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4 08:53:16

스틸리얀 페트로프

스틸리얀 페트로프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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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2000~2003)
스틸리얀 페트로프
(2003~2006)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2006~2010)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2006~2010)
스틸리얀 페트로프
(2010~2011)
이벨린 포포프
(2012~2019)

아스톤 빌라 FC 주장
마르틴 라우르센
(2008~2009)
스틸리얀 페트로프
(2009~2012)
론 플라르
(201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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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리얀 페트로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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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리얀 페트로프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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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틸리얀 페트로프 105회 1998.12.23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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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StiliyanPetrov.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스틸리얀 페트로프
Stiliyan Petrov
본명 스틸리얀 알료셰프 페트로프
Стилиян Альошев Петров
출생 1979년 7월 5일 ([age(1979-07-05)]세)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미하일로브그라드
(現 불가리아 몬타나)
국적
[[불가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75kg
직업 축구선수 (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FC 몬타나 (1995~1996)
CSKA 소피아 (1996~1999)
셀틱 FC (1999~2006)
아스톤 빌라 FC (2006~2013)
지도자 아스톤 빌라 FC (2013~2015 / 아카데미 코치)
아스톤 빌라 FC (2015~2016 / 코치)
국가대표 파일: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06경기 8골[1] ( 불가리아 / 1998~2013)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백혈병에 걸리다5. 은퇴 이후6. 수상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

[clearfix]

1. 개요

불가리아의 前 축구 선수이다. 그는 셀틱과 아스톤 빌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무궁한 가능성을 펼쳐 장차 위대한 선수가 될 것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중앙 미드필더에서 '박스 투 박스' 룰을 수행하며 수비와 공격 모두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기복을 거의 보이지 않고 매 경기마다 꾸준한 활약을 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그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투철한 인물로, 아스톤 빌라에서 주장을 맡은 뒤 선수들이 빅클럽으로 매년 이적하는 와중에도 팀에 남아 리더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보였다. 이렇듯 위대한 축구 선수가 되기에 충분했던 그였으나 안타깝게도 백혈병이라는 선수 인생은 물론, 인생 전체에 치명적인 병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선수 인생을 조기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축구에 대한 열의를 놓지 않아 수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어주고 있다.

2. 클럽 경력

2.1. 셀틱 FC

파일:external/files.stv.tv/33704-stiliyan-petrov-footballer-took-ill-after-match-on-saturday.jpg

페트로프는 어릴 때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았고 10대 무렵에 지역 팀인 FC 몬타나에 입단했다. 이후 그는 18살에 전설적인 스카우터 디미트리 페네프의 눈에 띄여 CSKA 소피아에 3만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입단했다. 그는 이 팀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여 팀의 불가리아 챔피언십 우승(1997년)과 내셔널 컵 우승(1997년, 1999년)을 이끌었다.

그러던 1999년 여름, 페트로프는 28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스코틀랜드의 명문 구단 셀틱 FC에 입단했다. 그는 곧바로 팀의 주축 선수가 되었고 첫 시즌에 리그 컵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것과는 달리 일상 생활에서 적응을 힘들어했다. 그는 향수병에 걸렸고 영어를 하지 못해서 의사소통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계다가 당시 셀틱 감독이었던 존 반스는 그에게 라이트백 자리에 뛸 것을 지시했는데, 축구 인생을 시작한 이래 중미에서만 뛰었던 그로서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극복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친구의 burger van 일을 도우면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혔고 반스가 물러난 뒤 셀틱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마틴 오닐 휘하에서 중미 룰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2번째 시즌에서 28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었는데 특히 셀틱의 오랜 숙적 레인저스 FC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6:2 대승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스코틀랜드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스코틀랜드 리그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선수가 수상한 것이었다.

2000-01 시즌, 페트로프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역할을 말끔하게 수행했고 리그와 스코티쉬 FA컵, 그리고 스코티쉬 리그컵 우승을 달성하며 트레블을 이룩했다.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꾸준히 선보이던 그를 주목한 유럽의 많은 탑 클럽들은 그를 영입하려 했다.하지만 페트로프는 스코틀랜드에서의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했고 셀틱에서 뛰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팀의 재계약 제의를 기꺼이 수락했다. 이후 페트로프는 2001-02 시즌에 50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하며 그의 경력에서 한 시즌 최다 골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그는 유로파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페트로프는 계속해서 셀틱의 핵심 미드필더로서 제몫을 톡톡히 해줬다. 그가 뛰는 동안, 셀틱은 리그를 4번 우승했고(2000-01, 2001-02, 2003-04, 2005-06) 스코티쉬 FA 컵을 3번 우승했으며(2001,2004,2005) 스코티쉬 리그 컵을 3번 우승했다.(2000, 2001, 2006) 또한 그는 매 시즌 마다 리그의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하는 강철 체력을 과시했으며 중미임에도 매시즌 10골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다. (2002-03 시즌 리그에서 34경기 12골을 넣었고 2004-05 시즌엔 리그에서 37경기 11골을 기록했으며 2005-06 시즌엔 37경기 10골을 기록했다.)

그러던 2005-06 시즌, 셀틱에서 환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았던 마틴 오닐이 팀을 떠났고 뒤이어 고든 스트라칸이 셀틱에 부임했다. 그는 새로 바뀐 감독 휘하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셀틱이 리그와 리그컵을 우승하며 더블을 이룩하는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 그러다가 2006-07 시즌, 페트로프는 자신의 은사인 마틴 오닐이 있는 아스톤 빌라로 8M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전격 이적했다.

페트로프는 셀틱에서 7시즌을 뛰면서 312경기를 출장해 55골을 기록했다. 그는 매 시즌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을 뒷받침해준 '언성히어로'였다. 비록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진 않았지만, 그는 매 시즌 셀틱의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하며 강철 체력을 과시했고 매 경기마다 기복 없는 플레이를 선보이고 10골 이상을 득점해 셀틱이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이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2. 아스톤 빌라 FC

파일:external/i.dailymail.co.uk/2659AFAB00000578-0-image-a-1_1425572039660.jpg

2006년 8월 30일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 페트로프는 9월 10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이날 아스톤 빌라는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페트로프는 등번호를 셀틱에서 뛸 당시에 배정받았던 11번에서 19번으로 변경했고 2006년 12월 11일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아스톤빌라에서의 첫 골을 거두었다. 그는 아스톤 빌라에서도 역시나 강철 체력을 과시하며 첫 시즌에 리그 30경기, fa컵 1경기, 리그컵 3경기를 출장해 총 34경기를 뛰며 2골을 기록했다.



2008년 4월 12일, 페트로프는 더비 카운티를 상대로 하프라인 근처에서 골키퍼가 나온 틈을 타 슛을 날려 골을 기록했다. 이 골은 '시즌 최고의 골'에 후보로 거론되기도 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의 골은 아스톤 빌라 역사상 가장 먼 거리에서의 골이기도 했다.

2008-09 시즌, 페트로프는 역시나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고 2008년 10월 2일 불가리아 팀인 Litex Lovech과의 유로파 컵 경기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그후 그는 2009년 5월에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이와 동시에 팀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이렇나 그의 활약에 만족한 아스톤 빌라 측은 재계약을 제의했고 그는 이를 흔쾌히 수락해 4년 재계약을 체결해 2013년까지 아스톤 빌라에서 뛰게 되었다.

2009년, 아스톤빌라의 주장이었던 마르틴 라우르센이 은퇴한 뒤, 페트로프는 마침내 아스톤빌라의 주장이 되었다. 그는 팀을 리그 6위로 마감하고 FA컵 준결승, 리그컵 결승에 진출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후 마틴 오닐이 2010-11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퇴하고 뒤이어 제라르 울리에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팀의 주장으로 남았다. 그러던 2010년 10월 23일, 페트로프는 선더랜드 원정에서 1:0으로 지는 와중에 무릎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선수 경력 최초로 넉달 동안 빠지게 되었고 2011년 2월 26일에야 토트넘 핫스퍼와의 경기에 교체투입되었다. 그가 빠진 동안, 아스톤 빌라는 수많은 선수들의 부상 및 부진으로 성적이 지극히 좋지 못했고 14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했다.

2011년 9월 10일, 페르토프는 에버튼을 상대로 2011-12 시즌 첫 골을 기록했고 2011년 10월 29일에는 선더랜드를 상대로 출전함으로서 아스톤 빌라에서의 200번째 경기를 수행했다. 이날 그는 골을 기록하며 팀의 2:2 무승부에 기여했다. 그후 그는 리그 28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장으로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2012년 3월, 페트로프는 밑에 후술할 이유로 인해 선수 경력을 갑작스럽게 중단하고 말았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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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프는 1998년 12월 23일 모로코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함으로서 불가리아 축구 대표팀에서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그는 2000년 3월 29일 벨라루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후 그는 셀틱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임으로서 자연스레 불가리아 국가대표팀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2003년엔 불가리아 올해의 축구선수 상을 수여받았고 유로 2004 지역 예선에서 불가리아의 주장이 되어 팀을 이끌었다.

그런데 2006년 10월 12일, 페트로프는 갑작스럽게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불가리아 축구대표팀 감독이었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와의 불화로 인해 주장 직을 잃게 되자 국가대표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다가 2007년 3월 20일에 스토이치코프와 화해하고 다시 국가대표로 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대표팀 주장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이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그 대신 주장 자리를 수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0년 1월 14일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페트로프는 베르바토프가 국가대표를 은퇴하자 곧바로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복귀했다.

2011년 3월 26일, 페트로프는 유로 2012 지역 예선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출전했다. 이로서 페트로프는 국가대표로서 100번째 출장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국가대표로서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줬던 페트로프는 갑작스럽게 선수 생활을 중단함으로서 국가대표로서의 출장을 105경기에서 마감해야 했다.

4. 백혈병에 걸리다

2012년 3월 30일, 페트로프는 아스날과의 경기를 치르던 도중 갑작스런 고열에 시달리는 바람에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교체되었다. 이후 팀닥터의 검진을 받은 그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백혈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이에 페트로프가 언론에 선수 생활을 은퇴할 계획을 세웠다는 보도가 빗발쳤다. 그러나 그의 에이전트는 이러한 은퇴 보도를 부인하며 페트로프가 회복을 위해 싸울 것이며 축구 선수로서 계속 뛸 의향이라고 밝혔다. 그는 병환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빌라 파크에서 열린 첼시와의 경기 때 관중석에서 관전했고 팬들은 그를 위해 경기 시작 후 19분이 되자 그의 등번호인 19번을 기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며 그를 응원했다.

2012년 6월 10일, 아스톤의 폴 램버트 감독은 페트로프가 다음 시즌에도 주장으로 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페트로프는 백혈병으로 인해 경기에 뛸 수가 없어서 론 블라르가 주장 역할을 대행하기로 했다. 그후 33번째 생일 날, 페트로프는 프리시즌에 훈련을 수행하고 있던 선수단을 백혈병에 걸린 이래 처음으로 찾아가서 팀동료들과 함께 생일 파티를 하였다. 그리고 8월 2일에는 아스톤 빌라 측이 그가 걸린 백혈병이 나아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완전히 회복되어 축구 선수로서 필드에 뛰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장기간 병실에 누워 백혈병 치료를 받아야 했던 페트로프는 결국 2013년 5월 9일 은퇴를 선언했다. 이에 2013년 5월 26일 불가리아 국가대표팀이 아스톤 빌라 측과 페트로프를 위한 친선경기를 치렀고 불가리아 대표팀이 4:2로 승리했다.

파일:external/pbs.twimg.com/BzRZFb4CcAA2pAd.jpg

이후 페트로프는 2014년 10월에 선데이 리그팀인 와이첼 원더러스에 소속되었다. 선데이 리그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 속하지 않은 독립 리그였고 그가 합류한 와이첼 원더러스는 35세 이상의 선수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백혈병에 걸려서 장기간 고생했던 그가 축구 선수로 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5. 은퇴 이후

페트로프는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 2013년에 아스톤 빌라 아카데미 코치로 부임해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2015년 3월엔 아스톤 빌라의 코치로 부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 인생이 백혈병으로 인해 중단된 것에 깊은 아쉬움과 미련을 느낀 그는 2016년 6월 선수 생활 복귀를 선언했다. 7월 프리시즌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축구팀 GAK와의 경기에서도 8-0 대승에 크게 일조하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소속팀과의 재계약에 난항을 겪었고 다시 아스톤 빌라의 1군에서 제외됐다. 이후 그는 현재까지 자유계약 상태로 남아 있으며 아스톤 빌라에 남아 코치로서 제2의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팀으로 이적해 선수 생활을 이어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8월 24일 페트로프는 결국 선수로써 최종은퇴를 선언한다.

6. 수상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1]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