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략적인 상황
중세 후기는 중세적 헤게모니들이 점차 사라져 가던 시기였다. 우선 서유럽 내에선 신성 로마 황제와 로마 교황의 권력이 동시에 약해져가던 시기였으며, 동로마 제국 또한 이시기에 확실하게 쇠퇴하면서 멸망을 향하고 있었다.이시기는 유럽 각지에 다양한 구조의 의결기구들이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완전히 자리잡은 시기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삼부회와 함께 폴란드의 세임등이 이때 생겨났으며, 헝가리와 보헤미아나 칼마르 동맹의 릭스로드 등이 있다. 해당 의결기구들은 참석인들의 신분에 따라 두가지로 나눠졌다. 전자는 영국의 의회와 프랑스의 삼부회, 이베리아 반도의 코르테스,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의회처럼 성직자와 귀족, 부호에서 소지주까지 망라한 평민 출신인 부르주아들로 구성된 신분제 의회와 후자는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로 구성된 귀족제 의회로 나눠졌다.
후자의 경우 대개 전자를 제외한 유럽의 국가 모두가 채택하고 있었고, 러시아 공국들 또한 공화정으로 전환한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제외하면 점차 크냐즈를 비롯한 보야르들의 권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민회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이때의 의결기구들은 대체로 왕권을 견제하는 목적이나 아니면 거수기 기구와 같은 목적을 지녔다. 전자는 신분제 의회를 채택하던 영국과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 신성 로마 제국과 귀족제 의회를 채택한 국가들이었고, 후자는 프랑스의 삼부회가 대표적이다.
외교적으로 14세기 르네상스가 꽃피우기 시작하던 이탈리아에서 대사가 등장했다. 이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정치적으로 혼란기 진입하던 시기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나 소국들은 서로를 견제할 목적으로 다양한 외교 전략을 구사했는데, 대사 제도 또한 이에 대한 일환으로서 영사와 마찬가지로 타국에 채류하면서 겉으로 친교 곤계를 유지하나 실상은 해당 국가의 내부 기밀 등을 수집하려는 목적이 강했었다. 이러한 대사 제도 또한 영사 제도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전쟁 이후 16세기 유럽 국가들 사이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