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11:09:23

유희(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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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熙
236년 이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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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자 유복의 손자로 유정의 아들, 유홍의 형. 예주 패국 상현 사람.

2. 정사 삼국지

254년 부친 유정이 사망하자 그 작위를 계승했다.

3. 삼국지연의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전날 밤에 조조를 읊다가 유복이 시어 중에 불길한 구절이 있다고 말했다가 빡친 조조가 내지른 창에 찔려죽으면서 끔살당하는(...) 바람에 졸지에 부친상을 치르게 되었는데, 이 때 유복의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의 오류로 인해 연의에서는 유복의 아들이 유정이 아닌 유희로 나오면서 손자가 아들이 되었다(...). 정소문 삼국지에서는 이 장면에 대해 유희가 유복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오류를 대할 때마다 작자는 왜 이런 것까지 왜곡했는지 의심스러워진다고 했다. 그리고 유정의 이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의 대를 이은 아들이 유희라고 했다.


[1] 정확한 생년은 알 수 없지만 동생인 유홍 사마염과 동년배라는 것으로 볼 때 사마염의 생년으로 추정하면 적어도 236년 이전부터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