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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 제국 제 3대 황제
악사야카틀 Āxāyacatl |
||
|
||
<colbgcolor=#363><colcolor=#ddd> 이름 |
악샤야카틀 Āxāyacatl |
|
출생 | 1449년 | |
아즈텍 제국 | ||
사망 | 1481년 (향년 31-32세) | |
아즈텍 제국 | ||
재위 기간 | 아즈텍 틀라토아니 | |
1469년 ~ 1481년 (약 12년) | ||
전임자 | 몬테수마 1세 | |
후임자 | 티소크 | |
부모 |
아버지 :
테소소목 어머니 : 아토토스틀리 |
|
배우자 | 소치쿠에이틀 | |
자녀 | 몬테수마 2세, 쿠이틀라우아크 |
[clearfix]
1. 개요
아즈텍 제국의 제6대 우에이 틀라토아니(황제).'물 표면'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테소소목(Tezozomoc)[1]이고, 어머니는 아토토스틀리였다.[2] 제국의 기반을 닦은 위대한 정복군주였던 이츠코아틀의 친손자이자 몬테수마 1세의 외손자로서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랐다.[3]
2. 상세
이전까지 아즈텍 제국은 그저 하나의 국가내에 지방들이 자치권을 가진 서양의 봉건 군주정 같은 형태였으나 아샤야카틀은 많은 자치권을 폐지하고, 완전한 중앙집권형 국가로 만들었다. 아즈텍과 대립하던 도시인 틀라텔롤코(Tlatelolco)의 정복 이후, 정복지를 방문했던 아샤야카틀이 틀라텔롤코의 시민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받게 되었는데 아샤야카틀은 이에 분노하여 틀라텔롤코의 완전한 파괴를 명령했다.[4]이후 전국적으로 자매도시들의 자치권을 폐지하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는데, 그 후 불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수많은 사람을 사로잡아 인신제사를 벌이는 등 완전한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아즈텍하면 대부분 떠올릴 수만 명 단위의 인신공양이나 심장 뽑기 등의 행동이 사실상 아샤야카틀 대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까지도 인신공양은 제법 있었으나 말 그대로 제례용으로서 몇몇 인원을 차출하던 것에 비해 수십만 명의 단위가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였다. 자식이 둘 있었으나 첫째는 병으로 급사했고, 둘째인 몬테수마 2세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1481년 동생 티소크(Tīzoc)에게 제위를 넘겨주었다. 이후 몬테수마 2세는 아즈텍 제국의 사실상 마지막 틀라토아니가 되었다.
[1]
이츠코아틀의 황자.
[2]
몬테수마 1세의 황녀.
[3]
6, 7, 8대 틀라토아니에 재위한 아샤야카틀과 티소크, 아우이초틀의 아버지였던 테소소목은 그가 너무 어린 나이일 때, 제4대 틀라토아니였던 아버지
이츠코아틀이 붕어하는 바람에 삼촌뻘이자 친족이기도 했고 제2대 틀라토아니 우이칠리우이틀의 아들이었던 몬테수마 1세에게 제위를 뺏았겼다. 그 결과 몬테수마 1세의 눈칫밥을 먹으며 아즈텍의 허수아비 황자로 살아갔다. 때마침 몬테수마 1세와 귀족들의 주선 아래 몬테수마 1세의 장녀이자 공주였던 아토토스틀리와 결혼했는데 이는 아즈텍이 황족들의 순혈성을 강조하기 위해 친족간의 근친혼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몬테수마 1세의 직계 남성 후손들이 모두 전쟁 중에 사망하게 되고, 테소소목 역시 꽤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서 몬테수마 1세의 외손자였던 아샤야카틀이 틀라토아니로 즉위하게 되었다.
[4]
Hassig, Ross (1988). Aztec Warfare: Imperial Expansion and Political Control. Norman: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ISBN 0-8061-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