창휘와 진일강은 석달개의 집을 공격해 석달개의 일가친척과 시종을 살해한다. 석달개는 10만 명을 이끌고 위창휘와 진일강의 머리를 요구한다. 진일강은 위창휘에 의해 석달개의 공격을 막으로 보내지고 위창휘는 홍수전 체포를 준비한다. 홍수전은 체포 계획을 가로채고 홍수전의 호위에 의해 위창휘는 죽는다. 그 직후 진일강 또한 천경으로 불러들여져 살해된다.
[1]
양수청이 죽고 나서 다시 연왕에 봉해지지만 얼마 못 가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