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속칭으로 불렸던 80년대 오락실 게임에 대한 내용은 닌자 용검전(아케이드)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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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merican Ninja마이클 듀디코프 주연의 1985년작 미국 영화. 저예산 영화를 많이 제작하고 척 노리스 영화를 단골로 제작, 배급하던 캐논[1]에서 제작했다. 감독은 캐논 그룹에서 저예산 막장 액션물을 마구 찍어내던 샘 퍼스턴버그로, 이 시리즈 전에도 쇼 코스기가 주연한 복수의 화신(Revenge of the Ninja)[A]과 닌자3 - 도미네이션(Ninja III: The Domination)[A] 같은 와패니즈 닌자 영화를 감독한 바 있다.
2. 상세
쌈마이, 와패니즈라는 요소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경우에 나오는 결과물. 이런 영화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었는데, 1980년대에는 일본의 버블 경제로 인해 패전국이였던 일본이 급부상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게 되고, 미국 내에선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일본에 대한 추종/또는 경계가 극심하던 시대였다. 이로 인해 동양계 국가들이 세계 패권을 장악한다는 시나리오의 사이버펑크 장르도 급부상하던 시기였다.하지만 1980년대라는 특성상 정확한 정보 전달에는 무리가 있어서인지 일본에서 미국으로 여러 정보[4]가 넘어오는 과정에서 와전되거나, 미국 특유의 멋대로 환상을 만들어내거나 지어내고 그것이 재생산되어 확대되는[5]덕에 자포네스크적 특징을 띠게 되는, 즉 오늘날의 와패니즈를 생산하는 기반이 되게 된다.
이러한 일본에 대한 미국인들의 환상이 만연하던 당시 시대에 아메리칸 닌자라는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사실 이런 괴악한 센스의 닌자 영화는 1981년에 메나헴 골란이 용쟁호투를 오마주하여 직접 감독한 1편 성난 닌자(Enter The Ninja)[6]가 만들어졌는데 영화 속 황야의 무법자로 유명한 프랑코 네로가 주인공 백인 닌자로 나오고 쇼 코스기가 최종보스인 악역 닌자로 나온 이 영화는 제법 볼만했고 150만 달러 제작비의 10배인 1500만 달러의 흥행 기록을 올렸다. 2편부터는 골란이 제작만 맡고 1편의 최종보스 쇼 코스기를 주연으로 만든 영화인 2편 복수의 화신과 3편 도미네이션이 나오게 된다.
1983년작인 복수의 화신은 1백만달러 수준 제작비로 만들어져 1316만 달러 흥행을 거둬들였는데 전작의 최종보스였던 일본출신인 배우 쇼 코스기가 주연을 맡아서 그런지 이 영화는 적어도 아메리칸 닌자 시리즈나 전작인 성난 닌자보다 와패니즈가 덜한 편이었다. 닌자들의 습격으로 온 식구를 다 잃고 아들과 어머니만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해 살던 주인공에게 절친이었던 미국인 백인친구 브랜든의 음모(사실 그는 닌자였고 닌자들을 사주해 주인공의 가족을 몰살한것도 그의 짓이었다.)로 인해 결국 어머니까지 잃고 어린 아들(쇼 코스기의 실제 친아들인 케인 코스기가 아들 역을 맡았다.)마져 위험에 처하자, 이에 맞서는 줄거리로 제법 액션도 괜찮은 작품이다.(이후,1984년엔 쇼 코스기가 다시 주연으로 나온 닌자3 - 도미네이션이 만들어진다.)
하여튼 이 복수의 화신이 대박을 친 이후 제작자인 요람 글로버스와 메나헴 골란과 감독인 샘 퍼스턴버그는 쇼 코스기 영화 뿐만 아니라 백인인 미국인이 주역인 닌자 시리즈를 다시 만들기로 하고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아메리칸 닌자 시리즈이다.
이 1편 내용은 간단한데, 필리핀이 배경이고 육군 이등별(설정으로는 이등병이었다.)인 조는 군에 들어가자마자 거의 왕따를 당하며 문제사병으로 찍힌다.하지만 무기밀매 조직에게 테러를 당하는 사령관 히치콕 대령의 딸 퍼트리샤를 구한다. 무기를 밀매하려던 올티가의 계획은 무산되었는데, 여기서 주인공이 닌자들(필리핀 배우들이었다. 제작비 문제로)을 여러명 잡는다. 이후, 도널드 하사의 의해 조는 심부름 보내진다. 그러면서 또 닌자들과 싸우게 되는데, 돌아오자마자 감옥에 수감된다.
이곳으로 올티가의 오른팔인 블랙스타 닌자가 그를 암살하러 오는데, 문 딸 때 낫을 들고 온갖 개폼을 잡으며 잘라낸다. 게다가 권총든 헌병들도 살해하는데, 조는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다. 히치콕 대령은 죄책감을 느끼며 손을 떼지만, 마피아 올티가는 그의 딸을 인질로 잡는다. 사실 대령과 올티가는 동업자였다.
참고로 시신의 부검을 할때 이건 인술에 당한거라고 결론 짓는 수사관도 나온다.(...) 한편 조는 자신이 기억을 잃었지만, 그전에는 인술을 배웠다는 것을 신유기(악당집에서 정원사하는 노인)에게서 듣는다. 신유기 역의 배우는 존 후지오카이고 악역인 블랙스타 닌자역은 타다시 야마시타로 아메리칸 닌자5에서는 주인공의 친구로 나오고 척 노리스의 옥타곤, 숀 코너리의 떠오르는 태양에도 출연했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마이클 듀디코프가 진짜 닌자 코스프레해서 악당닌자들을 다 때려잡는다.(여담으로 마이클 듀디코프의 닌자액션 대역은 리처드 노턴인데 그는 옥타곤에서도 극중 척 노리스와 대결하는 세이쿠라의 집행자인 닌자역을 맡았었다. 블랙스타 닌자역의 타다시 야마시타는 세이쿠라의 수장으로 나왔다.)
아무튼 지금 보면 도저히 뭐가 뭔지 모를 줄거리이지만 3백만 달러 저예산으로 만들어 1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거두며 그럭저럭 흥행에 성공했다.
1989년 2월 25일에 한국에서 4년이 지난 다음에 개봉했는데 서울 5만 8천 관객을 기록했다. 극장 포스터에는 성조기에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있는데
금성비디오( LG그룹)으로 낸 비디오에선 별(성조기)로 고친 채로 나왔다.
3. 속편
3.1. 2편
1987년에 감독,주연이 같은 2편이 나왔으나 흥행 수익이 반토막난 뒤...(참고로 국내에는 2편이 극장 개봉 없이 88년에 당시 캐논의 비디오 배급사였던 세경문화영상에서 비디오만 출시되었고, 1편이 뒤늦게 수입되어 극장개봉후 역시 비디오로 출시됐다.)
OST를 맡은 작곡가는 95년작 모탈컴벳 실사판의 음악을 맡은 조지 S. 클린턴이다.
3.2. 3편
1989년에 감독도 주연도 확 달라진 3편이 나오지만 흥행 수익은 2편의 1/3수준... 주연인 데이비드 브래들리도 저예산 액션물에 단골로 나오던 배우이다. 이 3편도 1989년 10월 국내에 개봉했으나 서울관객 1만 7천명 정도 기록했다. SKC로 비디오 출시.
3.3. 4편
1991년에 나온 4편에서는 1,2편 주인공인 듀디코프와 3편 주인공인 브래들리가 같이 나온다. 4편부터는 캐논 영화사를 새롭게 인수한 이탈리아 출신 제작자인 오비에도 G. 아소티나스[7]가 제작을 맡게 된다. 그러나 역시 흥행은 별로. SKC로 비디오 출시.
3.4. 5편
1993년에 나온 5편에서는 데이비드 브래들리가 3편에 이어 다시 단독주연으로 돌아왔다. 여기선 베스트 키드의 팻 모리타가 스승으로 나오기도 했다. 1993년 국내에 개봉했으나 서울관객 1천명도 기록하지 못했다. 미디아트(구 금성비디오)에서 비디오로 출시.
어쨌든 여러 시리즈 가운데 퀄리티는 그나마 1편이 최고다. 리틀 도쿄와 더불어 오리엔탈리즘 영화 중 하나.
[1]
유대인 영화제작인 메나헴 골란이 사장이다.
[A]
세경문화영상에서 비디오로 출시.
[A]
세경문화영상에서 비디오로 출시.
[4]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인 닌자나 사무라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5]
이집트 또한 이러한 무분별한 창작으로 인해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집토마니아 참조.
[6]
한글 제목은 금성비디오 출시 당시의 제목.
[7]
바로
제임스 카메론의 데뷔작인
피라냐 2를 제작한 그 사람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카메론에게는 악몽같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