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성순(張成順) |
이명 | 장성희(張成熙) |
생몰 | 1873년 7월 22일 ~ 1934년 10월 20일 |
출생지 |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 삼리 |
사망지 | 서대문형무소 |
위패 | 국립대전현충원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성순은 1873년 7월 22일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 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북간도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고 제1남지방부(第一南地方部) 경호부장에 선임되어 경호원인 강기운, 고진홍, 이용학(李龍學) 등 20여 명을 지휘하여 지방지회의 설치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1920년 6월 중국 지린성 화룡현에서 독립군 40명을 모집해 국민회본부로 보냈으며, 동년 7월 일제 관헌의 밀정 이덕선(李德善)을 권총으로 사살했다. 또한 동년 8월에는 부하들을 직접 지휘하여 간도의 각처에서 6차레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고 밀정들을 사살했다.그러나 1920년 12월 천도교도인 양모씨의 권유로 일본군 19사단 사령부에 귀순하여 귀순증을 받고 자기 집에 있다가 회령경찰서원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1921년 12월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언도받고 1922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리하여 형집행대기 중 세차례에 걸친 감형으로 징역 12년 6개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 1934년 10월 20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성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3년에 국립대전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