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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국 제2대 국왕
이스보셋 אִישְׁבֹּשֶׁ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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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하는 이스보셋 -모건 성경의 삽화 | |||
<colbgcolor=#0038B8><colcolor=#fff> 이름 |
히브리어: 이스보셋(אִישְׁבֹּשֶׁת) 영어: Ish-Boshe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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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기원전 1052년 | ||
이스라엘 왕국 | |||
사망 | 기원전 1010년 (향년 42세) | ||
이스라엘 왕국 마하나임 | |||
재위 기간 | 이스라엘 국왕 | ||
기원전 1012년 ~ 기원전 1010년 (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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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8B8><colcolor=#fff> 지파 | 벤야민 지파 | |
전임자 | 사울 | ||
후임자 | 다윗 | ||
부모 | 아버지: 사울 | ||
가족관계 |
형
요나단, 리스위, 말기수아 누이 메랍, 미갈 조카 므비보셋[1] 아내: ? 자녀: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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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울의 넷째 아들이자 통일 이스라엘 전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다.[2] 다른 형제들과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임금이 되었다.성경에는 이스보셋의 기름부음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왕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는다.
2. 이름에 관해
그를 부르는 이름이 두 가지가 있는데 열왕기에서는 흔히 알려진 이름인 이스보셋( אִישְׁבֹּשֶׁת / Ish-bosheth)[3]으로, 역대기에서는 다른 이름인 에스바알(אֶשְׁבַּעַל / Eshbaal)[4]로 기록되어 있다. 이름의 의미를 보면 알겠지만 후자가 본디 이름이다.에스바알은 바알이 풍요의 신으로서 가나안 지역 전역에서 숭배되며 그 위상이 드높았을 때 바알 신앙의 일환으로 붙여진 왕족다운 이름이었던 것이고, 이스보셋은 후대의 유대교 성경 편찬자들에 의해 바알이 잡신 혹은 악마로 격하되면서 에스바알 역시 '악마를 섬기는 수치스러운 자' 라는 의미에서 이름까지 개서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다만 '바알'이라는 단어는 본래 '주인(主人)'이라는 뜻의 일반명사였고 따라서 야훼의 별명이었기도 해서, 후대에 바알과 야훼가 다른 단어로 정착된 것과는 별개로 에스바알이란 이름이 유래한 신앙이 바알 신앙이었는지 야훼 신앙이었는지는 불명이다.
3. 재위
이스라엘 전 국왕은 사울이었고 공식 후계자는 장남 요나단이었다. 따라서 후계 교육은 요나단에게 이루어져 4남이었던 에스바알은 왕위와 전혀 관련이 없을 법한 인생을 살고 있었으나 길보아 전투에서 아버지와 세 형이 모두 죽은 후, 당숙(아버지의 사촌형제) 아브넬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열왕기에서는 즉위 당시 40세로 2년간 재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간 살아온 삶이 왕이 되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고 실권 또한 없었는지 국정을 아브넬이 주관했고, 아브넬은 에스바알을 집권시킨 후 기브온으로 진군해 남왕국의 다윗과 싸워 패주했다. 그러다 에스바알은 사실상의 실권자였던 아브넬에게 아버지의 첩 리스바와 통간한 것을 추궁하였는데 그에 아브넬이 격분한 나머지 남왕국에 귀순하고 다윗에게 완전히 붙어버리면서 북왕국을 배신해 버렸다. 비록 남왕국의 군대장관 요압이 아브넬을 사적 원한으로 암살하여 나라 자체가 넘어가지는 않았으나, 실권자인 아브넬이 남왕국에 귀순하고 그곳에서 죽은 것 자체만으로도 북왕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4. 사망과 그 후
같은 벤야민 지파였던 장수 레갑과 바아나 형제에게 배신당하여 낮잠을 자던 도중에 살해당했다. 형제는 이후 남왕국에 귀순하면서 에스바알의 목을 다윗에게 진상했으나 정작 돌아오는 답변은 "이놈들의 목을 쳐라" 였다. 이스보셋의 아버지 사울의 때처럼 다윗의 환심을 사려던 시해자들이 오히려 처형된 것인데 배경을 보면 이렇다.다윗에게 에스바알은 처남(아내의 형제)이었으며 다윗은 정통성으로는 사울의 부마(임금의 사위)로서 민심의 추대를 통해 나라를 이은 것에 가까웠다. 비록 왕자 에스바알이 왕위를 이으면서 나라가 둘로 갈라지긴 했어도 에스바알은 선왕의 아들, 다윗은 선왕의 부마이자 민심의 추대를 받았다는 정통성이 각자 있었다. 즉,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반드시 북왕국을 포용해야지만 지도자로서의 모든 정통성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의 다윗이 정말로 에스바알이 시해된 것에 인격적으로 분노했던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다윗은 사울의 부마로서 나라를 이으려면 사울의 가족들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이미지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의 외아들 메리바알이 귀순하자 가족처럼 대우하며 왕족의 삶을 살게 해주기도 했는데 레갑과 바아나는 그런 사정까지 고려하지는 못하여 오히려 명을 줄이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렇게 길게 말할 것 없이 역사적으로도 자신의 주군을 배신하여 죽였다며 보상을 바라는 자들이 찾아오면 결국 죽여 없애는 것이 당연한 처우였다. 어떤 이해관계가 있다 한들 뻔뻔하게 배신을 입에 담는 자를 거두어 봤자 나중에 무슨 짓을 당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군을 시해한 신하를 보고서도 그냥 내버려두면 왕족과 왕가의 권위 자체가 우습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다윗은 "지난번 사울 왕의 죽음을 내게 알린 아말렉 청년도 자기가 사울 왕을 죽였다기에 목을 베었는데 하물며 침실에서 멀쩡히 자는 제 왕을 죽인 반역자들이겠느냐" 라며 형제를 처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