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마나시현 북동부 지역에 있었던 촌으로, 2005년 11월 1일에
엔잔시, 히가시야마나시군
카츠누마초와 합병되어
코슈시가 되었다. '야마토'라는 명칭은 1941년 2월 11일, 군의 경계 합병으로 탄생되었으며 크게 화합한다는 취지를 담아 지었다고 한다.
무로마치 시대인 1416년 2월, 카마쿠라에서 일어난 우에스기 젠슈의 난에 가담한 카이국 수호 다케다 노부미츠가 츠루군에서 우에스기 켄슈 세력에게 패한 뒤 도쿠사 산에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세이운지는 중국에서 츄호 민폰(中峰 明本)으로부터 임제 선불교를 배운 고카이 혼죠(業海本浄)가 1348년에 개창한 사원이며 호쿄인탑(宝篋印塔)이 있다.
전국 시대인 1582년 3월에는 오다 및 도쿠가와 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한
다케다 카츠요리가 니라사키의 신푸성에서 군나이 영주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거처한 이와도노 산성으로 퇴역하던 중 코마카이에서 노부시게의 배반을 알고, 히 강 골짜기를 따라 텐모쿠산으로 달아나 타노 마을에서 패한 뒤 사망했다. 다케다 가문이 멸망한 뒤 텐쇼 임오의 난을 거쳐 카이를 지배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인해 죽은 카츠요리의 명복을 빌기 위해 케이토쿠인이 건립되었고, 하시카노 산이 봉납되면서 타노 마을을 사찰 영토에 부여받았다.
에도 시대 때는 히 강가에 촌락지가 성립되었다. 오른쪽 강변에 하시카노, 츠루세가 성립되면서 쿠스지니령에서 야마나시군 쿠리하라스지에 속했고, 왼쪽 강변에는 히카게, 타노, 도쿠사가 성립되면서 야츠시로군 이사와스지에 속했다. 산간 지방에서 논이 적었기 때문에 생업은 얼마 되지 않는 밭 농사 말고도 양잠이나 담배 등의 작물을 재배했고 산림업이나 제탄업, 코슈 도로를 따르는 코마카이슈쿠나 츠루세슈쿠에서 짐삯벌이로 생계를 꾸렸다.
큐슈의 가톨릭 선교사 영주 아리마 하루노부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다. 에도 막부 시대 말기에 일어난 무진 전쟁에서 1868년 3월 6일에 곤도 이사미가 이끄는 코요 진압대가 고후로 향했고 메이지 정부군도 참모 이타가키 타이스케가 이끄는 군의 세력이 진군하면서 카츠누마의 가시오에서 충돌이 발생, 그 결과 코요 진압대가 패하고 말았다.
근대 시대 때는 밭 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 뿐만 아니라 양잠과 산림업이 진행되었다. 1903년에는 츄오선의 개통과 동시에 하지카노역이 개업하면서 코마카이 및 츠루세에 있었던 역참은 쇠퇴하였다. 1880년에 진행된 메이지 덴노의 행차에 즈음하여 코마카이슈쿠에서 코마카이교에 이르는 직선도로가 건설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1951년에는 논밭을 만드는 계획이 실시되었고 마을에서도 벼 농사가 시작되었다. 1961에는 20번 국도에 있는 사사고 터널이 개통되었고, 1977년에는 사사고 산을 관통하는 주오자동차도가 개업되면서 현의 경제에 큰 영향을 준 반면 과소화가 진행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과수 재배, 쇠로 살을 만들거나 비석에 사용된 코슈 안장마석의 생산, 히 강 계곡이나 다케다 가문의 종언 땅을 살린 관광에 힘을 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