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7:52:01

양회일


성명 양회일(梁會一)
해심(海心)
행사(杏史)
본관 제주 양씨
생몰 ? ~ 1908년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1]
사망지 장흥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양회일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출신이며, 출생년도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는 시문에 능하고 덕망이 있어 유생들의 추앙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1907년 고종 황제가 퇴위하고 대한제국군이 강제해산당하자, 그는 양열묵(梁烈默)·이동화(李東華) 등과 더불어 항일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의병 100명을 일으켜 능주읍을 공격해 군아(郡衙)와 주재소(駐在所)를 습격하여 총 5정을 빼앗았다. 이후 여세를 몰아 광주를 치기로 하고 화순까지 진격하여 군아와 분파소를 습격한 후 동복 방면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날이 저물 무렵 화순과 동복의 경계인 흑토치(黑土峙)에서 적에게 포위를 당하였다. 포위망을 탈출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의병 대장 양회일이 여기에 있으니 맞서서 싸우자.”라고 외치며 힘을 다해 싸우다 끝내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나주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가 1907년 12월에 풀려난 그는 1908년경 재차 의병을 일으켜 강진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다시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광주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장흥 헌병소로 옮겨져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단식한지 7일 만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양회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인근의 강성리·매정리·품평리와 함께 제주 양씨 집성촌이다. 양향자 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