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21:53:21

카이쿠바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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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앗 딘 케이쿠바트
페르시아어, 아랍어 : علاء الدين كيقباد بن كيخسرو
튀르키예어 Alā ad-Dīn Kayqubād ibn Kaykhusraw

생애 1190년 ~ 1237년 5월 31일
재위 1220년 ~ 1237년 5월 31일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룸 술탄국의 10대 술탄. 케이쿠바드 1세로도 불린다. 부왕 케이휘스레브 1세와 형 카이카우스 1세에 이어 활발히 정복에 나섰다. 주로 동부 아나톨리아와 남해안, 자지라 지방을 주로 원정하였고 1225년에는 룸 셀주크 최초의 해상 원정에 나서 크림 반도의 수다크까지 점령하였다. 영토 확장과 함께 치세 내내 건축 사업과 궁정 문화가 꽃피웠고, 따라서 카이쿠바드 대왕으로 수식되기도 한다. 룸 셀주크의 전성기였던 카이쿠바드의 치세는 후일 몽골 치하에서 황금기로 기억되었다.

2. 생애

1211년 6월 부왕이 메안데르의 안티오키아 전투에서 니케아 제국에 패하고 전사한 후 장남 이즈 앗딘 카이카우스가 술탄에 추대되자 당시 토카트 총독이던 카이쿠바드와 안탈리야의 카이페리둔 이브라힘은 형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후자는 콘야를 일시 점령하기도 했으나 결국 진압되었고, 카이쿠바드 역시 앙카라에서 버티다 사로잡혔다. 다만 카이카우스 1세는 동생들을 용서했고, 1220년 그가 사망한 후 카이쿠바드는 형의 뒤를 이어 술탄에 올랐다.

즉위 후 1221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령 알란야를 공격해 점령하고 동계 수도로 삼았으며 1225년 초에는 안티오크 공작 보에몽 4세의 부탁으로 킬리키아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1230년 8월에는 자지라의 아이유브 왕조와 연합하여 야스체멘 전투에서 잘랄 웃 딘 밍부르누를 격파하였다. 이듬해 몽골군에게 아제르바이잔을 상실한 잘랄 웃 딘이 만지케르트를 공격하나 카이쿠바드는 속국인 트레비존드 제국과 함께 격퇴하였고, 이후 잘랄 웃딘은 자지라 산간을 떠돌다 살해되었다.

이후 아이유브 왕조와 자지라를 두고 대립하게 된 카이쿠바드는 1234년 아이유브 술탄 알 카밀이 하르푸트 ( 엘라즈)를 점령하자 반격에 나서 수복한 후 에데사 (우르파), 하란, 라카를 점령하였다. 그러자 이듬해 알 카밀이 재차 친정하여 세 도시를 수복하며 국경은 전쟁 전으로 원상 복구되었다.

3. 기타

황금기로 인식되었기에 후대의 베이들은 카이쿠바드의 후예라는 족보를 내세워 권위를 정당화하기도 하였다.

튀르키예인들은 그가 6년만 더 살아서 쾨세다으 전투를 지휘했다면 몽골에 그렇게 쉽게 굴복하지는 않았을거라며 아쉬워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