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0 01:32:01

임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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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임치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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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9년 10월 9일 ([age(1979-10-09)]세)
신체 173cm, 70kg
입식 전적 31전 19승 (10KO) 12패
주요 타이틀 K-1 2006 KHAN 챔피언
K-1 2006 MAX 아시아 그랑프리 우승
K-1 2009 MAX 코리아 우승
세계 프로태권도 미들급 챔피언

1. 개요2. K-1 전적3. 파이팅 스타일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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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킥복싱, 무에타이 선수.

2. K-1 전적

  • 주요 승: 이수환(2), 오두석, 최종윤, 박성환, 노재길, 권민석, 김세기, 사무가와 나오키, 스즈키 사토루, 타츠지, 타힐 멘치치, 모삽 암라니
  • 주요 패: 남삭노이, 마사토, 이수환, 알버트 크라우스, 코히루이마키 타이신, 버질 카라코다, 아투르 키센코, 키도 야스히로, 야마모토 유야, 모삽 암라니(2), 맷 엠브리

K-1에 데뷔하기 이전부터 그는 국내의 킥복싱 무에타이 무대를 평정하며 이름을 떨쳤다. 한때는 태국의 전설적 낙무아이(무에타이 전사)인 남삭노이와도 경기를 치렀을 정도. 잘 싸우다가 4라운드에 복부에 니킥을 맞고 KO 당했다. 라운드 내내 빰 클린치 공방에서 완패했던 경기였다.(4라운드까지 버틴게 기적)
이에 그의 실력을 알아본 K-1에서 오퍼가 들어왔고, K-1 MAX 본선에서 데뷔전을 갖게됐다. 데뷔전 상대로는 특이하게도 헤비급인 토미하라 타츠후미가 거론되었으나, 다행히 취소되고 한국최강VS일본최강 이라는 명목으로 2005년 5월 4일, 일본의 대스타 마사토와 경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기 이전 태국에서의 무리한 훈련과 경험 부족으로 판정패했다.

이어서 서울에서 열린 MAX KOREA에서는 K-1 MAX 원년챔프인 알버트 크라우스와 격돌하여 어느정도 선전했으나, 또다시 판정패했다.

그 후 국내 입식격투기의 강자들인 최종윤, 박성환, 이수환을 연달아 격파하고 K-1 월드맥스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본선 개막전에서 만난 상대는 일본의 강자인 코히루이마키 타이신이었는데, 1라운드를 압도하며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로우킥 데미지가 쌓여 3라운드 T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코히루이마키와의 경기 이후, 얼마 안되어 WBF 챔프출신인 남아공의 버질 칼라코다와 대결했다. 임치빈은 버질의 펀치를 위빙으로 차단하며 선전했으나 연장전으로 가면서 체력저하라는 문제를 안고 또다시 판정패했다. 이처럼 국내선수에게는 이기지만, 외국선수에게는 연달아 패배하자 "국내용"이라는 오명이 붙기 시작했다.[1]

그러나 2007년 K-1 KN대회의 8강전에서 일본의 사무가와 나오키에게 판정승을 거두면서 일단은 자신이 외국선수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이어 4강에서 김연종을 상대로 첫 KO승을 따내며 결승가지 갔지만, 결승전에서 신예인 이수환에게 1라운드 KO패를 당하며 한국선수를 상대로는 첫 패배를 기록하게 되었고, 월드맥스 진출에 실패했다.

그후 2007년 K-1 KN 세계대항전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떠오르는 신예이자 꽃미남 파이터로 유명한 아투르 키센코와 대결하게 되었다. 이 대결은 임치빈으로서는 자신의 실력을 확실히 증명할 기회였다. 1라운드에 임치빈은 특유의 노련한 스텝과 하이킥으로 키센코를 압박했다. 그러나 2라운드에 키센코의 로킥으로 다리가 풀려 KO패 했다.

다음해인 2008년 아시아 MAX에 출전, 8강에서 일본의 복서 출신 파이터 스즈키 사토루을 KO시키며 기세를 올렸고, 4강과 결승에서 오두석, 노재길까지 모두 KO로 제압하면서 다시 월드맥스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번에 본선에서 만난 상대는 일본의 장신 파이터 키도 야스히로였다. 기대를 모았던 이 대결에서 임치빈은 방심했다가 1라운드 40초만에 니킥에 의한 충격적인 패배를 기록하게 된다.[2]

2009년, MAX KOREA에 출전한 그는 신예인 권민석과 베테랑 김세기를 연달아 제압하고, 결승전에서 이수환과 3차전을 하게 되었다. 임치빈은 초반 긴 리치를 살린 이수환의 타격에 밀려 다운을 빼앗겼다. 그러나 이수환이 마무리를 하기위해 들어오던 순간, 기습적인 카운터를 적중시켜 불리하던 상황을 뒤집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서 4번째로 월드맥스에 도전하게 된 셈. 임치빈의 본선 상대는 처음엔 코히루이마키와의 2차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후에 다소 쉬운 상대인 야마모토 유야로 상대가 바뀌었다. 야마모토 유야는 과거 킥복싱 무대에서 한번 이긴 경험이 있는 상대였기에 이번에야말로 월드맥스 첫 승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임치빈은 노련함을 살리며 1라운드를 잘 풀어냈다. 이어 2라운드에서도 우세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도중 유야의 백스핀 블로우로 인해 다운을 당하고 만다.[3] 큰 피해없이 곧바로 일어나 반격한 임치빈이었지만, 일본무대에서 일본인을 상대로 싸우면서 이런 식의 다운은 큰 감점 요소로 작용했다. 임치빈은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3라운드에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으나, 유야의 맷집이 꽤 좋았기에 점수를 따내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 또 어이없이 판정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임치빈은 월드맥스에 4번 도전하여 4번 모두 1회전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나 2009년 7월 26일 일본에서 열린 라이즈57 대회에서 일본의 중견 강자인 타츠지를 꺾으며 다시 기세를 올렸고, K-1 서울그랑프리에서는 맥스급 수퍼파이트에서 코소보공화국의 파이터 타힐 멘치치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2010년에는 6월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MAX KOREA에 시드배정을 받고, 올해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월드맥스가 연기되면서 MAX KOREA가 최소되었다. 이에 임치빈은 32세라는 적지않은 나이로 1년을 허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결국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며 K-1의 새로운 체급인 63kg급으로 전향할 것을 발표했다. 원래 70kg인 MAX급에서 체격이 작은 편이었기에 63kg이 더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올해 월드맥스에서는 65kg급 계약경기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데. K-1 자체가 망크리를 타면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이후 도장을 차리고 타 단체 경기에 출전중. 2014년 6월, 1년 1개월 만에 아제르바이젠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 기사가 떴다. 상대는 모로코의 강자 모삽 암라니. 3년 전인 2011년 연장 접전 끝에 승리한 적 있는 상대였지만, 아무래도 30대 중반의 노장 임치빈과 20대 중반 한창 성장세에 접어든 암라니와는 3년이라는 시간이 다르게 작용한 탓인지 1라운드 1분28초만에 강렬한 바디킥을 맞고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2015년 12월 Glory에서 또다시 모삽 암라니와 붙었지만 또다시 니킥을 복부에 맞고 KO패를 당하였다.

2016년 9월 다시 한번 Glory 페더급 컨텐더 토너먼트에 출전했지만 캐나다의 신성 맷 엠브리에게 2라운드 2번의 다운을 당하며 TKO패했다.

3. 파이팅 스타일

175cm라는 MAX급에서 평균적인 신장을 갖고있다. 주로 다양한 기술과 빠른 스피드로 상대를 농락하는 테크니션 파이터. 타격기에서 말하는 눈이 좋아 상대방을 공격을 잘 피하기도 했다. 또한 카운터를 이용하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등 지능적인 플레이를 선보인다. 다만 체력과 집중력이 다소 부족해 초반에 압도하다가 어이없는 한방을 허용해 역전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원래 라이트급 언저리에서 뛰었던 선수라 -70kg 급에서 기술에서 이기고도 파워에서 밀려 진 경기가 많았다. 특히 로우킥 데미지에 굉장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게 코히루이마키와의 경기.

4. 기타

그는 최홍만이 국내에 K-1붐을 일으키기 전부터 꾸준히 전적을 쌓아온 진정한 베타랑이자, 현역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강 입식타격가였다. 임치빈을 패배시킨 한국 파이터는 이수환이 유일하며, 비록 K-1의 강자들을 상대로는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으나 아직까지 세계무대에서 통할만한 몇 안 되는 한국 파이터 중 하나다. K-1의 강자들을 상대로도 굉장히 선전하기도 했지만 뒷심이 딸려 승리를 따내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운 점. 임치빈이 국내무대에서 꺾은 김세기 같은 경우 버질 칼라코다를 꺾은 적도 있었는데[4] 다소 운도 안따라 준 것이 사실이다.

전형적인 천재형 파이터로 격투센스가 좋았고 그에 맞는 노력도 하였으나, 당시 우리나라의 입식격투기 시장은 선수가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의 마사토처럼 협회에서 밀어주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한게 아쉽다.

이성현 선수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이성현 선수가 교과서적인 파이터라면 (물론 엄청 잘한다) 임치빈 선수는 테크니션이고 큰 기술도 종종 선보여서 관객몰이에는 더 좋은 선수였다.

K-1 진출 당시 머리스타일 때문인지 아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는데, 아톰이 일본 캐릭터라는 걸 의식해서인지 2011년 이후로는 아톰이라는 별명은 거의 안쓰이게 되었다. 실제로 2009년 2010년의 임치빈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아톰 임치빈', '코리안 아톰 임치빈' 등의 수식어가 붙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킥복싱 체육관 "칸짐"의 관장이며, 팀 치빈의 리더이기도 하다. 한때 최홍만이 경기할 때 세컨으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 케이블 채널인 KBS스포츠에서 '임치빈의 엘리트 킥복싱' 해설도 맡고 있다.

13년 8월 24일에 첫방송되는 '조선시대 노비'의 생활을 경험하는 tvN '시간탐험대 LET`S 古' 라는 쇼프로에 출연하기도 했다. 주어진 일과 이름은 물을 관리(수비)하는 강쇠. 물물 새는 바가지로 산만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기 위해 캐노가다를 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2015년부터 KBS N SPORTS 채널에서 메이저 킥복싱 단체 Glory의 해설을 담당 중이다.

2000년 당시 기사에는 태권도 2단이었다고 나온다. #


[1] 다만 임치빈은 당시 비교 대상이 없는 한국 K-1 에이스였기 때문에 대진이 상당히 험난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 이때 해설자인 김대환씨는 비명을 지르셨다. [3] 사실 이 다운도 엘보우성이 강했다. 임치빈 스스로가 후에 "글러브가 아닌 팔로 맞았다."고 했으니...... [4] 이후 리벤치 메치에서는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