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 근처의 롱안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다 투옥된 이력이 있다. 베트남이 분단되면서 사이공 부근에 거주하고 있던 응우옌 후 토는 월북하지 않고 남베트남에 남아 철저한 공산주의 노선을 걸었다.
남베트남이 공화국으로 전환한 이후
응오딘지엠이 총통으로 선출되자, 응우옌 흐우 토는 처음에는 응오딘지엠과 협력했지만, 통일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투옥되면서 결별하게 되었다. 1961년 극적으로 탈옥한 후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일명 베트콩) 주석에 오르는데, 이 단체의 결성일은 1960년 12월 20일로 정확히는 탈옥 직전에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결성된 것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6월, 베트콩은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이하
남베트남 공화국)를 결성하고, 응우옌 흐우 토는 고문이사회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국가원수직은 없었고 남베트남 공화국 정부 주석은 후잉 떤 팟이 맡고 있었으나, 응우옌 흐우 토가 사실상 남베트남 공화국 국가원수로서 일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1975년 북베트남이 남침하고 사이공이 함락되며 베트남은 통일되었고, 통일 후에도 북베트남 측은 남베트남 공화국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신설되며 북베트남에 흡수되었다. 직후 응우옌 흐우 토는 통일 베트남의
국가부주석직을 맡고 있다가, 똔 득 탕국가주석이 임기 중 급서하자 잠시 국가주석직을 대행했다. 그를 끝으로 국가주석직은 국가이사회 주석으로 대체되어 폐지되었지만, 1992년 재신설되었다.
퇴임 후에는 1987년까지 국회주석직을 맡다가, 1988년부터 1994년까지 공산당이 포함된 선거연합인 베트남 조국전선(북한의 조국통일민주전선과 유사한 조직) 주석직을 수행했다. 1996년 사이공에서 향년 86세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