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24:52

송병채

파일:송병채.jpg
성명 송병채(宋炳寀)
이명 송병채(宋炳采)
본관 진천 송씨
생몰 1909년 8월 27일 ~ 1968년 8월 13일
출생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하동
사망지 전라북도 군산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송병채는 1909년 8월 27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주고등보통학교(全州高等普通學校) 재학 중이던 1926년 6월 서울에서 6.10 만세운동이 발발하자 그해 7월 전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선도하여 노예교육 철폐 등을 부르며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1927년 2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후 서울에 상경해 경성노어학교(京城露語學校)에 재학하던 그는 1928년 2월 보성고보 구장회(具將會), 중동학교 이민식(李敏湜)·이철하(李哲夏), 경신학교 최성환(崔星煥), 중앙고보 박판동(朴判同)·유병근(柳秉根), 배재고보 한병선(韓炳宣)·김형원(金炯元), 양정고보 이경배(李庚培) 등과 함께 서울시내 사립학교 대표자 모임을 가지며,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위해 학생비밀결사 ‘ㄱ당’을 조직했다. 'ㄱ당'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1. 본 당은 마르크스주의 연구 및 학생운동의 통일을 기한다.
2. 학생의 현실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조직을 강고히 한다.

파일:송병채.png
1930년 4월 2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이들은 이와 함께 각 학교의 동맹휴학을 지도하는 한편 1929년 3·1운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선전삐라를 살포하고 일대 시위를 계획했으나, 1928년 말 조선공산당이 발각되면서,‘ㄱ당’도 발각되고 말았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9년 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고 1930년 4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4년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군산으로 내려가 조용히 지내다 1968년 8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송병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