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7)
수나라 말기의 군웅.
위성지방 사람으로 동군의 법조를 지내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참형에 처해지게 되었는데, 옥리였던 황군한이 그가 날래고 용맹한 것을 기이하게 여겨 탈출시켜줬다. 적양은 망명해 616년에 와강에서 세력을 일으켜 선웅신을 등용했으며, 서세적의 권유로 무리를 이끌고 형양과 양군의 경계로 들어가 관선과 민간의 배를 약탈해서 물자를 공급해 만여 명의 무리를 모으게 된다.
이밀이 옹궁에서 왕당인, 왕백당, 주문거, 이공일 등에게 천하를 빼앗는 책략을 가지고 설득해 공경하게 만들었는데, 적양이 세력이 가장 강한 것을 알고 접근했다. 이밀이 책략을 만들어주자 그를 가까이 하면서 일을 꾀했으며, 이밀이 장안, 낙양을 휩쓸어 수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이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다가 이밀이 형양을 빼앗아 군량을 얻고 병사를 쉬게 하면서 곡식을 저장해 군세를 충실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자 이를 수락했다.
적양은 금제관을 함락하고 형양의 여러 현을 함락시켰으며, 형양 통수에 임명된 장수타와 싸우면서 그를 유인해 이밀의 복병을 통해 격파했다. 전투에 승리하자 이밀을 아장으로 세워 따로 부하를 거느리도록 하면서 포산공영이라 불렀으며, 적양은 이밀에게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향해 와강으로 가겠다고 해서 이밀과 헤어진다.
적양은 서쪽으로 가서 강성에 도착해 몇 개의 성을 항복시켜 물자, 양식을 크게 얻는 것을 알고서는 크게 후회해 군사를 이끌고 이밀을 쫓아갔다.
617년에 왕세충과 싸웠지만 승리하지 못하고 물러났는데, 이밀이 길을 차단해 왕세충을 격파했다. 왕유신, 적홍이 이밀의 권력을 빼앗는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소식을 들은 이밀이 적양을 미워했으며, 이밀의 부름으로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채건덕에게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