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여삼(汝三) |
본관 | 청송 심씨[1] |
출생 | 1859년 1월 3일 |
충청도
충주목 사이포면 금정리 (현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 금정마을) |
|
사망 | 1921년 7월 20일 |
충청북도 음성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463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심인택은 1859년 1월 3일 충청도 충주목 사이포면 금정리(현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 금정마을)에서 아버지 심의영(沈宜瑛, 1820 ~ 1897. 7. 7)과 어머니 밀양 박씨(1816 ~ ?. 3. 21) 박정규(朴廷奎)의 딸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1915년 7월 경기도 경성부에서 성낙형(成樂馨)의 권유로 신한혁명단(新韓革命團)에 입당하였다. 이들은 국권을 회복한 뒤 중국· 독일과 같은 황제 중심의 군주제를 세우고자 하였고, 우선 고종과 의친왕을 해외로 망명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이러한 취지를 고종과 의친왕에 전달하는 한편, 정일영(鄭馹永) 등을 단원으로 규합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한 일제에 체포되어 1915년 10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1년 7월 20일에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심인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2년 3월 24일 당초 고향인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안장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했다.
[1]
안효공파-온양공 인겸(仁謙)파 22세 택(澤)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