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1:00:21

지그문트 베를링

<colbgcolor=white><colcolor=#e34234> 지그문트 헨리크 베를링
Zygmunt Henryk Berling
파일:Zygmunt Berling.jpg
출생 1896년 4월 17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리마노바
사망 1980년 7월 11일 (향년 84세)
폴란드 인민공화국 바르샤바
국적
[[폴란드|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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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직업 군인, 정치인
최종 계급 중장 (소련군)
기갑대장 (폴란드 인민군)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생애 초기3. 2차 대전 초기4. 폴란드 인민군5. 바르샤바 봉기6. 2차 대전 이후7.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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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군인, 정치인이다.

2. 생애 초기

지그문트 베를링은 1896년 4월 17일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리마노바에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폴란드 군단에 입대하여 참전하였고, 전후 폴란드가 독립하자 신생 폴란드군으로 복무한다.

3. 2차 대전 초기

이후 2차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 양쪽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베를링은 모스크바로 압송당했다. 소련은 독소전 개전 이전인 40년 여름에 친소 폴란드군 창설을 위한 밑작업으로 소련에 협력적인 폴란드인 장교 13명에게 공산주의 교육을 실시했고 베를링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독소전 개전 후 폴란드 망명정부와 소련이 악감정을 누르고 군사동맹을 채결하면서 42년부터 폴란드인 포로로 구성된 폴란드군 제 5, 6사단의 창설이 시작된다. 베를링은 이 중 제 5 사단장을 맡았다. 그러나 소련군을 무장시킬 무장도 부족했던 소련의 사정으로 폴란드 사단의 재무장이 지지부진해지자 안데르스 장군은 영미의 지원을 받기 위해 부대를 이란으로 이동시킨다. 이 때 베를링을 비롯한 친소 장교진 일부는 부대에서 이탈하여 소련에 잔류하게 된다.

4. 폴란드 인민군

이렇게 되자 소련은 아예 런던 망명 정부에 대적할 폴란드 정치 조직과 그 휘하 군대의 창설을 시작한다. 1943년 7월 15일 베를링 준장은 폴란드 제1사단 '타데우시 코시치우스코'의 사단장으로 임명된다. 서방 자유폴란드군의 뒤를 이어 5, 6의 단대호를 받은 기존 사단들과 달리 이 1사단의 창설은 런던 망명 정부와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했다. 폴란드 제1사단은 43년 9월 1일 전선으로 이동 후 10월 초 노농적군 제33군 휘하에서 레니노 전투에서 첫 실전을 치르게 된다.
레니노 전투에서 25%라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은 제1사단의 재편성과 동시에 폴란드 인민군이 군단 규모로 성장하면서 베를링은 중장으로 승진하여 폴란드 군단장을 맡게 된다.

1944년 7월에는 폴란드 인민군이 정식 육군으로 출범하였고, 폴란드 제1군 창설과 동시에 베를링이 사령관직에 임명되었다.

5. 바르샤바 봉기

한편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소련군이 독일군을 연이어 몰아붙이자 1944년 8월 1일 그 유명한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공세종말점에 달해 폴란드 국내군에 협조할 능력도 의사도 없던 소련군은 바르샤바를 목전에 두고 멈추게 된다. 이 상황에서 베를링이 지휘하는 폴란드 제1군은 수도의 완전 파괴를 좌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9월 11일 바르샤바로 독자적으로 진격하게 된다. 이들은 바르샤바 동쪽 프라가 지구까지 진출함과 동시에 9월 16일 비스와 강을 건너 봉기군과 접선에 성공하는 업적을 달성하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지친 소련군을 역습할 준비를 하던 독일군은 바르샤바에 동원 가능한 기갑 전력을 집결시키는 중이었고 독일 제 19 기갑사단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격을 가해 폴란드 인민군에게 1,050여 명의 뼈아픈 사상자 및 포로 손실을 안겼다. 9월 23일까지 폴란드 인민군은 다시 강을 건너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사령관이었던 베를링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폴란드 제1군 사령관직에서 해임 되었고 모스크바의 전쟁학교에 보직 배치 되었다.

6. 2차 대전 이후

베를링은 1945년 폴란드가 해방된 이후에도 군에 복무하다 1953년 전역했다. 전역 이후에도 여러 장관직을 맡았다가 사망 이후 바르샤바의 포봉즈키 군사 묘지에 안장되었다.

7. 출처

'2차대전의 마이너리그', 한종수 저, 길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