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물이 설립한 기업에 대한 내용은 푸조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아르망 푀조 Armand Peuge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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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49년 6월 18일 |
[[프랑스 제2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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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5년 2월 4일 (향년 65세) |
[[프랑스 제3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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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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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기업인, 공학자 |
학력 | 에콜 상트랄 파리 |
배우자 | 소피 레오니 팔로 (1872년 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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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기업인, 공학자. 국내에서는 아르망 푸조로도 알려져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기업 푸조를 설립했다.프랑스에서 자동차를 상용화하는 데에 일조한 기념비적인 인물로 불리며, 그 업적을 인정받아 1999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올랐다.
2. 생애
아르망 푀조는 1849년 프랑스 두에서 에밀 푀조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푀조 집안은 그의 할아버지인 철강 공장을 운영하던 장 피에르 푀조를 기점으로 금속 제품 및 다양한 생활 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던 기업 가문이었다.푀조는 프랑스의 이공계 그랑제콜 중 하나인 에콜 상트랄 파리에 졸업했고, 이후 영국에서 여행하던 중 자전거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1871년 프랑스로 귀국해 자전거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1882년 푀조는 그랑비라는 대형 자전거를 생산하면서 고무적인 성과를 내놓았지만, 자전거에 재미가 떨어졌는지 자동차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1] 이후 자신의 사촌인 외젠 푀조(Eugène Peugeot)와 함께 푀조(푸조) 형제(Peugeot Frères Aînés)이라는 기업을 설립했다. 이후 1889년 증기 엔진을 장착한 3륜차 세르폴레 푸조를 만듦으로써 이때부터 푸조 자동차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푀조는 자신의 자동차를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 전시하였는데, 이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자동차로서는 메르세데스-벤츠보다도 앞선 것이었다.
1890년 푀조는 자신의 기업을 푀조 형제의 후예(Les Fils de Peugeot Frère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고 독일의 다임러에서 엔진을 공급받아 만든 가솔린 엔진 4륜 차량을 만들었는데, 이듬해 9월 이 물건으로 발렌티니에서 브레스트까지 2,200km의 거리를 왕복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2기통 2.3마력의 엔진을 단 시속 14km/h의 보잘 것 없는 속도였지만 무사히 왕복을 마치며 푀조의 이름을 알렸다. 또한 푀조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대회인 파리 루앙 레이스[2]에서 우승하여 큰 명성을 쌓았다. 이에 푀조는 이를 발판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었지만 동업자인 외젠은 이에 반대를 해 둘이 서로 갈라졌고, 결국 푀조는 1896년 푸조 자동차 회사(Société Anonyme des Automobiles Peugeot)를 독립적으로 설립하고 자신의 고향 근처 지역인 오댕쿠르에 차체와 엔진을 제작하는 공장을 건설한 후 다임러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이후 1910년 2월 푀조는 자신에게 마땅한 상속자가 없자 이전에 빚었던 갈등으로 인해 외젠이 따로 설립한 기업과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13년 푀조는 경영자 자리에 물러났으며 2년 뒤 1915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
그러나 푀조는 자전거 생산을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지속했다.
[2]
프랑스에서 주최된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로 유럽 전역에서 증기 자동차, 휘발유차, 인력차, 압축공기 자동차, 전기 자동차 등 각양각색의 자동차 102대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