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lack><colcolor=#000000> | ||
아키야마 쥰 | 오오이시 마코토 | 남색 디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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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Family Guy, ruby=ファミリー・ガイ)]> [ruby(大石 真翔, ruby=おおいし ま こと)] / Makoto Ois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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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2d2f34> 링네임 |
<colbgcolor=#ffffff,#2d2f34> 삼보 오오이시 (サンボ大石) 오오이시 마코토 ([ruby(大石 真翔, ruby=おおいし ま こと)])[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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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오오이시 토미유키 [ruby(大石 富之, ruby=おおいし とみゆ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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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79년 2월 16일 ([age(1979-02-19)]세) | |
신장 | 170cm | |
체중 | 75kg | |
혈액형 | A형 |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시즈오카현 후지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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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 | 배우자 오오하타 미사키 ([ruby(大畠 美咲, ruby=おおはた み さき)])[2] (1989년생) | |
학력 |
니혼대학
미시마고교 (졸업) [3] 하치노헤공업대학 ( 삼보부/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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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하이 플라이어 → 테크니션[4] | |
시그니쳐 무브 |
너클[5] 러닝 포어암 스터너 직접전수([ruby(直伝, ruby=じきでん)]) 토네이도 클러치[6] 케인 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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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 무브 |
삼보 수플렉스[7] 루미나스 프레스[8] 일품([ruby(絶品, ruby=ぜっぴん)])[9] 미라클 엑스터시[10] 후지야마 니 락[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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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아이돌 레슬러 (アイドルレスラー) 마코링(まこりん) [ruby(Family Guy, ruby=ファミリー・ガ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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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곡 |
SAMBO SAMBO 2008 (200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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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
2002년 1월 4일 (22세) 푸에르토리코 KAIENTAI DOJO vs PSYCHO[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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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
주요 커리어 |
UWA 월드 미들웨이트 챔피언 4회 인디펜던트 월드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스트롱기스트-K 태그팀 챔피언 3회 WEW 하드코어 태그팀 챔피언 2회 K-METAL 리그 우승 (2003년) 타지마할 컵 토너먼트 우승 (2007년) 미치노쿠 프로 도호쿠 태그팀 챔피언 1회 BBW 6인 태그팀 챔피언 1회 BWA 월드 웰터웨이트 챔피언 1회 인터내셔널 리본 태그팀 챔피언 1회 DDT 익스트림 챔피언 1회 KO-D 태그팀 챔피언 2회 KO-D 6인 태그팀 챔피언 5회 KO-D 10인 태그팀 챔피언 1회 아이언맨 헤비메탈웨이트 챔피언 27회 월드 오오모리 챔피언 1회 O-40 챔피언 1회 |
1. 개요
일본의 프로레슬러.2. 커리어
지역 기반 토목 회사의 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오오이시는 일본 내에서도 축구 인구 비율이 매우 높은 시즈오카 출신이지만 축구에는 관심이 없었고, 중학생 때 수영부에 들어갔으며 이 때 수영부 선배의 영향으로 16시에 방영되던 월드 프로레슬링을 시청했는데 당시 오하라 미치요시의 헤이세이 유진군으로 가는 장면부터 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헤이세이 유진군의 팬이 되었다.[13]니혼대학 미시마 고등학교 시에는 운동과 관계 없는 신문부 소속[14]이었던 오오이시는 성적 부족으로 니혼대학에는 입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토목 회사를 이어받기 위해 하치노헤시의 하치노헤공업대학으로 진학했고, 삼보부의 팜플릿을 보고 슈페르 델핀, 하세 히로시 등 당시 유명 프로레슬러들이 하던 삼보라는 무술에 흥미를 느껴 삼보부에 들어갔다.[15]
삼보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실적을 거두던 오오이시는 대학교 시절 친하던 친구들 중 프로레슬링 팬이 많았기 때문에 '프로레슬러가 되겠다'하면 친구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여 프로레슬러를 목표로 하게 되었고, 대학 근처인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입단도 생각했으나 WWF의 스타였던 TAKA 미치노쿠의 이름값고, 입단하면 2기생이여서 선배가 적을 거라는 생각에 대학 졸업 2일만에 푸에르토리코까지 가서 KAIENTAI DOJO에 입문했다.[16]
2.1. KAIENTAI DOJO
2001년 1월 4일에 삼보 오오이시(サンボ大石)라는 링네임으로 푸에르토리코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곧 KAIENTAI DOJO가 일본에 역상륙하게 되면서 그대로 KAIENTAI DOJO 소속으로 활동하게 되었다.2002년에 미치노쿠 프로에서 오리하라 마사오와 경기를 갖지만 패하고, 이시자카 텟페이와의 경기에서 첫 승리를 거둔다. BattleARTS에서도 가끔씩 경기를 갖다가 2003년 KAIENTAI DOJO에서 열린 K-METAL 리그에 출전해 마이크 리 주니어, DJ 니라, 아사히 시오리, 조츠 타쿠, 이시자카 텟페이를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2004년에 대일본 프로레슬링에도 처음 출연하면서 그란 하마다와 팀을 이뤄 MEN'S 테이오 & 우스다 카츠미를 상대로 패하고, KAIENTAI DOJO에서 열린 태그 리그에 치쿠젠 료타와 참가하지만 탈락된다. PSYCHO, 수퍼-K, 야마가타 유우를 상대로 페이탈 4 웨이 일리미네이션 매치를 벌여 승리를 거두며 UWA 월드 미들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해 첫 챔피언 경력을 만든다.
2005년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경기를 가지며 데이비드 플레어와 팀을 이뤄 NOSAWA론가이 & MAZADA를 상대로 패하고, 이후부터 전일본 프로레슬링 & KAIENTAI DOJO를 오가며 활동하며 한동안 미니 러브 머신 2호라는 링네임으로 활동하다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더이상 활동하지 않게 되고, 2004년에 아사히 시오리와 태그팀을 맺게 된 이후부터 오오이시 마코토로 활동을 하게 된다.
드래곤 게이트에도 첫 출연하게 되고, 아사히 시오리와 팀을 이뤄 도이 나루키 & 요시노 마사토를 상대하나 패하고, 드래곤 게이트 & KAIENTAI DOJO를 오가며 활동하기 시작하다가 이 과정에 DDT 프로레슬링에도 첫 출연하며 타카나시 마사히로와 경기를 가져 승리를 거두고, 아사히 시오리와 팀을 이뤄 미야모토 유코 & 시노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KAIENTAI DOJO에서 챔피언 경력을 만들어 나가며 이전에 활동한 미치노쿠 프로를 포함해 대일본 프로레슬링, 암흑 프로레슬링 조직 666를 돌아다니며 경기를 가지고 2007년에 타지마할 컵 원데이 6인 태그 토너먼트에 참가해 결승전에서 아사히 시오리 & 히노 유지와 팀을 이뤄 애플 미유키 & 보소 보이 파이토 & 콰이어트 스톰을 꺾고 우승하게 되고 이때를 시작으로 3명은 오메가를 결성하기 시작한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히노 유지와 같이 유지로 & 타구치 류스케를 상대하지만 패하고, 개별활동을 우선적으로 하는 히노 유지와 달리 오오이시 마코토는 아사히 시오리와 팀으로 다니는 일이 많고, KAIENTAI DOJO & 대일본 프로레슬링 & DDT 프로레슬링이 합동으로 벌인 무대에서도 경기를 가지며 3단체를 오가며 활동을 한다.
2010년에는 프로레슬링 NOAH에도 처음으로 경기를 가지며 아사히 시오리와 같이 이시모리 타이지 & 리키 말빈을 상대하지만 패하고, ZERO-1에서는 후지타 미노루 & 스가와라 타쿠야와 팀을 이뤄 히다카 이쿠토 & 카키무라 켄타 & 사와 무네노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여성레슬링 단체인 아이스 리본[17]에서도 자주 출연해 여성레슬러들과 인터잰더 매치를 벌이고, 2010년에 KAIENTAI DOJO를 탈퇴하며 FA로 전향한다.
2.2. DDT 프로레슬링
2011년 12월에 프리랜서로 DDT 프로레슬링에 참전하던 오오이시는 30대임에도 마코링(まこりん)이라는 별명을 자처하며 '아이돌 레슬러'를 표방하기 시작했고, DDT48 총선거 이후 타카기 산시로 사장에게 직접 입단을 요청하여 2011년에 DDT 프로레슬링 소속으로 활동하며 활발할 활동을 이어나가게 되었다.2016년에는 타카기 산시로의 엄명으로 카츠마타 슌마, MAO와 함께 아이돌 유닛 NωA를 결성하게 되었으며, 싱글 곡 2곡을 내는 등 반강제로 활동을 이어오다 2018년 1월에 간신히 해산했다.
이후 아키야마 쥰, 와타세 미즈키, 오카타니 히데키와 그룹 쥰레츠(純烈)의 패러디 그룹인 쥰레츠(準烈)[18]를 결성하여 쥰레츠의 리더로 활동했으나 2021년에 요추 골절을 당하며 2021년 10월에 쥰레츠는 해산했다.
1년을 결장하다가 2022년에 복귀하면서 히노 유지, 아사히 시오리와 함께 KAIENTAI DOJO 시절의 오메가를 재결성하여 활동을 하고 다녔다.
이후 히노 유지가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활동을 휴지하면서 오메가가 해산하자 조금 뜬금없는 조합이지만 아키야마 쥰 & 남색 디노와 함께 엮이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결국 그 둘과 함께 D・O・A라는 팀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아키야마 & 남색 디노와 함께 통산 5회 KO-D 6인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였고, 이후로도 태그팀 파트너인 남색 디노에게 방해 아닌 방해하며 남색 디노가 립 록을 준비할 때마다 와사비를 꺼내들며 남색 디노가 질색함에도 와사비를 입에 넣은 상태로 립 록을 하라고 강요하고, 때때로 논 타이틀 매치에서 이 작전을 쓰다가 패하는 일이 생기지만 챔피언십 매치에서는 아키야마 쥰이 있어 방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2.3. 프리랜서 전향
2024년 8월에 장인어른의 사망과 함께 생활 거점을 미야기현 센다이시로 옮기게 되면서 10월 3일 퇴단 후 프리랜서 전향이 결정되었고, 퇴단하기 전 DDT에서 싱글 및 태그팀 경기를 갖게 되면서 FA로 완전히 전향한다.전향 이후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2024에 마이크 D 베키오와 함께 참가했다.
3. 여담
- TAKA 미치노쿠의 제자이다.
- 하치노헤공업대학 시절 삼보로 전국 대회 우승 경력이 있으며, 데뷔 당시의 링네임 '삼보 오오이시'의 모티브가 되었다.
- 2006년에 결혼한 적이 있지만 2011년에 생활고가 원인으로 이혼했고, 이혼 후에는 같은 DDT의 아키토와 동거한 적이 있다.
- 어깨에는 대학교 4학년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 한 글자를 문신으로 새겼다.
- 위로 누나 한 명이 있으며, 크러쉬 걸즈( 나가요 치구사 & 라이오네스 아스카)의 팬이었다고 한다.
- 2018년 5월 25일 토시마엔에서 열린 'DDT 노상 프로레슬링 in 토시마엔([ruby(闘志磨苑, ruby=と し ま えん)])'에서 노상 경기 도중 사귀고 있던 프로레슬링 WAVE 소속 프로레슬러 오오하타 미사키에게 문자 그대로 드라마틱한 공개 프로포즈( 전체 스토리, 요약본)를 하여 재혼에 골인했고[19], 둘 사이에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 사이토 브라더스와 사이토 브라더스가 진행하는 'TAXI밥 리턴즈(TAXIめしリターンズ)'의 어마어마한 팬. 평소에도 본방을 사수하고 있으며, 사이토 브라더스의 사진집까지 살 정도로 팬심이 어마어마하다. 프리랜서로 참전하면서 만날 때마다도 팬심을 아낌없이 표출하고 있다.
[1]
2004년 12월에 아사히 시오리와 함께 태그를 맺으면서부터 링네임을 변경해서 현재까지 써오고 있다.
[2]
일본의 전 여자 프로레슬러. 프로레슬링 WAVE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2018년 5월에 오오이시 마코토와 결혼한 후 12월 29일에 은퇴했다.
[3]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필승계투 오자와 레이지,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 출신 배우 한영혜,
AKB 48 출신의
시마다 하루카 등이 이곳 출신이다.
[4]
사실 하이 플라이어라고 하기엔 너무 노쇠해진 것도 있고 잦은 부상을 겪은 것이 있어 하이플라잉 무브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쇼맨 기반의 테크니션으로 전향한 상태.
[5]
프로레슬링에서는 반칙이지만 거의 기본기로 사용한다.
[6]
토네이도 클러치와 비슷하며,
MEN'S 테이오가 직접 전수해줬다.
[7]
우라나게.
[8]
공중에서 360도 회전을 가한 플라잉 바디 프레스.
[9]
라이언설트. 본인이 쓰는 모습은 거의 못 보게 되었지만 후배
나카무라 케이고가 공인을 받고 사용하고 있다.
[10]
파워 밤
[11]
기술명의 유래는 스스로가
후지산이 보이는 시즈오카현 출신인 것과 기술의 완성형이 산 모양처럼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의 양다리에 니락을 걸고 상대의 다리에 감은 자신의 다리를 올리면서 상대의 무릎도 함께 조른다.
[12]
일본에 표기까지 똑같은 프로레슬러가 있는데 그 프로레슬러가 아닌 푸에르토리코 현지 단체의 선수였다고 한다.
[13]
다만 고향
후지시에는 신일본,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오지도 않고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일명 전녀)만 자주 와서 전녀만 볼 수 있었다고 하며, 고교 시절 처음으로 본 남자 레슬링이 FMW로 여기에서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14]
고교 때 수영을 그만둔 이유는 같은 학년에 전국 중학교 여자 평영 100m, 200m를 개작살 내고 그대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200m 평영으로 금메달까지 딴 이와사키 쿄코가 같은 학교 수영부였는데, 금메달리스트와 같이 연습하는 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15]
부원이 적어서 레슬링부, 유도부와 함께 연습했으며, 레슬링부의 선생님이 레슬링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라 데뷔 후에 유명 레퍼리 타이거 핫토리가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했을 때 이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엇, 카츠무라 선생님의 제자야?"라고 눈빛이 변하면서 말했다고.
[16]
아버지가 대학교 4학년 여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내 뒤를 안 이어도 된다. 너가 하고 싶은 걸 해라'라고 말하여 그것을 계기로 프로레슬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17]
여기서도 활동하게 된 계기는 여자 프로레슬러와의 대전에 익숙해지고 싶다는 희망이 있어 참가했다.
[18]
발음은 같으나, 앞의 '쥰'자가 아키야마 쥰의 쥰 자이다.
[19]
워낙 이례적인 경우여서 국내 커뮤니티에서도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철거반 역할은 역시나 재혼 경력이 있는
사카구치 유키오. 실제로 수도관 공사 관련 회사를 운영 중이여서 트럭 운전에 익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