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염명석(廉命石) |
출생 | 1885년 8월 13일[1] |
사망 | 1967년 4월 4일 (향년 81세) |
출생지 |
한성부 남부 두모방 전관동[2] (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
추서 | 대통령표창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염명석은 1885년 8월 13일 한성부 남부 두모방 전관동(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에서 태어났다.그는 1919년 3월 26일 밤, 김완수(金完洙)의 주도로 동 뚝섬과 서 뚝섬 주민 수백 명이 여러 곳에서 만세시위를 벌였을 때 이에 참여하였는데, 당시 신원룡(申元龍)과 최자근동(崔者斤洞)이 선두에서 군중을 지휘하며 한 곳으로 모으려 하였으나, 일본 헌병이 공포를 쏘아 군중을 강제 해산시켰다. 이때 김완수는 '공포다. 도망가지 말라'고 소리치며 군중을 다시 모았다. 그러나 군중이 다시 모이기 전에 문창호 등은 체포되고, 염명석은 복부와 팔에 총상을 입고 도주하였다. 그후 4월 10일 염명석이 남대문 밖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을 알아낸 경성헌병대에 체포되었다. #
이로 인해 염명석은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아 # 곧 공소하였으나 7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 되어 #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7년 4월 4일 사망하였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