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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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plosions des Oppauer Stickstoffwerkes1921년 9월 21일 바이마르 공화국 루트비히스하펜 오파우 지역의 비료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2. 사고 당시
오파우는 독일 남서부 루트비히스하펜에 있는 작은 마을로, 1913년 화학 약품 회사 BASF(Badische Anilin-und Soda-Fabrik AG)가 8헥타르 규모의 땅에 프리츠 하버가 발견해낸 하버법으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공장을 세웠다. 이곳에서 직원 8,000명이 하루에 약 40톤의 암모니아를 생산하고, 질산을 만들어내 질산암모늄과 황산암모늄도 만들었다. 세계 1차 대전땐 소금을 만들어 군에 공급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든 질산 암모늄과 황산 암모늄을 2:1의 비율로 섞어 혼성 비료를 만든 뒤 흡습하고 굳혀서 높이 60m의 사일로 110에 보관했다. 사일로 하나엔 최대 5만톤에 달하는 비료를 보관할 수 있었고, 이런 사일로가 여러개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굳혀둔 비료가 몇만톤 단위로 쌓이다 보니 점점 축적돼서 단단하게 굳어졌고, 그냥 삽으로 퍼내기 힘들어서, 다이너마이트로 발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조각난 비료 조각들을 포대에 담아 옮겨서 팔곤 했다. 이렇게 섞인 비율의 비료는 큰 충격이 가해지면 폭발할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약 3만회 했지만 무사고였다. 감독관이 감시를 해서 이렇게 무사고였다. 하지만 방법이 안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1921년 7월, 독일 Kriewald에서 같은 방법으로 질산 암모늄 발파 작업을 하다가 질산 암모늄이 폭발해 19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1921년 9월 21일 아침 7시 29분에 1차 폭발이 일어났고, 2분 뒤인 7시 31분에 2차 폭발이 일어났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첫 폭발은 약했지만, 두번째 폭발은 강력했다고 한다. 무려 4,500톤의 질산 암모늄이 폭발했는데, 깊이 19m, 너비 125m의 크레이터가 생기고 직원들을 태우고 가던 열차가 폭발로 전복됐다. 폭발은 80km 밖의 건물도 피해를 입히고 230km 떨어진 바이에른주 북부 바이로이트에서도 관측됐으며 350km 떨어진 뮌헨에서도 폭발음이 들릴 정도였다. 라인강의 보트들도 충격을 받아 부셔졌고, 선원들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폭발은 무려 TNT 2킬로톤 규모였다. 리틀보이의 15분의 1 수준이다.
폭발로 루트비히스하펜 마을에 검녹색 연기가 퍼져나갔고 곧이어 마을 전체를 연기가 뒤덮었다. 인근 만하임에도 연기에 뒤덮였다. 폭발의 충격으로 곳곳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암모니아 연기가 퍼져나갔다.
작은 폭발들이 계속 이어져서 구조대는 오전 9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루트비히스하펜에 주둔했던 프랑스군이 사람들이 주변에 못 들어오도록 라인을 치고 구조대와 적십자, 프랑스군과 독일군까지 총출동해 부상자와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구조하면서 자가용까지 동원됐다. 루트비히스하펜의 병원은 부상자들로 가득차서 만하임과 하이델베르크, 프랑켄탈, 그리고 웜의 병원에도 부상자들이 옮겨졌다. 이재민들은 인근 학교에서 한동안 살아야 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인근 공터에 옮겨졌다. 부상 입은 부위는 갈대로, 얼굴은 흰 천으로 가려졌다. 유가족들이 찾아와 장미를 바치며 넋을 기렀다.
결국 사고로 561명이 사망, 2,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 177명은 BASF직원, 384명은 오파우 지역 주민이었다. 오파우 지역 건물의 80%가 무너져 6,500명이 집을 잃었다. 당시 피해액은 약 3억 2천1백 마크스였는데 달러로 환산시 당시 가치로 약 170만 달러였다.
3. 사고 이후
사고 현장을 다 치우기까지 무려 3년이나 걸렸다.
공동 장례식이 루트비히스하펜의 공동묘지에서 열렸고, 약 70,000여명이 모였었다. 당시 독일 대통령이었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총리도 장례식에 참여했다.
질산 암모늄의 폭발성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동안은 질산 암모늄을 황산 암모늄에 적절히 혼합하면 터지지 않는다 알려졌으나, 사고를 통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폭발은 과학 연구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폭발이 클 경우, 바람과 대기 온도 등에 따라 일정 지역에는 폭발 소리가 아예 안들리는 지역도 있단 것이 밝혀졌다.
BASF공장은 아직도 오파우 지역에 남아있다.
인근 지역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
2021년 9월 21일, 폭발사고 100주기에 맞춰 BASF에선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공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