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안무순(安武淳) |
본관 | 순흥 안씨 |
생몰 | ? ~ 1919년 4월 15일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공향면 제암동 (현재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
사망지 |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 교회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명순은 경기도 수원군 공향면 제암동(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출신이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919년 4월 5일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해 안상용, 안진순, 안봉순, 강태성, 안명순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그는 이날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워 장터를 행진했다. 이에 일본 경찰이 무차별 발포해 3명이 부상당하자, 군중은 분노해 투석으로 대항해 일본인 순사부장이 돌에 맞아 죽고, 많은 일본인 거주자들도 부상당했다. 그러자 수원에서 일본 경찰과 헌병대가 증파되어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고문했다. 이후 제암리 일대는 일제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받았다.4월 15일 정오,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의 아리타 중위가 이끄는 보병 13명이 제암리 주민들에게 알릴 일이 있다고 속이고 제암리와 인근 마을의 주민 약 20여 명을 제암리 교회로 모이게 했다. 아리타는 주민들을 교회 안에 가둬놓고 출입문과 창문을 잠근 채 부하들에게 불을 지르고 교회에서 탈출하려던 이들을 향해 집중 사격하게 했다. 이로 인해 교회에 모여 있던 주민 전원이 사망했는데, 그 중엔 안무순도 있었다. 아리타 중위는 이어 제암리 마을의 가옥들에 불을 질렀고 이웃 마을인 고주리로 가서 천도교 신자 6명을 나무에 묶어 총살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안무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으며,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2년 9월 대대적인 유해 발굴 사업을 진행한 뒤 발굴된 유해를 23위의 묘로 안장했고, 1983년 7월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과 기념탑을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