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한번씩 치러지는
올림픽의 종목들 중, 특히 기록 경기들은 순위를 정하고 금,은,동메달을 가리는 데 있어서 시간을 정확하게 계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올림픽은 월드 와이드 파트너로 시계업체를 선정해 타임키퍼를 맡기는데, 다음은 그 타임키퍼에 대하여 설명한 문서이다.
제 1회 올림픽인
1896 아테네 올림픽 부터 존재했던 종목인 육상과 수영을 포함한 다른 기록 종목은 정확한 시간 계측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에 정확한 시간 계측을 할 수 있는 업체에 IOC는 타임키퍼를 맡기게 되었는데 당시 1/5초까지 시간을 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스위스 시계회사
론진이 그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에 1/5초단위로 기록을 잰다면 모든 사람들이 비웃겠지만 당시는 1/5도 최신 기술이었다. 그렇게 론진은 초대 올림픽의 타임키퍼를 맡게 되면서 수많은 선수들의 기록을 쟀다.
론진이 1/5초 단위의 시간 계측 기술을 개발하자 너도 나도 모두 시간 계측 기술에 뛰어들었고 올림픽 타임키퍼를 맡으려고 애썼다. 그 와중에 1916년 올림픽부터 1928년까지 총 12년동안 스위스 브랜드인
태그호이어가 타임키퍼를 맡았다. 그러나 1/5 초 단위로도 해결되지 않는 시간 계측은 여전히 문젯거리였다. 결국 1932년 수영 종목에서 독보적인 터치패드 기술을 발전시켜 기술로 시간을 잴 수 있게 한 스위스 브랜드
Omega에게 타임키퍼의 영광이 돌아갔다. 그리고 오메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계속 올림픽 타임키퍼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술을 발달시켜 나갔다. 그렇게 1932년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부터, 동계 올림픽은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올림픽 부터 타임키핑을 시작하게 된다.
오메가는 그렇게 자사 시계 홍보 효과를 제대로 누리게 되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다른 시계 업체들이 너도 나도 타임키퍼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IOC는 쉽게 타임키핑 브랜드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뀌게 된 계기는 바로 1964년 도쿄 올림픽이었다. 일본은 타임키퍼로 자국시계 브랜드
세이코를 임명했고, 세이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그리고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 그리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서 타임키퍼로 활약했다. 한편 독일 역시 1972 뮌헨 올림픽에서 자국 브랜드
융한스를 타임키퍼로 임명했으나, 수영만큼은 오메가를 바꾸지 못했다. 이는 수영에서의 오메가의 터치패드 기술이 너무나 절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 다른 회사가 타임키퍼를 맡았으나, 오메가 만큼의 정확성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IOC는 다시 타임키퍼를 오메가에게 맡긴다. 오메가는 더 이상 타임키퍼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기술력을 들여서 순위를 정확하기 잴 수 있게 무려 1/10,000 초 단위까지 잴 수 있게 기술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이런 활약에 힘입어, IOC는 오메가와의 계약을 2032년까지 연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