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로부터 자연과학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 시기의 자연과학은 독립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철학의 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스 과학을 대변하는 사람은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였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사상은 중세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편 아랍, 즉 이슬람의 과학은 중세 초기의 암흑기를 거쳐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기의 과학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였다. 이슬람의 과학은 주로 그리스 과학을 번역 · 수용한 것기에 비록 독창적 성격은 부족했었지만 의학, 천문학, 대수학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대수학을 의미하는 ‘algebra’의 기원이 알 화리즈미(al-Khwarizmi)가 사용한 용어 알 자브르(al-jabr)에서 유래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중세 초기의 과학은 암흑기였지만 11세기 이슬람에서 보존 · 발전된 그리스 과학이 다시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자연과학은 12세기부터 유럽에 등장한 대학의 교과과정에서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는데, 중세 대학에서 과학은 전공학문으로 존재하지 않고, 전공학문(신학, 법학, 의학 등 3개 전공학문이 있었다)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수하는 교양학부에서 다루어졌다. 게다가 이때의 과학은 수론(數論, number theory),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이 전부였다. 중세 대학에서 학문의 주된 목적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한 것으로, 철학과 과학은 신학의 시녀 역할이었다.
16 ~ 17세기에는 자연과학의 내용과 사회적 위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중세 이전의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학문으로서 변모하였던 것이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에서 시작하여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을 거쳐 아이작 뉴턴에 이르러 완성이 이루어진 새로운 천문학, 갈릴레오에서 시작하여 르네 데카르트,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를 거쳐 뉴턴에서 완성된 고전역학,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이래 축적된 해부학적 지식과 윌리엄 하비의 피의 순환 이론을 통해 학문의 모습을 갖춘 생리학, 데카르트, 피에르 드 페르마 등을 거쳐 뉴턴과 고트프리드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가 완성한 미적분학의 탄생 등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근대 자연과학이라고 할 때는 '아이작 뉴턴이 고전역학을 완성한 이후부터 19세기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17세기 말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몇 가지의 운동 법칙 그리고 수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성공하였다. 뉴턴의 과학은 경험과 이론의 종합에 의한 완성품으로서, 이후의 자연과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뉴턴이 추구한 방법론의 영향은 물리학, 천문학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생물학 분야는 물론 심지어 사회과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서양 현대 과학사조의 기원인 계몽사조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뉴턴 과학이 독단이 아니라 수학적 · 합리적 · 경험적 · 실험적 방법만을 사용하여 성공했다는 점에서 학문의 ‘과학적’인 면을 존중하는 경향이 퍼졌고, 이는 18세기의 철학자, 사상가, 문인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편, 근대화학의 체계가 형성된 것도 이 시기였다. 고전물리학 탄생된 이후 100년 뒤, 프랑스 혁명기 전후 앙투앙 로랑 드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에 의하여 근대화학의 체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화학 연구의 내용은 물론 형태, 방법의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이전의 화학이 정성적 화학 중심이었다면 근대들어서는 정량 화학 중심으로 바뀌었다.
라부아지에는 ‘물질보존의 법칙’을 제시하였으며, 산화탄소, 황산 등과 같이 구성 성분이 나타나도록 화합물을 명명했을 뿐만 아니라, 화합물을 기호로 나타낸 후 대수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화학반응을 방정식으로 표현하였다. 18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과학은 사회적으로 시스템이 갖추어 지고 전문화되었으며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과 같은 학문 영역이 구분되기 시작하였으며, 전문 학술지와 학술단체, 전문 교육기관도 등장하였다. 또한 19세기 중반에는 에너지와 엔트로피 개념이 생겨나면서 열 분야의 지식이 과학화되어 물리학의 중요 분야 중 하나인 열역학(熱力學, thermodynamics)이 탄생하였다. 18세기만 해도 열에 대한 연구는 물리학이 아닌 화학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열역학이 형성되면서 기존의 역학 분야와 함께 빛, 전기, 자기, 소리, 기체 등을 연구하는 분야들이 각각 체계화 · 과학화되어 물리학이라는 과학 분야로 귀결되었다. 한편 생물학에 대한 관심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인 실험과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그 때부터야 ‘생물학’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이후 자연과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하여 양자역학, 핵물리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등의 분야가 새로이 형성되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 새로운 분과 영역이 탄생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양자역학의 탄생은 매우 빛나는 업적인데, 보어의 원자모형과 고전양자론을 기반으로 한 행렬역학을 베르너 칼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가 발표하였고, 같은 시기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루돌프 조세프 알렉산더 슈뢰딩거(Erwin Rudolf Josef Alexander Schrödinger)는 파동역학을 이용하여 양자역학의 체계를 만들었다. 한편 양자역학과 더불어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정립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은 19세기 고전역학과 고전적 전자기학 사이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핵물리학의 경우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의 X-선의 발견, 제임스 채드윅(James Chadwick)의 중성자 발견, 독일의 오토 한(Otto Hahn),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n)이 발견한 우라늄의 핵을 통해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공학의 시작은 정확히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자연에 존재하는 재료와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인간의 필요를 채웠던 때로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될 것이다. 공학의 어원인 엔진(engine)은 라틴어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다.’ 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한다. 엔지니어(engineer)라는 단어는 기원후 200년경부터 사용되었으며 대포나 포위 공격탑과 같은 군사적 장비 또는 시설들을 개발하고 운용하는 직업인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현대에서는 공학 활동을 위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전문가를 의미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에서 1771년 존 스미턴은 군사공학(military engineering)이 아닌 도로, 교량, 운하 등 주로 토목과 관련된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시민공학(civil engineering)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1818년에는 세계 최초의 시민공학회(토목공학회)가 영국에서 결성되었으며, 공학은 자연에 있는 거대한 동력원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쓸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하였다. 그 후 산업혁명으로 인해 증기기관차 등 기계공업이 발달하게 되어 기계공학회가 1847년에 분화 독립하였다. 또한 전신기기의 발달로 전신공학회가 1871년에 창립되었으며, 전력기기의 발달로 1881년에 전기공학회라 개칭하였다. 공학의 전문분화는 20세기에 들어서자 더욱 진척되어 화학공학, 재료공학, 원자력공학 등이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