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02:14:28

스티브 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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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유나이티드 FC
Newcastle United Football Club
파일:20210716-steve-harper-academy-manager.jpg
<colbgcolor=#000> 이름 스티브 하퍼
Steve Harper
본명 스티븐 앨런 하퍼
Stephen Alan Harper
출생 1975년 3월 14일 ([age(1975-03-14)]세)
잉글랜드 더럼주 시햄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 ( 골키퍼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000> 선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993~2013)
브래드포드 시티 AFC (1995~1996 / 임대)
게이츠헤드 FC (1996~1997 / 임대)
스톡포트 카운티 FC (1997 / 임대)
하틀풀 유나이티드 FC (1997 / 임대)
허더즈필드 타운 AFC (1997~1998 / 임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1 / 임대)
헐 시티 AFC (2013~2015)
선덜랜드 AFC (2016)
감독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16~2021 / 아카데미 GK 코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21~ / 아카데미 감독)
북아일랜드 대표팀 (2019~2021 / GK 코치)

1. 개요2. 클럽 커리어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2. 클럽 커리어

뉴캐슬 인근 광산촌 이싱턴에서 광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퍼는 어린 시절부터 뉴캐슬의 서포터였다. 조기축구회에 가까운 지역 아마추어 팀에서 뛰다가 18세에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스카웃되었다. 파벨 스르니첵의 뒤를 이을 초특급 골키퍼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 후 샤카 히슬롭의 뒤를 이을 골키퍼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국가대표팀 발탁설 이 심심찮게 제기될 정도로 뛰어난 골키퍼였지만 젊은 시절에는 "앞으로 시간이 많다" 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임대다니면서 주전으로 뛸 날만을 기다렸고, 1997년에 경쟁상대라고 사온 동년배 셰이 기븐이 갑자기 기븐신으로 각성해 버리면서 처참하게 묻혔다.[1] 결국 이로 인해 뉴캐슬에서 20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리그와 모든 컵대회를 합쳐 199경기 출전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10여년간 이어진 자타공인 프리미어리그 탑클래스의 골키퍼인 기븐과의 주전경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그의 실력을 알 수 있다. 1998/99 시즌에는 실제로 둘다 부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기븐을 밀어내고 FA컵 결승에까지 선발 출전했다. 2002년에는 기븐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하퍼를 챔피언스 리그에 사용하는 방침이 채택되어 유럽무대의 수많은 큰 경기를 경험했다. 2007년에는 기븐의 부상을 틈타 주전으로 나서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잠시동안 기븐을 밀어내는 듯 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그리고 2008-09 시즌 겨울, 뉴캐슬의 막장테크를 보다못한 기븐이 맨체스터 시티로 떠나자 하퍼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선발 골키퍼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팀은 강등당했다. 무서운 것은 이때 떠난 기븐은 뭔가 저주가 옮았는지 맨시티에서 조 하트가 급부상함에 따라 벤치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 시즌에는 한번도 차지하지 못했던 주전골키퍼의 상징 등번호 1번을 차지하고 2부리그에서 거의 전경기 출장하며 다른 2부리그 골키퍼들과 확연한 수준차이를 보여주면서 맹활약하여 이제 드디어 하퍼의 전성기가 왔는가 하는 기대감을 모았다. 그리고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온 2010-11 시즌 초반, 에버튼과의 원정경기에서 심한 부상을 당하며 2011년까지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그가 부상당해 있던 사이 유망주 팀 크룰이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예상보다 빨리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넘버2로 밀렸다. 결국 하퍼는 18년간 뉴캐슬에 커리어를 바치면서 선배 스르니첵과 히슬롭, 동년배 기븐, 그리고 후배 크룰까지 백업만 도맡게 되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크룰의 실수가 때맞춰 반복되면서 주전 키퍼 자리를 되찾았지만 2011-12 시즌 초에 또 부상을 당했다.

거기다 하퍼의 부상으로 개막전부터 선발 출장을 하고있는 팀 크룰 골키퍼가 미친듯한 선방쇼를 선보이며 뉴캐슬의 EPL 7라운드 까지 4승 3무 무패에 리그 최소실점을 이끌고 있어 하퍼의 넘버원 복귀는 당분간 힘들지도 모르게 되었다.

더불어 하퍼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에 찰턴 애슬레틱 FC으로부터 골키퍼 롭 엘리엇이 또 영입되었다.

부상에서 복귀했음에도 후배인 팀 크룰이 여전히 주전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앨런 파듀 감독이 '벤치의 골키퍼를 로테이션으로 돌리겠다.라고 선언해버려 졸지에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나게 되었다. 사실 이동거리가 먼 원정 경기에서는 하퍼를 기용하지 않으면서 은퇴 후의 진로를 준비할 시간을 주려는 클럽의 배려도 담겨 있는 조치다.

결국 2011년 10월 24일. 경기에 뛰고 싶다는 열망과,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으로 챔피언쉽 리그의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으로 한달간의 임대를 가게 된다.

2011년 11월 21일. 한달간의 챔피언쉽 생활을 끝마치고 임대에서 복귀하였지만, 후배이자 라이벌인 팀 크룰 골키퍼가 13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미친 선방을 연속해서 선보이며 경기 Man Of the Match 로 선정되는 등의 놀라운 활약을 거듭하고 있어 역시나 선발 복귀는 요원해 보인다.

2012-13 시즌 시작에 앞서 결국 크룰에게 등번호 1번을 양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16년 걸려서 찾아온 넘버원 유니폼을 뺏기는데 걸린 시간은 3년.

시즌 초 키퍼들의 부상으로 잠시 골문을 지킨 적이 있었는데, 역시 나이를 속일 수 없었는지 감퇴한 순발력을 여실히 보여 주며 툰 아미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후 크룰과 엘리엇이 복귀하며 그의 자리는 사라졌고, 결국 12-13 시즌 종료를 앞두고 계약 만료 후 팀을 떠날 것임을 천명했다. 선수생활을 조금 더 이어가고 싶다고 밝혀, 뉴캐슬 팬들은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12-13 시즌 37라운드, 잔류를 놓고 벌인 절체절명의 QPR 원정에서 81분 주전 키퍼 엘리엇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자 교체로 투입되어, 1-2 승리를 지켜내며 팀의 잔류를 확정짓는 데에 기여했다. 이로서 시즌 최종전 아스날 FC와의 홈경기에서 20년간 음지와 양지에서 팀을 지켜온 스티브 하퍼의 고별전 성사가 사실상 확정되었다. 그야말로 운명이 마련해 준 고별전이었던 셈. 아스날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른 하퍼는 팀의 0-1 패배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2] 마지막까지 팀을 위해 몇몇 선방들을 선보였다. 전반 37분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모든 홈팬들이 하퍼에게 1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는데, 결국 눈물을 쏟고 만 하퍼의 모습은 툰 아미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가슴찡한 장면이었다.

파일:external/www.hullcityafc.net/steve-harper-signs-4-3116-916766_478x35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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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2-13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하퍼는 자신의 청춘과 커리어의 전부를 바친 고향팀 뉴캐슬을 떠나면서 자유계약 대상자 신분이 되었다. 마침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한 헐 시티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그를 영입하였다. 계약 기간은 1년. 이로서 헐 시티는 베식타스 JK에서 온 골키퍼 앨런 맥그레거와 하퍼를 영입하면서 골키퍼 자리의 경쟁력을 갖추었다. 일단 시즌 개막은 벤치에서 시작. 백업 키퍼였지만 리그 13경기, 컵 포함 19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잔류와 FA컵 준우승에 힘을 보탰다. 하퍼의 계약에 10경기 이상 출장시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되는 옵션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하퍼는 2014-15 시즌까지 헐 시티에서 뛰게 되었다.

2014-15 시즌은 리그 3경기만을 출장중이었지만, 팀이 강등권에 몰리고 맥그리거 골키퍼가 활약하지 못하자 32라운드부터 맥그리거를 제치고 주전으로 출장하기 시작했다. 33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경기에서 클린 시트를 작성하며 팀의 7경기만의 승리에 공을 세웠다. 이후 시즌 끝까지 주전 골키퍼로 뛰었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팀이 챔피언쉽으로 강등되자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팀을 떠났다.

15-16 시즌이 시작되었지만 새 소속팀을 찾지 못했고 나이도 나이인 만큼 이대로 은퇴하는가 싶었는데, 2016년 1월 22일 5개월 단기계약으로 뉴캐슬의 철천지원수인 선더랜드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서브 골키퍼 슬롯을 채우면서 선더랜드가 키우려 하는 유망주 골키퍼 조던 픽포드의 튜터링을 겸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화난 뉴캐슬 팬들로 인해 트위터를 탈퇴하는 등의 홍역을 겪기도 했지만, 하퍼와 조금이라도 친분을 가진 뉴캐슬의 팬들은 모두 하퍼의 선택을 이해하면서 행운을 빌어 줬다.

3. 지도자 경력

15-16 시즌 종료 후 선더랜드와의 계약이 만료되며 은퇴하였고, 2016년 8월부터 고향팀 뉴캐슬의 아카데미(유스팀) 골키퍼 코치로 돌아와 U-8에서 U-16까지의 어린 골키퍼들의 성장을 지도하게 되었다.

2019년 3월부터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도 겸업하게 되었다.

2021-22 시즌부터 아카데미 총감독으로 승진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음지에서 맞이한 그의 전성기 - 챔피언십 시절 셰필드 유나이티드전 하퍼의 활약상

후보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대표팀 승선이 거론될 만큼 출중한 능력을 가졌다. 세이브 능력은 초인 레벨인 기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준급이고, 수비 조율이나 스위핑 능력은 오히려 기븐보다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큰 약점은 골킥. 이상하게 골킥이 힘도 없고 방향도 절대 직선으로 안나간다. 까딱하면 곧바로 터치라인 아웃.

2006-07 시즌 당시 뉴캐슬의 글렌 로더 감독은 "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넘버1 키퍼와 넘버2 키퍼가 모두 우리팀에 있다" 라는 말로 후보 골키퍼치고는 부조리하게 뛰어난 하퍼의 능력을 평가했다. 하퍼는 그만큼 아까운 인재였다.

이러한 그였기에 한동안 프리미어 리그에서 골키퍼 포지션이 불안한 중위권 팀들은 무조건 하퍼에게 러브콜을 하는 시절이 있었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셀틱 FC, 왓포드 FC, 레인저스 FC, 리버풀 FC, 토트넘 핫스퍼 등이 모두 하퍼의 영입을 시도한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팀에서 고독한 넘버2의 자리를 지켜 왔으며, 그러면서도 고향 팀에 대한 사랑으로 뉴캐슬에서만 20시즌을 뛴 뉴캐슬 역사상 최장 기간 근속 선수이기에 뉴캐슬에서는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다.

5. 여담

  • 축구협회 공인 심판자격증을 소지한 몇 안되는 현역 축구선수로, 은퇴 후에는 심판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그 따기 어렵다는 UEFA A 라이선스 지도자 자격증[3]도 취득.
  • 온라인 강의로 대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사회과학. 대부분의 선수가 어린 나이부터 프로팀에 소속되는 영국 축구계에서는 거의 전무한 대졸.[4]
  • 2006년 리버풀과의 원정경기에서 사비 알론소에게 프리미어 리그 골키퍼로서는 역대 최악이라 할지도 모를 굴욕의 골을 허용했다. 하퍼가 나와있는 틈을 타서 알론소가 하프라인 뒤에서 장거리 슈팅을 시도했는데 하퍼는 이를 막기 위해 뒷걸음질하다가 넘어져 실점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때 일로 인해 "은반위의 요정"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아직도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골은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하워드가 90m골을 넣기 전까지 최장거리골로 기록되었다.
  • 2008년 클럽 공식 홈페이지에서 선수들을 상대로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으세요" 라는 비디오 인터뷰를 했는데 "축구를 하고 싶어요" 라고 진심을 실어 대답했다. 그리고 한달후 기븐은 맨시티로 떠났다
  •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와 이름이 같다.
  • 뉴캐슬에서 20년이나 뛴 역사상 유일한 선수로, 하퍼의 이적 후 뉴캐슬에서는 2013년 9월 AC 밀란의 올드스타들을 초청해 하퍼 20주년 기념 경기를 열어 줬다. 앨런 시어러를 필두로 피터 비어즐리, 롭 리, 놀베르토 솔라노, 앤드루 콜,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 등 왕년의 레전드들에 더해 현역으로 타팀에서 뛰고 있던 케빈 놀란 조이 바튼, 그리고 오랜 라이벌 기븐까지 합류한 뉴캐슬의 라인업도 어마어마했지만, 밀란은 파올로 말디니가 주장 완장을 못 차는[5] 더 어마어마한 라인업으로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찾았다. 밀란 올스타의 최전방을 담당한 당시 선더랜드 감독 파올로 디 카니오의 출장은 그야말로 압권. 당시 바튼은 트위터로 뉴캐슬 팬들에게 디 카니오 좀 까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거친 태클로 그것을 몸소 실천했다.

[1] 차라리 국가대표에 한번이라도 빨리 발탁됐다면 그의 미래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는 데이비드 시먼의 기량 하락으로 인한 은퇴 이후 약 10년간 뒷문 불안에 시달렸으며 시먼의 후임이였던 데이비드 제임스는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대형 실수를 저지르며 폴 로빈슨에게 밀렸고 로빈슨은 주전 자리를 꽤 길게 유지했으나 2008 유로 예선전과 친선 경기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킥과 펀칭 실수들로 인해 스콧 카슨에게 밀렸다. 그리고 그 카슨도 유로 2008 예선 최종전에서 정면으로 오는 중거리 슛을 어이없는 알까기 실수로 인해 패배하여 예선 탈락의 원흉이 되는 바람에 바로 밀렸고 2010 남아공 월드컵은 로버트 그린이 주전을 꿰찼으나 조별리그 첫 경기인 미국전에서 평범한 중거리 슛을 놓치는 대형 실수로 바로 주전에서 내쳐지며 다음 경기부턴 데이비드 제임스가 다시 나섰으나 실망스러웠다. 후에 조 하트가 등장하며 한숨 돌리는줄 알았으나 하트가 본선에선 기대만큼 활약해주지 못하고 2018년에 들어서 조던 픽포드라는 걸출한 키퍼가 나올때까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구성은 짧은 시기에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차라리 그가 뉴캐슬에서 어느정도 기회를 보장받으며 국가대표에 발탁됐다면 앞서 서술했듯이 경쟁자들의 활약덕에 최소한 실수만 없고 어느정도 준수하게만 활약했다면 대략 10년은 주전자리 유지가 가능했을 것이다. [2] 이 경기결과로 아스날은 토트넘을 밀어내고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낸다. [3] UEFA의 차상위 코칭 라이선스로 국가대표팀 등 대부분의 팀에서 코치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최상위의 프로 라이선스는 코칭을 경험한 A 라이선스 보유자만 취득 가능하다. [4] 유럽 축구계는 유스때부터 기본적인 공부는 상당히 강조하는 분위기로 필수로 요구하는 분야까지 끝마치고 프로 세계에 입성하기 위해 잠시 학업을 중단한다. 오히려 대학까지 가는 경우도 있는데 세르지 로베르토 같은 케이스도 있으며 특별한 케이스로는 패트릭 뱀포드 같이 공부를 상당히 잘해 명문대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며 입학할 기회도 있었던 케이스도 존재한다. [5] 말디니가 주장을 못 할 유일한 경우의 수는 프랑코 바레시의 동반출장밖엔 없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