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말에서 임진왜란 이전까지 썼던 왕족 여인의 모자.2. 상세
홍무제의 정실 효자황후 마씨가 하사한것을 시작으로[1] 매번 새로운 왕과 왕비가 즉위할때 명나라에서 보내준것을 썼다.[2] 사진 밑 자료
[1]
다만 효자황후 마씨가 하사한 것은 칠휘이봉관(七翬二鳳冠)으로 주취칠적관과 달리 양쪽에 박빈(博鬢)이 달려있는게 큰 차이이다. 차이가 생긴 이유는 효자황후 마씨가 하사할 적에는 명나라도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국가였기때문에 그만큼 관복제도의 체계가 덜 잡혀있었기 때문이었고, 1403년 이후 주취칠적관이 하사될 때부터는 관복과 관제가 더 체계적으로 정비되면서 조선 또한 명나라로부터 기존과는 다른 대례복을 하사받게 된 것.
[2]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가 망하고 칠적관을 만드는 장인이 없는데다 기술을 전수해줄 사람도 없는지라
인조이후부터는 우리가 아는 대수머리를 제작해서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