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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스틴 델가도


에콰도르의 정치인
파일:3f31WAC.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아구스틴 델가도
Agustin Delgado
본명 아구스틴 하비에르 델가도 찰라
Agustín Javier Delgado Chalá
출생 1974년 12월 23일 ([age(1974-12-23)]세)
에콰도르 임바부라주 암부키
국적
[[에콰도르|]][[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정치인
소속 선수 CD 에스폴리 (1991~1992)
바르셀로나 SC (1993~1994)
CD 엘 나시오날 (1995~1996)
인데펜디엔테 메데인 (1997)
바르셀로나 SC (1997~1998)
크루스 아술 (1998)
클루브 네카사 (1999~2001)
사우샘프턴 FC (2001~2004)
SD 아우카스 (2004)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나시오날 (2004)
바르셀로나 SC (2005)
LDU 키토 (2006~2008)
CS 에멜렉 (2009)
CD 바예 델 초타 (2010)
국가대표 71경기 31골 ( 에콰도르 / 1994~2006)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정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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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콰도르의 전 축구선수. 정치인.

2. 클럽 경력

현역 시절 남미의 득점 기계로 알려졌었다. 자국 리그를 평정하고 멕시코의 리가 MX로 건너가 클루브 네카사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하고 350만 파운드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사우스햄튼 FC로 이적했다. 이적 배경으로는 멕시코에서의 퍼포먼스도 반영됐지만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선보인 것이 스카우터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고 한다.

당시 에콰도르 선수로는 이례적인 빅리그 입성이었기에 큰 기대를 받았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리그 적응 문제는 물론이고 영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등 영국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쓸쓸히 자국 무대로 리턴해야만 했다. 이후 다시 멕시코 등을 거쳐 마지막 전성기를 LDU 키토 시절에서 보내고 2010년 은퇴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1994년 A대표팀에 데뷔하였으며 12년 동안 대표팀의 주포였다. 그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지역예선에서 무려 9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견인했는데, 9골 중 한 골은 브라질을 상대로 기록한 결승골이었다. 이후 본선 무대에서는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멕시코와 함께 G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2차전인 멕시코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팀이 역전패를 하며 빛이 바랬다. 그래도 완전히 탈락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고[1], 만약 본인들이 3차전 상대 크로아티아를 잡고 같은 시간 열리는 이탈리아와 멕시코의 대결에서 멕시코가 이탈리아를 이기면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치르게 된 최종전에서는 승리는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이탈리아와 멕시코의 대결이 1대1 무승부로 끝나면서 16강에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에콰도르는 훈훈한 논개 역할이나마 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후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도 참가하였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개최국 독일, 북중미의 코스타리카, 동유럽의 폴란드와 함께 A조에 속해서, 폴란드와 코스타리카를 연속으로 잡아내고 사상 첫 16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이뤄냈다. 특히 1차전 폴란드전과 2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 골을 성공시키며 에콰도르 선수로는 두 대회 연속으로 득점을 기록한 선수로 기록됐다.

이후 2007년 가을, 공식적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4. 정치 활동

2006년 라파엘 코레아가 창당한 자랑스럽고 자주적인 조국 (조국동맹)에 당원으로 가입하고 에콰도르 징병제 폐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에콰도르는 2007년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2008년 징병제를 폐지했다.

2013년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고향이 있는 임바부라 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한 회기동안 재임했다.
[1] 멕시코 역시 에콰도르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16강이 100% 확정된 게 아니었다. 만약 본인들이 이탈리아한테 패하고 크로아티아가 에콰도르를 이긴다면 16강에 못 갈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