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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인(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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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劉夫人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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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여성이자 조조의 첩, 조앙, 조삭, 청하공주의 친모.

2. 정사 삼국지

정부인과 함께 조조의 최초 처첩으로, 자식을 낳지 못한 정부인과 달리 조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셋이나 낳았지만 일찍 죽었다. 유부인이 죽은 후 맏아들 조앙이 정부인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유부인은 사실상 대리모 역할만 하고 죽은 셈이 되었다.

삼국지집해 위서 무문세왕공전에서는 유부인 언급 직후 "위무제(조조)의 유첩여(劉婕妤)가 7월 7일에 유리붓을 부러뜨렸다."라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의 기록을 인용했다. 이 기록에서의 유첩여(劉婕妤)라는 호칭으로 미루어 보아 유부인은 위나라 건국 후에 첩여(婕妤)라는 후궁 작호로 추존되었다.

조조묘에서 조조와 합장된 두 여성의 유해 중 늙은 여성은 무선황후 변씨로, 젊은 여성은 일찍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 유부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 그러나 정실부인이 아닌 첩이 남편과 합장되었다는 점이 이상하고, 조조묘 자체가 진짜 조조의 무덤인지 신빙성 논란이 심하기 때문에 유부인의 유해가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

3. 삼국지연의

68회(모종강본 기준)에서 조앙의 어머니로서 첩 유씨라고 언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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