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주르지 자이단 (Jurji Zaydan, جورجي زيدان) |
출생 | 1861년 12월 14일 |
오스만 제국 베이루트(現 레바논 베이루트) | |
사망 | 1914년 7월 21일 (향년 52세) |
이집트 술탄국 카이로 |
1. 개요
주르지 자이단은 레바논 출신의 저술가, 역사가이자 기자다. 나흐다를 개념화시킨 지식인으로도 유명하다.2. 생애
1861년에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중산층 정교회 가정에서 태어났다. 무학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주리지 자이단은 독학으로 영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아랍 시에 눈을 뜬다. 시리아 개신교 대학에서 의학과 약학을 전공하던 중, 미국 출신 교수인 코르넬리우스 반 딕이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이라는 글을 번역할 것을 제안한다. 자이단은 반 딕의 영향을 받아 대학 생활 내내 자기계발, 개인주의와 적자생존주의에 심취하게 된다.1882년에 대학 교수 중 하나가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다 파면당하자, 자이단을 포함한 몇몇 학생은 대학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나 그 대가로 퇴학당한다. 자이단은 당시 시리아/레바논 출신 아랍 민족주의 지식인들이 활동하던 이집트로 건너가 [1] 카이로의 카스라 알 아이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다. 알 자만이라는 신문사의 기자로 근무하다가 1884년 수단에 파견된 영국군을 위한 통역가로 일한다. 몇 달 뒤, 그는 "아랍어의 렉시카와 언어 철학"이란 첫 작품을 출판한다. 1886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중동사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공부를 심화하고, 아랍인들의 역사는 아랍인들이 스스로 서술해야 된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1890년에 "세계사"라는 책을 출판하고 1891년에는 "도망가는 맘루크"라는 역사 소설이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성공에 힘입어, 이듬해인 1892년에 알 힐랄이라는 문학잡지를 창설해서 아랍 역사를 접근성이 좋은 소설의 형태로 가르치려 한다.
1908년에는 청년 투르크당 혁명이 발발한 사이 짧은 혼란의 시기를 틈타 오스트리아와 발칸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취한다. 청년 투르크당 내각은 의원내각제를 도입하고 표현의 자유를 늘린다. 자이단은 이 사건에 큰 감명을 받고, 팔레스타인과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손실 문제와 유대인 대량 이민 (이슈브)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1910년에 신설된 이집트 대학에서 이슬람 역사 교수직을 제안받아 응한다. 기독교 출신이자 진보적인 성향의 자이단은 전통주의적인 무슬림 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1914년 7월에,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카이로에서 52세의 나이로 의문의 이유로 돌연사한다.
[1]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