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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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은 | |
동백의 모친. 동백이 엄마. 팔콘 정숙. 미스터리 마더. 돈 안 갚는 정숙이 x. 엄마의 약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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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인공 동백의 모친. 동백이 엄마. 팔콘 정숙. 미스터리 마더. 돈 안 갚는 정숙이 x. 엄마의 약속. 7년 3개월 짜리 엄마.
2. 극중 행적
방영순이 아닌 작중 시간 순서상으로 기재.
동백이 태어나기 이전의 인생사는 불분명하지만 정황상 이전부터 평탄치는 않았던 걸로 추정된다.
남편[1]이라고 있는 거는 술 마시고 꼬장 부리는 게 일상이었던 듯한데 동백이가 태어난 후에도 여전했던 듯, 심지어 소주잔을 던져 어린 동백에게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다고. 자신에게 손찌검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어린 딸이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정숙은 격분하여 소주병으로 남편의 뒤통수를 갈기고 집을 나와버린다.
남편[1]이라고 있는 거는 술 마시고 꼬장 부리는 게 일상이었던 듯한데 동백이가 태어난 후에도 여전했던 듯, 심지어 소주잔을 던져 어린 동백에게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다고. 자신에게 손찌검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어린 딸이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정숙은 격분하여 소주병으로 남편의 뒤통수를 갈기고 집을 나와버린다.
일단 집을 나오긴 했으나 현실은 집도 절도 없는데 아이는 있는
싱글맘.[2] 뭐라도 해야 먹고 살 텐데 받아주는 데도 없고... 겨우겨우 유흥주점에서 숙식을 하며 식모살이를 시작했더니 "아빠" 소리도 못해본 동백이 "
오빠"라는 말을 배워 쓰거나[3], "동백이 너 크면 내가
가게 소개해 줄테니까 돈 벌어서 너희 엄마 빚 갚아줘라" 같은 소리나 듣고, 양육환경을 신경쓰자니 다른 받아주는 데가 없는 상황. 일을 구했다가 못참고 때려쳤다가
부평초마냥 정착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데 점점 자라는 동백이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어느날 정숙은 잠 잘 곳도 구하지 못해 어린 동백이를 안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한다. 그 와중 동백이가 배고프다며 우는 것을 보고 현 상황에서 본인은 도저히 동백이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동백이를
고아원에 맡기기로 한다.
없는 돈을 털어 오랜만에 동백에게 배불리 고기를 사먹인 뒤 이런저런 당부의 말[4]을 남기고 동백을 고아원 앞에 버리고 온 정숙. 이후 자존감 까지 완전히 내려 놓고 술집 접대부[5] 일까지 하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던걸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도 이전보다 조금 낫다 뿐이지 여전히 벌이는 시원찮았던 것 같다. 얼마 뒤 동백이에 대한 그리움에 다시 아이를 찾으러 돌아가지만 동백이는 그새 어느
선교사 부부의 눈에 띄여 해외로 입양을 가고 없었다.
이후 동백이를 만나기 전까지의 행적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순서는 확실치 않다.
전처 소생의 아이가 있는 남자와 재혼했다. 새남편과 사이가 어땠는지는 불명이나 후에 등장할 의붓딸이 하는 꼴을 보면 이번에도 원만한 결혼 생활은 아니었던 듯하다. 참고로 그 집에서 가사 도우미 일을 하다가 어찌저찌 결혼에 이르게 된 듯 하고, "남편 돈이 아닌 자신이 번 돈으로 보험금을 넣었다"는 발언으로 보아 결혼 이후에도 전업 주부가 아니라 직장에 다녔던걸로 추정된다. 여튼 두번째 남편과는 사별하게 되는데 의붓 자식들의 등쌀에 장례식에 참여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숙이 신장병 진단을 받은 후 자기들이 법적 자식이라며[6] 보험금을 노렸던 모양.
어느날 (복장을 보아하니 건물 청소부) 일을 하다 동료들과 휴식을 취하던 도중 TV에서 동백을 입양했던 선교사 부인이 인터뷰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어찌저찌 선교사 부인과 안면을 트고 그이가 입양하여 지금은 국제 변호사가 되었다는 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변호사는 동백이가 아니었다. 망연한 정숙에게 변호사는 입양아로서 겪었던 고충을 토로하며 본인 이전에 입양되었던 아이가 파양당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숙은 선교사 부인에게 슬쩍 첫째 아이를 왜 파양했는지 떠보는데 멋쩍게 웃던 부인은 "아이가 그늘이 있는 것 같아서 조사해봤더니 엄마가 술집 여잔 것 같더라,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던데 찝찝하지 않느냐"고 속닥인다.[7][8] 정숙은 내 딸이 왜 내 팔자를 닮느냐며 분통을 터뜨리지만 수소문 끝에 찾은 동백은 이전의 정숙처럼
싱글맘으로 술집을 운영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백이 웃고 있는 걸 보고 저 애는 나랑 다르다며 안도한다. 선뜻 만나러 나서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던 어느날, 큰맘 먹고 동백을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동백이 들어간 에스테틱 건물 앞에서 기다리는데
까불이 사건이 터진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가게 문을 두드리거나 스프링클러를 터뜨린 덕에 동백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주변만 맴돌다 용식에게 붙잡힌 것을 계기로 치매인 척 연기하여 동백의 곁에 있게 된다. [9]
3. 기타
- 동백은 종종 엄마에게 버려진 후 혼자 남은 여자아이의 힘들었던 삶을 아냐며 톡톡 쏘아대곤 했는데, 행적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정숙의 삶도 동백과 비슷했으며 이런걸 비교하는 자체가 좀 억지스럽긴하지만 오히려 동백이의 상황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
정숙 | 동백 |
시기나 사정은 불명이지만 애 데리고 나온 시점에선 기댈 데 없는 천애고아 | 7살에 엄마가 고아원에 버리고 감 |
돈도 없고 술먹고 아이까지 폭행하는 남편 |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었지만 남들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동거남 |
밑천 없음,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는 시대 | 세들어 살긴 해도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구할 수 있었음 |
충격적이게도 당시엔 한부모가정 지원은 둘째치고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이었음[10] | 여전히 인식이 좋지 않고 지원이 미미하긴 해도 미혼모 시설이 있는 시대 |
아이를 버린건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마냥 정숙을 비난하기엔 상황이 심각하게 안좋았던것도 사실이라는게 안타까울 뿐.
[1]
일단 남편이라고 기재는 하지만 이후 딱히 이혼 같은 절차 없이 생활하다 순조롭게(?) 재혼한 것을 보면 혼인신고를 안한 사실혼 관계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재혼 이전 사별로 인해 부부관계가 해소되었을 가능성도...
[2]
점점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인 2019년도에도 편부모 가정에 대한 복지 혜택은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편견어린 인식이 있었다. 하물며 동백이 태어났을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은 그 미미한 혜택마저 없었고 사회적 인식은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이었다.
[3]
유흥주점의 여성들이 손님을 "오빠"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을 배워버린것이다. 동백에게는 아빠 뻘, 심하게는 할아버지 뻘일 손님이 먹던 음식을 두고 "이거 오빠가 먹던거야, 오빠"라고 말하는걸 보고 정숙은 억장이 무너져 "한번만 더 오빠 소리하면 엄마는 너랑 더는 같이 못산다"며 엄포를 놓았다. 여담으로 이를 신경쓰고 연출한 것인지는 불명이지만 현시점 동백은 규태가 울며불며 진상을 부려도 죽어도 오빠 소리를 해주지 않았다.
[4]
어른들이 물으면 이름은 동백이, 나이는 7살이라 내년에 학교에 가야한다고 말해야 하며 엄마의 이름을 물으면 모른다고 해달라는 내용. 그리고 꼭 데리러 올테니 기다려 달라는 말.
[5]
정확하지는 않지만 작중 나온 이미지 상
요릿집 접대부일을 했던것 같다.
[6]
애초에 보험금 수령은 수령인 지정으로 배우자 혹은 자녀가 아니라도 가능하다. 덤으로 그냥 의붓자식은 계모의 유산 상속에 대한 권한이 없으며 서로 정식 입양 절차를 밟아야 비로소 유산 상속 권한이 생긴다. '법적 자식' 운운하는 걸 보면 입양 절차를 밟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잘 모르고 그냥 우겼을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7]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정숙이 자신이 파양한 동백의 친모인 것은 모르는 듯.
[8]
이 발언과 더불어 매 순간 시험받는 기분으로 사랑받기 위해 동동거리며 살았단 입양 딸의 고백을 보면 선교사 부인이 인터뷰에서 세상 고결한 인격자인 양 굴었던건 다 가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참고로 동백이나 용식은 나중에 정숙의 의붓딸이 찾아오고나서야 정숙이 치매가 아니란걸 알게되지만 준기 엄마를 필두로한 게장골목 식구들이나 향미, 심지어 필구까지 정숙이 치매가 아니란걸 진작 눈치챈다. 준기 엄마는 "진짜 치매를 못봐서 그렇다"며 속이는 정숙이나 속는 동백이나 안타까운듯 혀를 찼다.
[10]
이혼도 아닌 사별로 남편을 잃은 덕순도 팔자가 사납다느니, 남편 잡아먹었다느니하는 뒷담을 들었을 정도로 막장이었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