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15:15:23

조 에킨스

<colbgcolor=#000038><colcolor=#fff> 조셉 윌리엄 에킨스
Joe Ekins
파일:Joe Ekins.jpg
출생 1923년 7월 15일
영국 노샘프턴셔 주 옐든
사망 2012년 12월 1일 (향년 88세)
영국 노샘프터셔 주 캐터링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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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신발 제조업자
복무 영국군 (1913~1951)
최종 계급 트루퍼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업적3.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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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 에킨스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전차병으로, 셔먼 VC에 탑승하였다.

2. 업적

파일:shermanfirefly-52.webp
조 에킨스가 탑승한 셔먼 VC
파일:tiger-tank-destroyed-by-joe-ekins-sherman-firefly-on-8th-v0-6j0ymrrd20eb1.webp
조 에킨스가 격파한 6호 전차 티거
그는 프랑스에서 4대의 전차를 하루 만에 격파한 것으로 유명해졌는데, 그 중 3대는 티거 전차였다.

총 격파대수는 12대지만 그가 유명한 것은 레들리 월터스와 함께 독일 전차 에이스인 미하일 비트만의 티거를 격파한 것으로 추정 되기 때문이다.

당시 비트만은 1944년 8월 8일 현 프랑스 158국도(캉-팔레즈 국도) 서쪽에 위치한 고메닐 마을 동쪽에서 에킨스가 속한 중대에게 기습을 당하였다. 조 애킨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의 파이어 플라이는 근방의 과수원에 건초더미로 위장해 매복하고 있었고 마침 그 파이어플라이만이 해당 중대 가운데에 비트만의 6호 전차 티거 007호차를 포함한 3대의 티거를 유효 사거리안에 두고 있었다. 당사자의 입장으로선 전무후무한 기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상대는 나치 독일의 괴물 티거인 것도 모자라 3대씩이나 합류하고 있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인 상황인데 세상 어느 셔먼 전차병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의 전차장 고든 하사가 워낙에 강심장이었던지 1200미터의 티거들을 발견하고는 중대장에게 먼저 보고를 올리고 티거들이 800미터 안으로 접근해올 때까지 기다린 후 시야확보에 지장이 있는 수풀지대인 과수원에서 남쪽 끝으로 파이어플라이를 이동시켜 사계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막연히 이동하고 있는 3대의 티거 중 세번째 티거를 첫번제 타깃으로 설정. 후미의 상황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지정한 타깃이다.

에킨스는 여전히 떨고 있었으나 스스로 "내가 저 괴물을 잡지 못한다면, 저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말테니깐"이라며 이판사판으로 마음을 다지며 발포를 해서 파이어플라이의 17파운더 단 두발만에 후방의 티거를 제압한다.

공격을 알아차린 바로 앞의 티거가 오른쪽으로 포를 돌리고 연속 3발을 발사할 때 고든 하사의 파이어플라이는 과수원 뒤쪽으로 미친듯이 풀악셀을 밟으며 후진을 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적의 포격 때문인지 몰라도 전차장 해치 뚜껑이 뜯겨져 나가서 고든 하사가 노출되어 버렸고 파편에 의한 부상으로 전투불능이 돼버리자 마침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3소대장 제임스 소위가 에킨스의 파이어플라이에 올라타며 고든하사와 맞먹는 강심장으로 자신이 전차를 지휘하겠다며 나서게 된다.

제임스 소위는 포탑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사격을 가하면서 이동중인 티거의 우측 상부 차체에 포탄을 꽂아 넣었다. 그 결과 비트만의 티거로 추정되는 티거 007호차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였고, 약 20초후 탄약 유폭으로 포탑이 사출되어 버린다. 비트만과 휘하 승무원 전원이 전사해버린 것이다. 혼자가 되어버린 선도 티거는 근처에 있던 셔먼들의 75mm에 집중포격을 받으면서도 꿋꿋히 버티며 퇴각하고 있었지만 과수원에 은폐하고 있던 제임스 소위와 에킨스의 파이어플라이가 과수원 가장자리로 나와 티거의 숨통을 끊었다고 한다.

이렇게 확연해 보이는 증언이 있지만 비트만의 티거를 누가 격파했는가에 대한 상반되는 수많은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 여러 이야기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하나라고 봐야 할 듯하다.

3. 이후의 삶

엄청난 전공을 세운 조 에킨스이지만, 전투를 치르고 난 뒤 다른 전차의 통신수로 재배치되어 추가적인 전공을 세울 수 없었다. 조 에킨스의 보직은 유지되었고, 그렇게 종전을 맞이했다.
파일:sharp-shooting-former-tank-gunner-joe-ekins82-550nw-594653a.jpg
노인이 된 조 에킨스

전쟁이 끝나고 생업으로 돌아간 조 에킨스는 고향의 신발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30여년 동안 신발 공장에서 일하다가 관리자의 자리까지 오르고 은퇴한다. 그는 결혼 후 두 자녀를 얻었다.

노인이 된 뒤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는 영광도 누렸으며, 2012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