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미상 |
한양 | |
사망 | 1920년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윤덕배는 1911년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서 동청선인공의회를 조직하여 활동했고, 1912년 친화배일을 제창하면서 조선총독을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1916년 2월 통화현에서 서당을 설립하고 한인 자제들에게 한문을 교육했으며, 이주 한인들에 대해 중국으로의 귀화를 권유해 일제의 한인들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배제하고자 했다.이후 윤덕배는 1919년 3월 대한독립단 참의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3.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 향약계, 농무계, 포수단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이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했으며, 복벽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었다. 본부는 유하현 삼원포에 두었으며, 도총재 박장호, 부총재 백삼규였으며,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 부단장에 최영호, 김원섭이 활동했다.
국내외에 모두 100여개소의 지단,지부를 설치했으며,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로 하는 관구를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했다. 환인, 장백, 무송, 임강, 관전, 집안 등 10개 현에 지단을 세웠다. 이후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 지역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며, 대한통의부를 거쳐 의군부로 발전했다.
윤덕배는 1919년 4월 집안현 운지구에서 통구의 조선인조합총지부 및 일본순사,헌병을 처단하기 위한 준비를 수행하다가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